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렇게 급한 일인가요?
회사 업무를 보다 보면 다른 팀이나 업체와 연락해야 할 일이 많은데 연락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바로 메일과 전화다. 매일 수십 번씩 어떤 형태로든 연락을 하게 되는데 둘 다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적절히 사용하면 된다. 나는 상대방에게 연락할 때도 전화보다는 메일을 선호하는 편이며, 연락받을 때도 전화보다는 메일로 받기를 원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업무의 흐름이 끊긴다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가끔 멍 때리기도 하고 딴짓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집중해서 일을 한다. 메일로 연락 오는 경우는 메일 열람을 뒤로 미룰 수 있다. 특히 중요하고 긴급하고 집중을 요하는 업무를 보고 있을 때는 메일 확인을 실시간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도 메일이 오면 아웃룩에서 신규 메일 알람을 띄워주기 때문에 메일 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인지하게 되고 유혹(?)을 참지 못하고 메일을 열어보기도 하지만, 나의 상황과 의지에 따라서 메일을 당장 확인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전화는 사무실에 벨소리가 울리는데 안 받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나의 의지가 아닌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에 의해서 나의 업무는 방해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하고 다시 원래의 집중 상태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또한 했던 작업을 다시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한 번에 일을 끝내면 한 시간에 처리할 일을 중간중간에 흐름이 끊기면 총 투입 시간은 그 이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전화보다는 메일을 선호하며 연락을 할 때도 거의 메일로 연락을 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급하게 일을 요청하면서 "고객 하고 약속한 게 있는데 깜빡하고 있었어. 미안한데 이것 좀 오늘까지 처리해줄 수 있을까?" 상황을 공감하고 해 주기로 했는데 한 시가 멀다 하고 전화해서 "어떻게 되고 있어? 몇 시쯤 완료할 수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줄게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라고 물어본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전화하지 마세요."
2. 내가 세워놓은 계획(우선순위)이 틀어진다
내가 세워놓은 우선순위에 따라서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는데 전화가 오면 그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새치기다. 물론 모든 일들은 계획대로 될 수 없고 급한 일들은 우선순위를 바꿔서 먼저 처리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전화도 꽤 많다. 간단한 업무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간단한 업무라 바로 안 해주기도 그렇고 해서 먼저 처리해주게 된다. 어떤 날은 전화만 받다가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3. 기록이 안 남는다
전화로 주고받은 대화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 물론 핸드폰에는 녹음 기능도 있지만 통화하면서 녹음하는 사람도 없고 녹음한 파일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유독 메일 쓰는 것을 꺼리고 애매한 일이나 책임질만한 일에 대해서 유선상으로만 전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시치미를 떼기 좋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속일 마음은 전혀 없지만 잘못된 기억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다. 전자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만약 후자라면 전화보다는 메일로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후자의 이유로 메일을 선호한다. 나의 기억력을 믿지 못한다. 나의 흐릿한 기억력 때문에 나쁜 의도를 가진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메일을 쓴다. 메일의 기록이 없다면 훗날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의 상이한 기억력으로 인해서 원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결론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메일은 그렇지 않다.
4. History 관리가 되지 않는다
여러 팀, 여러 사람에게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 전화로는 부족하다. 메일을 통해서 업무의 개요와 요청사항들에 대해서 명확히 하는 게 좋다. 메일에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면 새로운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더라고 history가 남아 있어서 내용을 파악하기 좋다. 처음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내용 정리를 잘해놓으면 후행 부서 사람들이 내용 파악하기가 수월한데 메일 쓰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 메일을 쓸 때 1시간을 쓰더라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더 많이 아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메일에 파일만 첨부하고 전화로 대충 설명한 다음에 나머지 후속 조치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심지에 메일 제목 조차 없다. 이런 사람이 진짜 간혹 보인다. 본인 시간 귀한 줄만 알고 다른 사람 시간 귀한 줄을 모른다.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더라도 글로써 전달되지 못하는 한계들도 많다. 이럴 땐 전화통화를 하던지 미팅을 하던지 해서 서로 간에 공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업무의 특성에 따라서 메일보다 전화가 훨씬 효율적이고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업무 특성상 문제가 터지지 않는 이상 굳이 전화 통화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