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와 함께 하수구에 들어온 지 13일째.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서울 지하 어느 곳에 금이 산처럼 쌓인 구간이 있다고 했었다. 78년 자신이 하수도의 수질 개선을 위해 샌님 같은 공무원과 지하에 내려왔다가 길을 잃고 헤맨 지 6일쯤 되었을 때 그 황금의 방을 발견하였다고. 평소 의심 많은 지저분한 성격이었던 나는 코웃음이 났지만 중요한 고객인 박사에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다다음날 새벽 3시 박사는 지하의 금을 찾으러 가자고 우리 집 창문을 두드렸다. 잠이 덜 깬 건지 나는 레인부츠에 발을 구겨 넣고는 아무 저항 없이 따라나섰고 13일째 돌아가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이제는 돌아가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박사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아직도 콧노래를 부르며 철벙철벙 걸어가는 것이다. 뒤에서 목을 졸라 죽이는 상상을 수백 번은 한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이젠 진짜 다 온 것 같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아니, 전혀 믿고 있지 않아. 그래도 그를 따라 걷는 수밖에 없어 뒤를 쫓아가고 있는데 불현듯 갑자기 박사가 멈춰 섰다.
"여깁니다."
겨우 성인 남성이 기어들어갈 수 있는 통로 같은 게 나왔다. 박사의 뱃살로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지만 나는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애매한 크기의 통로. 저 안에 금이 미친 듯이 쌓여있다곤 하지만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에 선뜻 들어가지지 않았다. 망설이는 나를 보며 박사는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긴 아쉽다. 하지만 내가 저 통로로 기어 들어간 새에 박사가 통로 끝을 막기라도 한다면? 금은 존재하지도 않고 사실 박사가 미치광이 살인마라면?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의심은 먼지처럼 쌓여갔다. 박사가 슬슬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낼 때쯤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물에 반쯤 잠겨 있던 커다란 돌을 들어 박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박사는 힘없이 고꾸라졌고 나는 그 위로 한번 더 돌을 찍어 내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통로를 기어 들어가니 정말 박사가 말한 대로 엄청난 양의 금이 있는 방이 나왔다. 박사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이 금을 보여주기 위해 13일을 걸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