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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l 20. 2021

대한민국 냉면의 모든 것

평양·함흥·진주·해주·부산밀면·서울식냉면을 대표하는 노포 이야기

아무리 냉면이 겨울 음식이라지만, 폭염이 계속되는 한여름을 이겨내는 음식으로 냉면만한 것이 없다. 이른바 이열치냉(以熱治冷)으로 여름나기를 위해 대한민국 냉면의 종류와 역사, 각 냉면을 대표하는 <평균업력 75년의 냉면 노포>를 정리해본다.



Since 1919,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 내호냉면   

"피란민이 만들어낸 부산의 맛, 밀면"

내호냉면의 부산 밀(냉)면

1950년 6월, 북한군은 기습 남침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였고, 부산은 임시 수도이자 피란길의 종착지가 되었다. 흥남부두 철수와 1.4 후퇴로 60만 명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들며 인구는 급증하였으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섞여 살며 <부산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부산 밀면 이야기는 <함흥냉면>과 <삯국수>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부터 시작된다.

부산의 밀면은 빨간 양념장이 올라간 것이 묘하게 함흥냉면과 닿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함흥·흥남 지역 10만여 명의 피란민이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내려와 도착한 곳이 거제 장승포였으니 함경도 사람들이 먹던 농마국수와 이들이 부산에서 정착하여 만들어낸 밀면은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다. 당시 이북 지역에서는 집에서 감자 전분을 가져가면 식당에서 품삯만 받고 국수를 만들어주는 <삯국수>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는데, 우암동 내호냉면에서 동항성당 하 안토니오 신부님의 의뢰를 받아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7:3의 비율로 섞어 만들어낸 것이 밀면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내호냉면이 부산에서 개업한 시기는 1953년이나 실상 이 냉면집의 역사는 1919년 이북에서 개업한 동춘면옥으로부터 다져야 한다. 동춘면옥의 주인장이었던 이영순 할머니께서 전쟁통에 피란을 와 같은 상호로 식당을 열었다가 우암동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10여 년 정도 되던 해 "고향인 흥남면 내호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내호냉면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니 이곳은 <4代 백년식당>이라 봐야 한다. 또한 밀면 원조 식당임에도 상호는 오히려 내호밀면이 아닌 내호냉면인 것은 식당의 뿌리가 냉면집이었던 동춘면옥이고, 초창기 메뉴 역시 밀면이 아닌 냉면을 팔던 곳이어서라는 것도 기억해둬야 할 대목이다.  (내호냉면 리뷰 全文 Link)



    

Since 1945, 경상남도 진주시 이현동 하연옥   

"다큐멘터리가 되살려낸 진주냉면"

하연옥의 진주냉면

진주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비빔밥>과 <냉면>이 모두 탄생한 유일한 도시로 다른 지역에 비해 고명의 화려함이 대단하다. 음식이 화려하다는 것은 소비 주체가 일반 서민이 아닌 돈 있고 권세 있는 지배계층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진주냉면은 지역 양반들과 부임해온 관리들이 기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인데, 조선이 망한 후 교방과 기생조합 권번의 해체에 따라 쇠퇴하게 된다. 그나마 기방에서 나온 숙수들이 진주 중앙시장에 냉면집을 개업하여 명맥을 이었으나, 이마저도 1966년 2월 발생한 대화재로 맥은 끊어지게 된다. 분명 문헌에는 남아있으나, 만드는 이 없는 진주냉면을 되살린 계기는 부산방송과 진주시, 한국전통음식문화연구원의 김영복 원장이 합작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진주냉면 ; 2000년 방영>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진주냉면을 부활시키려는 김영복 원장의 노력은 고집스럽고 끈질기며 그래서 일종의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이렇게 온고지신한 진주냉면의 조리법은 서부시장에서 부산냉면이란 상호로 냉면을 팔던 황덕이 할머니에게 전수되었고, 상호는 진주냉면을 팔기에 당연히 부산냉면에서 <진주냉면>으로 간판을 바꾸게 된다. 이후 막내 따님이 물려받은 본점은 본인의 이름을 따서 <하연옥>으로, 아드님이 물려받은 냉면은 며느리의 성함을 따 <박군자 진주냉면>으로 계보가 나누어지게 된다. 평양냉면에 익숙한 이들은 해물 육수의 감칠맛과 절제의 아름다움 없이 그릇에 꽉 차게 올려진 육전과 계란 지단, 편육 등의 고명이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특색이 분명한 만큼 호불호 역시 강한 편이나, 진주냉면의 역사를 알고 먹으면 오히려 맛의 균형과 완성도가 굉장히 탄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연옥 리뷰 全文 Link)




Since 1946, 서울시 중구 주교동 우래옥   

"평양냉면 역사의 산증인"

우래옥의 평양냉면

우래옥의 전신은 평양에서 명월관이란 식당을 운영하던 장원일·나정일 부부가 광복 직후 남하하여 1946년경 서울에 문을 연 서북관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열었다 하여’ 우래옥(又來屋)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대부분의 이북 냉면집들이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개업한 것에 반해 이 집은 광복 직후 문을 연 서북관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되니 현존하는 최고(最古) 업력의 평양냉면 식당이다. 실제 특허청에 따르면 최장수 식당 상표권은 1969년 등록한 우래옥이라 발표한 바 있다.

평양냉면은 양념과 조미료에 좌우되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맵거나 달고 시고 짠맛이 일체 배제된 슴슴한 절제미가 강조되는 음식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맛이 슴슴하기에 은은하게 치고 올라오는 메밀향, 채로 썰어낸 배에서 올라오는 달큰함, 맑은 육수를 들이켜고 난 후 올라오는 육향 등이 하나하나 제대로 느껴진다. 우래옥은 오로지 한우로만 육수를 내기에 시중의 다른 평양냉면보다 육수의 향이 진하기로 유명하다. 밋밋하다 하여 평양냉면을 멀리 하는 이들에겐 <평냉 입문 식당>으로 추천할만하다.

우래옥 본점에는 단골들만 주문하는 비밀 메뉴가 있으니 이북의 여름 별미인 <김치말이>이다. 보통 김치말이라 하면 붉은 김칫국물로 말아낸 하얀 소면을 떠올리기 쉬우나, 원형에 가장 가깝게 재현한 이곳의 김치말이는 밥이 말아져 있다.     




Since 1952, 경기도 양평군 옥천냉면황해식당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해주냉면"

옥천냉면황해식당의 해주냉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서울에 안착하며 대중의 인기를 얻어 성장했지만, 북한 황해도 해주 지역의 냉면은 인구가 많지 않은 백령도와 경기도 양평 옥천지역에 자리를 잡으며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재미있는 대목은 절대적인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오히려 이북의 지명으로 불리는데 반해 해주 냉면은 남한의 지명을 따서 백령냉면, 옥천냉면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분명  냉면 모두 황해도 해주라는 지역에서 나왔으나, 각자 특성이 강한 <배다른 형제> 가깝다. 그래도 사람들이 가장 알아주는 곳은 6 국도 대로변에 자리한 <옥천냉면황해식당>이다.

한국전쟁 발발  황해도 금천에서 피난을 내려온 부부는 부산에서 지내다 종전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경기도 양평으로 올라왔다. 부부는 구슬 같은 샘이 있다 하여 옥천(玉泉)이라 불리는 곳에 잠시 거처를 정하고 궁여지책으로 이북에서도 만들었던 냉면을 팔게 되니  시기가 1952년이요, 바로 옥천냉면황해식당의 시작이자, 이북 음식인 해주냉면이 남한 경기도 양평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게  배경이다.  식당에서는 여타 냉면집에서 만나기 힘든 존재감 강한 곁들임 메뉴가 존재하니 바로 큼지막하게 부쳐낸 완자이다. 통통한 메밀면에서 나오는 구수한 맛과 조선간장의 짭조름함, 돼지고기 육수의 감칠맛 등을 한층  조화롭게 해주는 것은 2 이상 염장해 숙성시킨 무로 만들었다는 무짠지요, 식탁과 위장을 든든하게 해주는 것은 완자이다.  (옥천냉면황해식당 리뷰 全文 Link)   




Since 1953, 서울시 중구 오장동흥남집    

"대한민국 함흥냉면의 전설"

오장동흥남집의 함흥냉면

<오장동흥남집>의 창업주인 노용언 할머니는 함흥 출신으로 흥남부두 철수 작전 당시 거제도와 부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와 1953년 식당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70여 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니 흥남집의 역사가 곧 남한의 함흥냉면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상 함흥냉면은 비빔으로 먹기 마련이고, 면에 숙성된 양념회만 얹어 나오는 반면 이 집은 비빔냉면이라도 특제 비법 양념인 <간장 육수>가 그릇에 자작하게 담겨 나온다. 간장 육수는 뭉쳐 떡지기 쉬운 고구마 전분 국수 타래를 부드럽게 풀리게 하고, 양념이 고루 비벼지도록 하는 것으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이 집의 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설탕과 참기름을 <다소 과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우선 면에 설탕을 뿌려 단맛이 베이게 한 다음 식초와 겨자를 두른 뒤 초벌로 비벼주고, 참기름을 둘러 제대로 비벼내면 된다. 면에 스며든 달달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매콤한 양념이 치고 들어오고 그 뒤를 이어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대미를 장식한다. 함흥냉면의 비빔냉면은 물로는 헹궈내지 못하는데, 냉면 한 젓가락 먹고 따뜻한 육수를 한 모금 머금으면 신기하게도 매운맛이 순해진다.  (오장동흥남집 리뷰 全文 Link)    




Since 1966,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 3가 골목냉면   

"금호동 재래시장의 서울식 냉면"

골목식당의 서울식냉면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재래시장에서 수십 년째 터줏대감으로 사랑받고 있는 노포 냉면집이 있으니 성동구 금호동 금남시장에서 1966년 개업하여 3대째 이어내려오는 <골목냉면>이다. 아직 외식산업이 태동하기 전인 1960년대 개업한 식당들은 대부분 상호랄 것이 없었다. 특별한 조리법이 있어 장사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전쟁 후 없는 살림 통에 먹고살기 위해 장사에 나서다 보니 상호도, 간판도 변변했을 리 없다. 그 당시 식당의 상호는 단골들이 주인장의 고향이나 외모, 식당 위치 등 단순하면서도 단편적인 특징 하나를 잡아 편하게 부르곤 했는데, 이 식당은 금남시장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상호명이 자연스레 <골목냉면>이 되었다. 이 집의 냉면은 진주냉면처럼 황태, 멸치, 새우, 다시마 등 해물로 육수를 낸다. 하지만 1960년대라면 진주냉면의 맥이 끊겨있던 시기인 데다 소고기, 닭고기, 꿩고기를 사용하는 평양식도 아니었으며, 함흥냉면과는 결이 다른 빨간 비빔양념이 들어가니 오히려 <서울식 냉면>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대표 메뉴인 비빔냉면은 고운 고춧가루와 참깨, 오이와 절임무 등의 고명이 잔뜩 올라가 있다. 물냉면 역시 참깨가 수북이 올라가 있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해물로 빚어낸 육수의 감칠맛이 참 좋다. 보통 냉면은 절제된 여백의 맛을 즐기는 음식이라 평하지만, 이 집의 냉면은 참깨와 고명이 절제는커녕 좀 과하다 싶은데 이는 오히려 전쟁 후 물자가 귀했던 그 시절 무조건 많이 얹어주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상이 반영된 조리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석함이 맞을 듯하다.  

(골목식당 리뷰 全文 Link) 


※ 본 원고의 일부를 정리하여 <현대건설 7월호 사보; 노포냉면 맛집 열전>으로 기고하였습니다.

※ 각 식당 하단의 Link를 클릭하시면 해당 식당의 리뷰 전문(全文)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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