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295 첫째
"아빠, 술은 무슨 맛이야?"
딸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술맛이라...
막상 떠올려 보려니 도대체 무슨 맛인지 전혀 모르겠다.
최근 술 마시는 횟수가 줄어 더 알쏭달쏭한 것 같기도 하다.
"술 맛이지. 뭐~"
"아니~! 단맛, 신맛, 쓴맛 이런거 있잖아."
딸은 대충 얼버무린 대답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신맛은 확실히 아니고, 단맛도 아니다.
쓰다고 하기에도 뭔가 다르다.
"맛있어?"
대답이 늦어지자 재차 다그치며 묻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답이 쉽다.
"아니, 맛있진 않아."
"그럼 왜 먹어?"
"음... 시원해서...??"
"그럼 아이스크림 먹으면 되잖아."
딸은 내 대답이 이해되지 않는다.
답하다보니 나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난 왜 술을 마시는 걸까?
.
.
.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아버지는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어머니도 술을 잘드시는 편이다.
아버지는 소주, 어머니는 양주.
그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동서양 주종을 가리지 않는 강철의 사나이가 되었다.
20대에는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자랑이었다.
자정을 넘기고 픽픽 쓰러지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나면,
다음 날 나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30대가 되고 군생활을 하면서 술을 잘마시는 것은 능력이 되었다.
새벽까지 회식을 해도 다음날 술냄새도 풍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나의 모습은 강인한 군인의 표상이었다.(고 믿었다.)
40대가 되고 전역을 하면서 술자리가 확 줄었다.
한 달에 2번 정도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데,
그러고 나면 이틀은 피곤한 채로 지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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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왜 마시는 걸까?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고..'
딸의 물음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삼켰다.
생각해보면 요즘 만나는 사람들과는 커피 한잔 놓고도 한참을 떠든다.
그런 대화가 훨씬 유용하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마셔 놓고서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 진짜 왜 그렇게 열심히 마셨니...?
아!
아무래도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없어서 그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