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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도개 Sep 09. 2023

의구심

점점 커지는 걷잡을 수 없는 것

박사와 함께 하수구에 들어온 지 13일째.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서울 지하 어느 곳에 금이 산처럼 쌓인 구간이 있다고 했었다. 78년 자신이 하수도의 수질 개선을 위해 샌님 같은 공무원과 지하에 내려왔다가 길을 잃고 헤맨 지 6일쯤 되었을 때 그 황금의 방을 발견하였다고. 평소 의심 많은 지저분한 성격이었던 나는 코웃음이 났지만 중요한 고객인 박사에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게 진짜라면 대단하네요. 산처럼 쌓인 금이 실존한다면 한번 구경해보고 싶네요. 장관일 거예요."

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다다음날 새벽 3시 박사는 지하의 금을 찾으러 가자고 우리 집 창문을 두드렸다. 잠이 덜 깬 건지 나는 레인부츠에 발을 구겨 넣고는 아무 저항 없이 따라나섰고 13일째 돌아가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이제는 돌아가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박사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아직도 콧노래를 부르며 철벙철벙 걸어가는 것이다. 뒤에서 목을 졸라 죽이는 상상을 수백 번은 한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이젠 진짜 다 온 것 같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아니, 전혀 믿고 있지 않아. 그래도 그를 따라 걷는 수밖에 없어 뒤를 쫓아가고 있는데 불현듯 갑자기 박사가 멈춰 섰다.


"여깁니다."

겨우 성인 남성이 기어들어갈 수 있는 통로 같은 게 나왔다. 박사의 뱃살로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지만 나는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애매한 크기의 통로. 저 안에 금이 미친 듯이 쌓여있다곤 하지만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에 선뜻 들어가지지 않았다. 망설이는 나를 보며 박사는 빨리 들어가라고 재촉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긴 아쉽다. 하지만 내가 저 통로로 기어 들어간 새에 박사가 통로 끝을 막기라도 한다면? 금은 존재하지도 않고 사실 박사가 미치광이 살인마라면?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의심은 먼지처럼 쌓여갔다. 박사가 슬슬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낼 때쯤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물에 반쯤 잠겨 있던 커다란 돌을 들어 박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박사는 힘없이 고꾸라졌고 나는 그 위로 한번 더 돌을 찍어 내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통로를 기어 들어가니 정말 박사가 말한 대로 엄청난 양의 금이 있는 방이 나왔다. 박사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나에게 이 금을 보여주기 위해 13일을 걸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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