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예로부터 이곳을 지켜왔다고 한다. 거의 100년 전부터 어느 때는 터줏대감이라, 어느 때는 신이라 불리며 사람들의 공양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를 잊어갔고 그것에게 더 이상 공양하지 않았다.
그것은 10년 이상의 굶주림을 참지 못해 결국 자리를 털고 빛을 따라 도시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물냄새를 따라 한강까지 내려와 한강변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만 쳐다보았다. 한때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던 존재였는데 나는 어쩌다 이지경이 된 걸까 흙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지웠다 하며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것을 조금 안쓰러운 듯한 눈으로 흘낏 보고 지나치는 자상해 보이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그 남자를 쫓아갔다.
이제 그것은 그 남자의 침대 밑에 살면서 그 남자의 찬장 안 너구리를 빼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무신경한 남자는 너구리가 줄어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이제 배고프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이전에 했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도 다 부질없는 짓 같아서 그만둔 지 오래다. 다만 한 가지 욕심내자면 그 남자가 너구리 말고 다른 라면도 사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다채로운 라면 취향을 가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