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마음을 위로받고 싶을 때 먹는 음식: 햄버거
코르티나 담페초 돌로미티 정상을 구경한 뒤 미수리나 호수에 들려 돌아오는 길에 어둑어둑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로컬 식당의 간판이 보였지만 딱히 뭐를 주로 하는지 알 수 없음으로 선뜻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배가 고파지자 생각이 달라지며 근처에서 해결하고 가는 것이 생리적 시계에 맞을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 먹고 가자'라고 하니까
오다가 톨게이트 부근에서 봐둔 맥도널드가 있으니까 거기에 가자고 한다.
미수리나 호텔을 돌아볼 때 이미 석양이 진 뒤였음으로 길을 재촉하고 지체하지 않았음에도 한 참을 운전해 도 톨게이트가 나오지 않아,
'아직 톨게이트도 안 나오네' 걱정반 짜증 반으로 '거봐, 내 말 대로 했으면 좋았잖아'를 항변하는 듯 퉁명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톨케이트가 나오고 맥도널드 사인이 보이길 기대했으나 여기는 어디나 흔하게 맥도널드 간판을 볼 수 있는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 산악지대.
남편이 말한 톨게이트는 베니스를 통과한 톨게이트 그러니까 앞으로 2시간여를 가야 당도하는 곳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배도 비우고 1시간여 운전을 하니까 베니스로 돌아가는 차량들로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체념 모드. 드디어 정체된 차량들이 해소가 되어 베니스 톨게이트를 약 20분 남겨둔 지점에서 빠져나와 로컬로 운전해 들어갔다.
밤늦은 시각이라 주변을 볼 수 없어서 외진 곳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번화가도 아닌 이런 곳에 설마 맥도널드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목적지에 당도했음을 알렸다.
와~ 세상에 맥도널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늦은 시각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것은 처음 본다!
매장이 보통의 맥도널드 보다 두 배는 되어 보이게 널찍한데 안과 밖의 테이블이 꽉 차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식사하러 나온 것 같다. 아니면 우리처럼 돌로미티 갔다가 로컬 레스토랑 가지 않고 맥도널드를 찾아서 온 사람들일지도...
짐짓 놀라서 '어찌 그리 사람이 많지?' 하니까 남편 왈, "원래 맥도널드가 미국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좋아"
햄버거를 시키니까 샐러드가 딸려서 나온다. 샐러드에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 드레싱이 용기에 담겨 따로 나온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사람들은 샐러드를 반찬처럼 바게트 빵을 밥처럼 먹는구나. 미국 맥도널드에서는 팬데믹 이후에 샐러드 메뉴가 사라졌고 사실 따로 주문을 해야 한다.
보통 미국 샐러드는 걸쭉한 샐러드드레싱을 동반하는데 이탈리아는 신선한 야채에 오직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
심플한 것이 완전 내 스타일이네~
패스트푸드란 생각이 들지 않고 건강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빵위주의 가벼운 이탈리아 식단에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맥도널드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주머니가 가벼운 이탈리아 청년들이나 산악자전거 아니면 등산을 즐기기 위해 산을 찾은 사람들이 황소 같은 식욕으로 이곳을 들려 가는 것 같았다.
플로렌스 호텔 옆에 <올드 웨스턴> 식당의 외부에 설치된 메뉴판에 햄버거와 타코가 있어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조그만 종이봉지에 담긴 무엇인가를 준다. 기다리는 동안 애피타이저로 먹으라는 것 같아 받아 들고 어둠 컴컴한 조명에 벽에는 미시시피 강에 떠있는 증기선 그림이 걸려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편안하게 앞으로 펼쳐질 여행의 기대감을 안고 들뜬 마음으로 앉아서 봉지를 만져 보았다.
왠지 멕시코 음식에 흔한 이탈리아식 밀전병? 일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손을 짚어 넣어 촉감을 보니 마치 건빵처럼 딱딱하다.
과자 같은 것인가 보다 하고 몇 개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깨물으니 바삭바삭하게 소리가 나면서 고소한 맛도 난다.
'특이하네~'
몇 개를 더 집어넣어 씹어 보았다. 웬만하면 부드럽게 씹히면서 이제 넘어갈 차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씹어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뭐야?' 하면서 뱉어보니 땅콩이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타코는 미국이나 이탈리아나 비슷했다.
식사를 마치고 내일 스케줄을 의논하면서 10여분이 지나고 계산서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웨이트리스가 오지를 않는다. 이제는 얼굴을 마주쳐 눈짓을 하려고 아예 그 방향을 주시하면서 앉아 있다. 얼마 지나자 우리 테이블 웨이트리스가 지나간다. '여기 계산서요'라고 눈을 맞추고 얘기를 했다.
그런데 가져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참을 기다리니 지나가는 웨이트리스가 계산서 가져올 생각을 안 하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지나간다.
그제야 분위기를 알아채고,
'여기 테이블이 아니고 저기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것인가 봐'
미국식 레스토랑에 앉아 미국으로 착각하고 내쪽으로 가져올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아마 계산서를 기다리며 앉아있었던 시간이 족히 30분은 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