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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5. 2024

일곱 살 그리고 열네 살 민지

 민지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14

<2003-02-03-월>


민지야 네가 벌써 일곱 살이 되는구나.
얼마나 많이 컸을까. 이젠 언니랑도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 텐데... 정말 속상해...
아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있는지... 엄마 생각 가끔은 하는 건지...
야속하게도 아직도 엄마를 찾아와 주지 않는구나.

아가. 널 꼭 닮은 동생을 갖고 싶어.
그래서 다시 우리 민지가 엄마에게 돌아온 것처럼 그렇게 느끼고 싶어.

민지야. 대답 없는 우리 민지야.
언니랑 엄마랑 함께 찍은 사진을 봤어.
네가 있음이, 그냥 그렇게 엄마 팔에 안겨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 사진을 보니까 한쪽팔이 너무나 허전하구나... 우리 민지 손이 쥐어져 있어야 할 엄마 한 손이...

아가 벌써 일 년이 지났다니.
슬픔은 그대로 가슴을 후비고 있는데, 시간은 이렇게 잘도 가는구나.
너무너무 보고 싶은 아가야. 오늘도 목이 메어 숨쉬기도 힘들구나.
널 떠올리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일부러 널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를 용서해.

영원히 우리의 둘째 딸일 민지야.
엄마 아빠 언니... 모두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알았지?...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사랑해 아가... 영원한 내 사랑 민지야...
지금 뭘 하고 있니??... 너무 보고 싶구나... 아가....



<2003-02-20-목>


민지야 갑자기 네가 있는 그곳이 많이 바빠졌을 것 같구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갔거든...

참 슬픈 일이야.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영영 볼 수 없는 긴 이별을 해야 한다는 거.
그것에 비하면 우리 민지와의 이별은 조금은 덜 아쉬운 것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아가도 어느 날 문득 가버렸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가 예쁜 우리 아가에게 고운 옷을 입혀줄 수 있었으니까.

예쁜 모습으로 이별했으니까...

아가 너무 보고 싶은 아가야.
널 보내놓고 다시는 어떤 욕심은 안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바라는 것들이 하나 둘 생긴다. 이런 엄마가 너무 싫구나...
예쁜 우리 민지 동생도 낳고 싶고,

좋은 집으로 가서 언니 기분 좋게 해주고 싶고,

엄마도 좋은 이웃 사귀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아빠랑도 같이 살고 싶고...

민지야
엄마 마음을 용서해. 

이제 얼마나 되었다고, 널 잃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슬픔보다 다시 현실 속에서 욕심을 만들어가다니... 용서해 아가...

하지만 말이야... 정말 정말 우리 민지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
민지랑 언니랑 예쁘게 자라는 거 보면서 살 수만 있다면 동생도, 좋은 집도, 공부도 다 필요 없어.

그리고 아빠랑 떨어져 살 이유도 없고.

그냥 한국에서 예쁘게 살아갈 거야.

우리 민지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아가... 보고 싶은 아가야..........

언니가 며칠 아플 동안 엄마가 참 외로웠어.
아무도 찾아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 참 외롭더라.
불러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외로운 일인 줄 이제야 알았어.
아무도 사귀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힘든 일이 생기니까 그게 아니란 걸 알겠어.
옆에서 챙겨주고 위로해 주는 그 누군가가 몹시도 그리웠어...

어떻게 해야 하니... 엄마 좀 도와줘 아가야.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답을 줘라.

엄마의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좀 잡아다오.
아가 보고 싶은 아가...
네가 너무나 그립구나.......



<2003-04-07-월>


오늘 아빠 가셨어. 민지야 너도 알지?
지금쯤 어느 하늘을 날고 계실까. 너는 보이니? 아가?
많이 서운해하시며 가셨는데...

또 한 번 꿈꿔본다.
만약 이곳에 울 민지랑 언니랑 그리고 아빠랑 모두 함께 있는 거라면...
아... 그것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니.

오늘도 공항에서 아가들을 많이 봤단다.
꼭 너만 한 아가였는데 볼에 잔뜩 바람을 넣고 뿌우 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민지야 너도 정말 너무 귀여웠는데...
샐쭉 입 내밀고 토라지는 모습,
하하 웃으며 달려가던 모습,
함께 계단을 오르며 열을 세던 모습,
어린이집 앞에서는 늘 함께 경주를 하자고 했었던 너...

민지야 이제 널 기억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단다.
많이 그립고 많이 슬프지만 이젠 미소 지으며 널 떠올릴 수가 있어.
이런 엄마가 스스로 놀랍기만 하구나.
언제나 눈물로 먼저 인사할 줄 알았는데...

민지야.
너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찬바람을 느끼지만,
이젠 그 느낌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가 있구나.

오랜만에 너에게 글을 쓰면서
이렇게 달라진 엄마의 느낌과 모습에 엄마 스스로 놀랍기만 해.
이럴 수가 있구나. 이럴 수가...

하지만 알지? 절대로 널 잊어가는 게 아니라는 거 말이야.
아가 이제 널 온전히 엄마 가슴깊이 평화롭게 놓아둘 수 있게 된 거야.
다른 어딘가에 있는 네가 아니라,
엄마와 함께 숨 쉬고,
엄마와 함께 느끼는,
바로 너와 엄마가 하나가 된 거야.
그걸 엄마는 이제 알 수 있겠어.
이런 느낌...
엄마 심장 속에 예쁘게 앉아 있는 우리 아가.
네가 보이는 듯해...

민지야.
이렇게 늘 엄마와 함께 있어주렴. 사랑해 아가야...



<2003-04-14-월>


민지야 넌 엄마 마음을 알고 있니?
때때로 이렇게 견딜 수없이 가라앉는 마음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는 건지 알고 있니?
아가, 오늘 같은 날 너의 재롱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잘 견디고 있구나 싶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엄마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구나.
우리 민지 이름 부르면서 엉엉 한번 울고 나면 좀 시원해질까.
어제도 오늘도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건만 어제보다 오늘이 더 참을 수 없이 외로운 건 왜일까.


엄마 마음을 모르겠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건지...

그걸 안다면 이렇게 진창 속에 있는 것 같이 어지러운 마음을 건져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가야 넌 아니? 이 엄마 마음을 넌 아니?

미운아가...
이렇게 마음이 아플 땐 네가 미워져.
엄마만 두고 먼저 가버린 네가 너무 미워져...
아가... 보고 싶은 내 아가...
어느 하늘 아래에서 이 엄말 보고 있는 거니... 아가....... 




<2011년 8월>


2000년 홈페이지를 열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던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

시드니에서의 1년, 귀국 후 1년. 그 이야기들을 블로그에 옮기면서 참 오랜만에 옛날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어. 이제 민지와의 추억이 담긴 글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 너의 부재를 확실하게 알려주는구나.


민지의 이야기들이 적힌 글들을 블로그에 옮기면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것이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다고 엄마를 달랠 수밖에 없었단다. 왜냐하면 다시 읽게 된 글 안에서 새롭게 기억되는 민지와의 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너의 이야기를 읽으며 너와 즐거웠던 순간, 너를 아프게 했던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어. 그 이야기들을 다시 읽고 옮기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너의 성장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글로 남긴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것들을 다시 읽지 않았다면, 그 글들이 없었다면 너의 따뜻한 체온을 다시는 이렇게 느낄 수 없었을 것 같아. 인간의 망각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참 무섭기도 해.


마치 곁에서 "엄마..."라고 불러 줄 것만 같은 내 아가...

이제 겨우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잊고 지낸 것들이 너무 많구나.

부처님 법 안에서는 너와의 모든 추억들을 지워야 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부처님 말씀을 따를 수 없다는 생각을 해왔으면서도 벌써 잊은 것들이 많았어.

민지야 엄마를 용서해...

좋은 곳에서 좋은 몸 받고 다시 태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엄마는 여전히 너를 잃은 것이 너무 슬프구나.

이제는 너의 옛 사진 옛 글 모두 펼쳐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접하는 순간의 엄마 가슴은 여전히 너무 아파. 


예쁜 내 아가...

널 기억하는 것이 너무 슬프지만

널 기억하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해...


민지야 작년에서야 엄마가 널 서랍 속에서 꺼낼 수 있었어.

그래서 이제는 탁자 위 작은 액자 속에서 항상 웃고 있는 너를 매일 볼 수 있단다. 얼마나 예쁜지.....

살아 있다면 열네 살 중학생이었을 거라니... 믿을 수 없구나.

넌 영원히 엄마의 아가인데 말이야...

보고 싶구나.

정말 너무 보고 싶어...

사랑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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