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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도개 Oct 13. 2023

불만

보이는 것도 다는 아니다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각자의 머리 위로 불만 풍선을 늘어뜨리고 다닌다. 불만의 정도에 따라 크고 작은 풍선들로 본인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2025년 갑작스레 늘어난 칼부림과 사람을 자살 직전까지 몰고 가는 집요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짐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감은 최고조가 되었다. 그 결과, 당하기 전에 해치우자는 풍조가 생기면서 리어카를 밀어준 학생을 리어카로 밀어버린 사건이나 포장한 닭꼬치를 칼로 오해해 먼저 칼로 찌른 사람도 있었다. 그로 인해 정부는 불만 풍선을 달아 해괴한 짓을 저지를 사람을 미리 추려내어 격리한 후 불만을 해소시켜 내보내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불만 풍선이 터질 만큼 빵빵해지면 공무원들이 방문하여 그 사람을 수거해 간다.


그래서 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우리 회사에 새로 온 디자이너였는데 그녀의 풍선은 이미 한계치에 이른 듯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곧 수거당할 인간을 새로 뽑은 것일까. 그리고 저렇게 빵빵한 풍선을 달고 있는 인간을 왜 아직도 수거하지 않을 걸까. 수많은 의문이 그녀를 보자마자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그녀의 풍선이 터지는 걸 보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녀가 갑자기 들이닥친 공무원에게 끌려가는 꼴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만 풍선이 저렇게 커다랗게 부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겉보기에 그녀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 성선설을 믿었고 세상은 아직도 아름다운 곳이고 유기견을 키우는 그런 여자였다. 만약 불만 풍선이 달려있지 않았다면 근래 보기 드문 참한 여성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뻘겋게 부풀어 오른 그녀의 풍선은 그녀가 충분히 위험한 사람이며 가까이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도 그냥저냥 했고 적당히 발랄해서 큰 문제없이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저 풍선은 불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차에 일은 터졌다. 어느 날 점심을 먹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각자 음식을 데피는 과정에서 그녀는 남의 점심을 함부로 꺼내 방치하고 본인의 음식을 밀어 넣었다. 방치된 음식의 주인은 전혀 녹지 않은 닭가슴살을 보고 누가 대체 이런 거냐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콧노래를 부르며 막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도시락을 꺼내드는 참이었다. 모든 걸 지켜봤던 우리들은 안절부절못하며 그들을 지켜보는데 화가 난 그가 어떤 '무식한' 인간이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소리치자 그녀는 조용히 하이힐로 그를 공격했다. 그는 부러진 발가락과 피가 줄줄 나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울부짖었고 그녀는 처참하게 터진 풍선을 질질 끌며 공무원들에게 끌려나갔다. 그녀는 말로만 듣던 '분노조절장애'였고 이미 수차례 끌려가 개조를 받았음에도 고쳐지지 않는 1등급 감시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사회복귀를 위해 저렇게 커다란 풍선을 달고도 회사에 취직할 수 있던 것이다. 위험을 감지하는 불만 풍선을 달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진짜 위협적인 위험군을 골라낼 수 없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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