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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오선생 Jun 16. 2021

2.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숫자가 주는 의미


나는 직장으로 왔고 아내는 집으로 갔다. 

피검사 결과는 전화로 알려주기로 했다.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아내와 아내의 전화를 기다리는 남편. 

우리는 서로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능 전 날 결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임용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오랜만에 결과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정신없이 학교 생활을 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의 진동을 느끼기 위해 미세한 감각을 집중했다. 

이 미세한 감각은 화장실이 급할 때만 썼는데 이렇게 쓰다니.



스마트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를 고민했다. 

안 좋은 이야기면 어쩌지? 

우리 아내의 눈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난 뭐라고 말하면 좋지??

난 자기만 있어도 좋아라고 말할까?

아니면 다음에 또 하면 되지라는 무책임한 말을 할까? 

이번에 되면 로또 확률이니까 다음에는 될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말할까? 


사람이 참 그렇다. 한 순간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순간 나를 이 대화의 제삼자로 설정하고 

뭐라고 말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임신이 안 되었다면..

사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아쉽다고.

그리고 같이 울려고 했다. 

미안하다고...... 오빠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이 짧은 순간에 내가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시간 여러 실패의 순간마다 나의 무기력함을 탓했다.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울었다. 

첫 단어는 오빠였다. 

근데 울음이 달랐다. 

나도 울었다. 


교무실에서 전화를 이어 갈 수 없어서 학교 옥상으로 갔다. 그리고 울었다. 


그냥 왜 울었을까. 

숫자 300. 영화의 숫자 300이 떠올랐지만 그냥 웃었다.


피검사 숫자가 300이라고 했다. 

임신이라고 했고, 병원의 전화를 들은 우리 아내는 테스트기를 바로 했다고 했다. 


두 줄이었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은 내 마음속에 남았다. 


난 집에 와서 

5년 전에 졸업한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찾아와 주었던 애기 신발을 만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 되었다. 


내가 태몽을 꾸었다. 너구리 두 마리가 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 마리는 리더십이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착하다는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왜 두 마리 일까??? 



이제 우리 아내는 음식을 먹고 기침을 하고 화장실을 뛰어간다. 


난 황제펭귄이라고 놀리고.... 


한 대 맞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초음파 사진을 보고 웃는다..






임신한 아내의 남편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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