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섬나라 다시 영국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by 여행같은일상

내 양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두 아이,

양 볼에 뽀뽀를 하는 두 아이를 가득 안은 양팔

상상만큼 현실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어른 둘 아이도 둘 2+2 가족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대의 어린아이가 둘이 된다는 건 어른 두 명이 매 순간 아이를 적어도 하나는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남편이 첫째를 데리고 외출하면 침대에서 쉴 수 있던 임산부 시절은 끝나고 수유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엄마와 한 몸인 둘째를 계속 끌어안고 다녀야 했다.


동생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빠와 다니는 게 익숙한 첫째가 아빠 손을 잡고 저만치 뛰어가도 나는 아기띠에 둘째를 메고 한참을 뒤떨어져 걷다 보면 이게 가족의 모습이 맞나 생각이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는 또 다른 해외 이주를 앞둔 이주 가정이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일을 하다가 주재원을 나가는 건 행정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일본에서 독립적으로 취업 비자를 소지 중이었기에 남편의 부양가족으로 등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 비자를 발급받고 나자 이제는 아이 둘을 데리고 이삿짐 싸기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 아이는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원비를 꼬박꼬박 내고 있었기에 다니던 유치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큰 아이를 봐주셨던 이모님이 파트타임이라도 둘째를 봐주시니 일주일에 두 번 자유 시간이 생겼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었지만 일본을 떠나기 전 백일을 맞이한 우리 막내를 축하하며 떡도 주문하고 백일상도 예쁘게 꾸며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가 가지고 갈짐, 항공으로 보낼 짐, 선편으로 보낼 짐을 구분해서 짐을 싸 둔덕에 일본 업체의 세심한 마무리 터치가 더해져 금방 포장 이사를 내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둘이다 보니 당장 필요한 짐들을 추리고 추려도 옮겨야 할 짐도 산더미였다. 큰 아이까지 본인의 가방에 물건을 짊어지고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한밤중이 돼서야 호텔로 이동하였다. 큰 아이 백일 후에 들어와서 둘째 백일까지 치르며 약 4년을 보낸 도쿄집과 감상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는 아이 둘과의 이삿짐 전쟁이었다.


대욕장이 있는 일본 호텔이었기에 누적된 피로를 온천욕으로 풀고 며칠간 행정 업무를 마무리한 후 우리는 한국을 거쳐 영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더 멀리 가는 만큼 인천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방문해 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챙겨다 주신 음식과 물건들을 들고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드디어 히드로 공항 도착! 아이 둘을 씻길 목욕 용품을 인천 공항에서 뺏긴 터라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구글맵을 켜고 가까운 마트에 가서 아이들 목욕 용품과 식수를 사 오기로 했다. 가져온 짐들 중 급한 것만 대충 풀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우리 부부는 라면을 끓일 힘도 없어서 마트에서 사 온 맛없는 파에야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저녁으로 먹었다. 일본 도착 첫날 먹었던 훨씬 맛있고 다양한 반찬의 벤또박스가 생각났다


다음 날부터 남편은 바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좁은 집에 남편이 일을 하는데 아이 둘을 조용히 시킬 자신이 없어서 밖으로 무작정 나가보기로 했다. 아기띠로 둘째를 안고 첫째 손을 잡고 우리 셋은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서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아이들 프로그램도 참여했다. 여러 동네의 playgroup을 찾아서 막내는 아기띠로 안은 채로 시간 맞춰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기를 반복하며 큰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영어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나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평일은 아이들과 정신없이 보내고 주말에는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보러 다녔다. 드디어 우리 가족이 지낼만한 곳을 계약하고 영국에 온 지 한 달 만에 우리의 공간으로 짐을 옮겼다. 백일을 갓 지내고 영국행 비행기를 탔던 둘째는 아기띠에 안겨서 엄마와 오빠를 바쁘게 따라다니다가 어느덧 이유식기가 되어서 아기띠 밖으로 나왔다.


운명처럼 다시 찾아온 영국행의 기회

내가 만들어낸 건 아니었지만 남편의 일로 돌고 돌던 우리 가족은 결국 영국, 세 번째 섬나라에 자리를 잡았다. 큰 아이는 낯선 환경이 힘겨웠는지 항상 내 뒤로 숨었고 엄마가 자기를 힘들게 한다고 볼멘소리를 해 내 심장을 아리게 했다. 한 달간의 아기띠 투혼이 빛을 발해 큰 아이가 놀이터에서 또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놀기 시작한 날 나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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