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제일 사랑할래

D+3294 첫째

by 바다별

"우리 딸, 아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침대에 누워 두런두런 대화를 마치고 습관처럼 인사를 했다.


반쯤 눈을 감고 내 말을 들은 딸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말했다.

"아빠는 우리가 두번째 아니야? 엄마를 제일 사랑하잖아~!"

똑소리나는 첫째의 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 맞아! 아빠는 엄마를 제일 사랑하지. 그럼 리리들 두번째로 사랑해~"


불을 끄고 누워있는데 첫째가 다시 입을 뗀다.

"그런데 아빠, 나도 아빠가 두번째야. 나는 나를 제일 사랑하거든."

"우리 딸! 너무 좋은 생각이야. 아빠는 두번째도 좋아~"

저 자신을 제일 사랑하겠다니.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잠들기 전에 보석같은 말을 들어버렸다.



행운권만 뽑았다 하면, 척척 당첨되어 오는 딸에게 비결을 물은적이 있다.

"나는 마지막 뽑기 하나만 남더라도, 내가 당첨될거라고 믿어."

세상에... 딸의 비결은 근본을 찾을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근자감'이면 어떤가.

딸은 거의 항상 뽑기에 당첨되고,

가끔 뽑기운이 없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기쁘게 즐길 줄 안다.


놀라운 운을 불러오는 '근자감' 역시 어찌보면 '자기애'에서 오는 확신이다.

잘 풀리는 일을 두고 '역시 나야.'라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아끼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진흙탕 속에서도 매력을 잃지 않는 향기가 되어준다.

결국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세상에서

자신을 굳게 사랑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쉬지 않는다.

고기도 씹어 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주는 법을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입밖으로 내는 사랑한다는 말은 더욱 그렇다.

아내를 만나기 전, 나는 "사랑해"는 영화에나 나오는 말이라 여겼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식사하기 전, 잠들기 전, 때로는 아무일 없을 때까지

두루두루 언제고 하는 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시시때때 인사처럼 '사랑'을 주고 받는다.

'사랑'은 쉼없이 내리며 바닥을 다지고,

마침내 영원히 녹지 않는 만년설처럼 튼튼한 밑바닥을 만든다.

아무리 실패하고 쓰러져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기반.

"사랑받은 흔적"이다.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기반을 만들어 주는게 나의 작은 목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너에게 실망해도, 마지막까지 믿고 사랑할 사람이 아빠 엄마야."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사랑을 쌓아왔는데,

첫째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튼튼한 바닥이 생겼나보다.


어린 딸의 모습이 유난히 대견스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