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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Sep 20. 2023

28일

책임


다들 어깨에 짐을 지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땐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짐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픈 기억 하나쯤은 다들 안고 사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차오른다. 아빠는 아마 모를 것이다. 내가 잊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

내가 고3 때 아빠에게 큰 사고가 있었다. 처음 응급실에 가서 붕대를 칭칭 감은 아빠의 모습이 내 머리에 각인 돼 있다.

오빠가 군대에 있어서 그 당시 엄마와 나만 있었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보듬어 안고 참으로 많이 울었다.

외할머니 장례식 때 제외하고 엄마가 그렇게 운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금만 늦게 발견됐다면 아마 죽었을 거라 의사가 말했다고 했다.

엄마는 울면서 “너희를 보려고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 돌아왔는갑다”며 자주 이야기 했다.

엄마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땐 잘 몰랐다. 그때의 나는 무기력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었고 일상을 살아냈지만 앞은 늘 깜깜했다.

가벼웠던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 건 그때부터였다.

그때 내 어깨에 놓인 짐은 ‘앞으로 나의 삶’이었다. 아빠가 죽지 못하고 돌아와서 살고자 했던 삶의 이유가 바로 ‘나’ 였기에.  그래서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파도에 떠밀리듯 현실적인 부분과 내 마음을 모두 것들을 감당해야만 했던 것 같다. 어영부영 아무렇게 살 수 없었다.

사고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족은 그때의 사건에 대해 모두가 합의라도 한 듯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어딘가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결혼을 빨리하게 된 것도 빨리 독립해서 살아가게 된 것도 그때의 사건이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내가 아빠의 짐이 될 순 없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가정을 꾸렸다. 내가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부분들은 짐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나는 아빠의 짐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내가 짐이라고 달아났던 부분은 기꺼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었다.

나는 그때 가족에게 책임을 덜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는 이제 짐을 지는 것이 아닌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완전하지 못해도) 암흑 같았던 그 시간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엄마는 아빠의 배우자로 책임을 다했다. 힘들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매일 같이 똥오줌을 갈아내고 아빠 옆을 지켰다.

다만, 몸과 마음이 힘이 들고 고단했음으로 그 책임이 나에게  짐처럼 느껴졌던 것뿐이다.

우리는 책임을 다하고 있다. 오늘 하루에 대한 책임, 일에 대한 책임, 마음에 대한 책임,

존재에 대한 책임, 선택에 대한 책임, 자녀들에 대한 책임. 어깨가 무겁다면 그것은 짐이 아니라 책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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