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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l 08. 2021

다큐멘터리가 되살려낸 진주냉면

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 하연옥

평양냉면은 평양을 넘어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이북 음식이라 하면 함흥냉면과 어복쟁반, 온반과 만두 등이 있지만 평양냉면의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한다.

회담 환영만찬애서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는 남북한 정상

2018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 가져온 음식 역시 평양냉면이다. 평양 음식이 평안도를 넘어 이북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음식이 된 것은 지리적인 요인이 한몫했다고 본다. 평양은 대륙의 오랑캐로부터 나라를 방어하는 주요 군사 도시였으니 고급 관리와 상인들이  거주하며 온갖 물산의 집산지가 되었을테고, 또한 대륙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으로 중국의 사신들이 한양에 들어가기 전 여독을 풀던 도시였으니 접대 문화 역시 발달했을 것이다. 식도락이 발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풍부한 물자"와 "식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킬 귀족집단"이니 평양의 음식이 명성을 얻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쪽에도 평양의 대척점이 될만한 식도락이 발달한 도시가 있으니 바로 진주이다. 예로부터 "남에는 진주가 있고, 북에는 평양이 있다."라 하였다. 진주 역시 지리적으로 영호남의 길목에 위치하여 조선시대에는 한때 경상도 최대 도시라는 타이틀을 달기도 했으며, 일제 강점기 초반까지 경남상도 도청 소재지가 자리했던 곳이니 지나간 영화는 눈부시기 이를 데 없다.

화려함이 꽃같다 하여 화반(花盤)이라 불리는 진주비빔밥과 진주냉면

진주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비빔밥>과 <냉면>이 모두 탄생한 유일한 도시로 다른 지역에 비해 고명의 화려함이 대단하다. 음식이 화려하다는 것은 소비 주체가 일반 서민이 아닌 돈 있고 권세 있는 지배계층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진주냉면은 지역 양반들과 부임해온 관리들이 기방에서 선주후면으로 즐겨 먹던 음식인데, 조선이 망하고 교방과 기생조합 권번의 해체에 따라 쇠퇴하게 된다.

진주 중앙시장 대화재 소식을 다룬 신문 (1966. 2. 8 조선일보)

그나마 기방에서 나온 숙수들이 진주 중앙시장에 냉면집을 개업하여 명맥을 이었으나, 이마저도 1966년 2월 발생한 대화재로 맥은 끊어지게 된다. 서민들이 일상에서 먹던 음식이었다면 여염집 정지(부엌)에서 질긴 생명력을 이어갔겠지만, 메밀을 갈아 반죽하여 제면하고 따로 육전을 부쳐 고명으로 얹는 화려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의 조리법은 계승되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분명 문헌에는 남아있으나, 만드는 이 없는 진주냉면을 되살린 계기는 부산방송과 진주시, 한국전통음식문화연구원의 김영복 원장이 합작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진주냉면 ; 2000년 방영>이다.

진주냉면을 부활시킨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다큐멘터리를 보면 진주냉면을 부활시키려는 김영복 원장의 노력은 고집스럽고 끈질기며 그래서 일종의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우선 그가 시작한 진주냉면의 재현작업은 문헌과 구전을 고증하는데 그치지 않고 진주냉면 기술자를 찾는 것에서 정점을 찍는다. 마지막으로 폐업한 냉면집의 토지대장까지 뒤져가며 관련자를 수소문하고, 과거 진주냉면의 맛을 기억하는 분들을 수배하여 검증을 했다.

진주냉면 재현 모습과 검증단 (수영식당 출신 정태호 냉면가술자)

그렇게 수소문해서 찾아낸 진주냉면 조리법을 알고 있는 이가 세명, 검증작업을 맡은 분들은 젊은 시절 먹었던 진주냉면의 맛을 기억하는 지역 노인들이다. 검증 작업은 전체적인 맛뿐 아니라 고명으로 올리는 김치가 백김치냐, 고춧가루 김치냐부터 해물 육수와 장국의 배합비와 색 등 꽤나 정교하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온고지신한 진주냉면의 조리법은 서부시장에서 부산냉면이란 상호로 냉면을 팔던 황덕이 할머니에게 전수되었고, 상호는 진주냉면을 팔기에 당연히 부산냉면에서 <진주냉면>으로 간판을 바꾸게 된다. 이후 막내 따님이 물려받은 본점은 본인의 이름을 따서 <하연옥>으로, 아드님이 물려받은 곳은 며느리의 성함을 따 <박군자 진주냉면>으로 계보가 나누어지게 된다.


식당의 역사는 1945년 1대 故 하거홍 사장께서 중앙시장의 부산식육식당으로 시작하셨으나, 진주냉면의 명맥을 이은 것은 2000년대 들어서이며, 상표권 등록을 위해 진주냉면에서 하연옥으로 상호를 바꾼 시기가 불과 2011년이다.

하연옥의 비빔냉면과 물냉면

서울사람들은 소의 사골이나 양지를 고아 만든 "슴슴한" 평양냉면에 익숙하니 해물 육수의 감칠맛과 절제와 여백의 아름다움 없이 그릇에 꽉 차게 올린 육전과 계란 지단, 편육 등의 고명이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특색이 분명한 만큼 호불호 역시 강한 편이나, 진주냉면의 역사를 알고 먹으면 오히려 맛의 균형과 완성도가 굉장히 탄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진주냉면이 궁금하다면 물냉면을 먹어야 하지만, 육전을 싸 먹을 때의 궁합은 오히려 비빔냉면이 더 좋다고 느껴진다.

하연옥의 육전과 서비스로 제공되는 선지국

냉면과 곁들여 먹을 메뉴로는 육전을 추천한다. 육전을 별도로 주문하면 선지국이 서비스로 제공되는데 깊은 맛이 일품이다. 육전의 감칠맛 역시 대단한데, 계란물에 해물육수 배합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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