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옷정리
시원한 바람이 분다.
기쁨보단 걱정이 발이 빠르다.
단풍보단 옷정리가 먼저 다가온다.
마음보단 손이, 한 템포 빠른 그런 계절이 왔다.
풀소유는 엄마의 어깨를 짓눌렀다. 결혼한 지 10년 차,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아이들의 옷이 많이 질수록 그녀의 옷장에는 옷이 줄었다.
자신이 선택한 간결한 삶과 선택당한 간결한 삶의 한 끗에는 씁쓸함이 묻어있다.
엄마는 남을 옷과 버려질 옷을 분류한다. 그녀는 옷들이 꼭 사람 관계 같단 생각이 든다.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이야기 책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친구 같은 옷들은 고민 없이 남고
디자인서적처럼 너무 비싸서 못 입는 옷은 어려워도 남고
표지만 보고 제목에 이끌려 데려온 책처럼 한번 입은 새 옷도 새 옷이라 남고
이야기 담긴 책처럼 추억 있는 옷도 추억해서 남고
오래되고 마음 떠난 옷들만 버려진다.
의미 있는 옷은 소유라는 새로운 택을 달고 예쁘게 접혀 내년을 기다린다.
그녀는 냉정하게도 버려지는 무의미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