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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5. 2024

아가야 가자...

민지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11

<2002-07-04-목> 
 

민지야 어느새 7월도 며칠이나 지났구나.
이삿짐 보내 놓고, 할머니집으로 들어오니 우리 민지에게 편지 쓰는 것이 쉽지 않구나.
얼마 전에 미국에서 막내고모 가족이 오셨어.
시끌시끌 집안이 어수선하니 엄마도 덩달아 마음이 떠있다.

민지야 훈이 오빠 기억하지?

설악산에서 우리 민지랑 토닥토닥 다투던 오빠 말이야.
그 오빠를 다시 만나니 엄마는 참 힘들어.
겉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훈이 오빠를 보는 것이 힘들어. 우리 민지 생각이 더 많이 나서...
"기래도~" 하며 오빠와 싸우던 너의 목소리가 엄마 머릿속을 맴돈다.

아가... 여기 다 모였는데 너만 없어. 너만 없구나...
모두가 둘인데 언니만 혼자인 것도 너무 가슴이 아파...
어쩌다 혼자 컴 앞에 있는 언니를 보면 가엾은 생각에 목이 멘다.
너의 빈자리를 채워 주고 싶어... 어쩌면 좋으니... 아가...

민지야 이제 떠날 날도 멀지 않았단다. 차라리 어서 떠났으면 싶구나.

모두가 모여 있는데 너만 없는 것이 더 힘들어.

언니가 혼자라는 것을 자꾸만 되새기게 되는 것이 너무 슬퍼...
여기선 큰소리로 울 수도 없어... 



<2002-07-08-월> 
 

민지야 내일 미국으로 돌아가는 막내 고모부가 친가에 가시는 것 배웅하고 할머니랑 농장에 다녀왔는데 너의 가지가 얼마나 컸는지 보이니? 언니 거 보다 더 컸어. 정말 좋아. 우리 민지가 잘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아. 가지 모종을 심을 때 엄마가 마음속으로 빌었거든.

'민지가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있다면 이 가지가 잘 자라는 것으로 보여 주세요.'라고 말이야.
그런데 오늘 땅에 닿아 더 이상 커질 수가 없어서 잔뜩 구부러진 너의 가지를 보았으니 엄마가 얼마나 기뻤겠니...

민지야 고마워. 잘 있어 주어서 고마워...

어제 모두가 모여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훈이 오빠의 노랫소리에 모두가 웃고 좋아했지만 엄마 아빠는 더 간절히 널 그리워하였단다. 저렇게 재롱을 부리며 까불 것은 우리 민지인데... 노래해라, 춤춰라 시켜보는 대상은 우리 민지였어야 하는 건데... 정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단다.


결국엔 엄마 아빠는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둔 아빠 차 안에서 소리 내어 울고 말았어.
우리 민지 떠나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함께 울음을 토해 냈단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너에게 너무 미안해서....

"우리 둘이 어떻게 위로를 하며, 위로를 받겠냐... 그러니까 서로 눈물을 보이지 말자"는 마지막 아빠말이 맞지?... 어떤 말로 아빠를 위로하겠으며, 아빠의 어떤 말이 엄마에게 위로가 되겠니.


이렇게 가끔씩 참을 수 없을 만큼 네가 그리워질 땐... 차라리 엄마 혼자였으면 좋겠구나.
그냥 소리 내어 엉엉 울 수만 있어도 그 슬픔과 그리움이 옅여질 것 같아... 



<2002-07-15-월> 네가 가여워서 가슴이 미어져
 

민지야
민지 어린이집에 갔었어.
미루고 미루다가 용기 내어 그곳에서 원장 선생님과 발명반 선생님을 만났단다.
우리 민지 사진도 찾아야 했고,

무엇보다 어린이집에 우리 아가 이름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서 그것을 의논하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엄마는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돌아서야 했단다.
그것이 엄마의 욕심이었을까...

우리 민지가 너무나 좋아했던 그곳에 너의 이름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길 바랐던 것이 이기적인 생각이었을까...

아가...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원장 선생님의 그 말씀이 엄마를 너무나 슬프게 하였단다.
네가 떠나면서 너의 이름으로 들어온 부의금을 어린이집에 돌려주고 싶었어.
우리 민지 이름으로 어린이집에 필요한 어떤 것이라도 남기고 싶었어.
그러면 멀리서 우리 민지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가...

그것을 마다하는 원장 선생님의 말씀이 엄마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구나.
더 이상 널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들려 너무너무 슬프구나...

그래 엄마 아빠처럼 영원히 널 기억해 달라는 것이 엄마 욕심이었나 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싶으신지도 모르는데

영원히 잊지 말아 달라고 매달리는 엄마 모습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서운하고 속상하고 슬프다...

아가...
널 영원히 기억해 줄 사람은 엄마 아빠... 그리고 또 누구일까...

아가...
불쌍한 내 아가...
모두에게 잊힌다 해도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의 곁에 있으니까 외로워하면 안 돼 알았지?...



<2002-07-22-월> 아가야 가자
 

민지야
내일 간다... 우리 민지도 엄마 손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야 해 알았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우셔도 민지는 엄마 따라와야 해. 알았지?
엄마는 널 두고는 갈 수가 없어.

어딜 가도 민지는 엄마와 함께 있어야 해...
혹시라도 네가 못 올까 봐, 안 올까 봐 겁이 나...

아가...
대안사에 다녀왔단다.

그곳에선 너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느껴져...
그래서 엄마 아빠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그런데 엄마는 이제 우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구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싫어하셔...
몰래 울음을 삼키려니까 가슴이 저려와... 아가...

민지야 엄마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될까?
너무 미안하지만... 민지야 너라면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이 너무 슬프지 않도록 해줄래?
내일 우리가 떠날 때 너무 슬퍼하시지 않게 해 줄래?
두 분이 많이 많이 우실까 봐 엄마는 벌써부터 겁이 나...
민지야 날이 밝으면 두 분 마음도 밝아지게 해 줄래?

민지야...
엄마 손 꼬옥 잡고 가자...

내일 우리 밴쿠버로 가자...
아가... 사랑해...

아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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