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보니 어느새 3월 말이다. 얼마 전에 만난 것 같지만 따져보니 올해 처음 보는 현진과 여의도 더현대 6층 카페에 마주 앉았다. 수다쟁이 둘이 만나니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또 둘 다 30대 후반이라 '건강이슈' 주제가 빠질 수 없었다. 그래도 현진은 몸이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안구건조증 하나만 빼면.
"아이고 안구건조증은 현대인의 질병이지"
"하하 오빠는 근데 눈 괜찮아요? 아까 계속 깜박이는 거 같던데"
"그래..? 아니 나는 괜찮아. 유통기한이 언제까진지 모르겠는 루테인을 매일 먹고 있긴 한데. 근데 내가 눈을 왜 깜박였던 것처럼 보였지...?"
생각해보면 난 아이콘택트가 힘들다. 상대의 눈을 마주하면 이내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긴 하지만 타인의 눈에게서 내 기를 뺏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대화 중에도 눈길이 여기저기로 흩어지는데, 이 때문에 상대방은 가끔 내가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난 사람 눈을 잘 못 쳐다보겠어. 어색한 사이와는 달라. 이게 아무리 친한 사람들이라도 내가 얇게 막을 형성하고 있나 봐. 그래서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싶지가 않은데, 눈을 쳐다보면 그 사람이 내 바운더리를 침범할 것 같아"
"오빠가 그 사람들에게 뭔가 감정을 갖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건 아니고 약간 뭐랄까... 난 집에서 엄마가 내 눈 똑바로 보고 얘기하는 것도 되게 좀 징그러워서 안 쳐다보는데"
아이콘택트가 습관화된 현진은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고 했다. 타고난 사업가이기도 한 그녀는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또 눈을 마주치는 것이 꽤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도 모두 동의했다.
사실 위에서 언급했듯 난 집에서도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가족끼리 징그럽게 왜 그래'란 생각이 앞서기에. 글을 쓰다 보니 이제야 약간의 해답이 나온다. 난 낯선 사람, 한 번 볼 사람과는 눈을 잘 마주칠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상대나 정기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은 불편하다.
영원히 감추고 살 비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난 내일도 누군가와 말을 하다가 눈을 보고 커피잔을 보고 천장을 보고 옆 테이블 사람의 핸드폰 케이스를 보고 또 그럴 것 같다. 그래도 내일부턴 의도적으로라도 눈을 보며 말하는 습관을 가져봐야겠다. 그러면 또 눈 안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누군가가 들어오고 약간의 소란도 있고 또 그러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