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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Feb 12. 2024

이혼 소장 준비 완료 (법원접수)

나는 이제 셋이기 싫다. 나는 이제 둘(나와 아들)이고만 싶다.


"난 이혼할 거야. 그러니까 제발 짐 싸서 나가줘. 왜 자꾸 집에 들어 와서 나랑 아들 괴롭혀?"


"괴롭히는 거 아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린 아들과 나에게 생활비를 끊고 남의 편이 나의 명의 카드로 쓴 현금 서비스와 할부금까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어린 아들과 나는 그나마 매 명의로 된 집이라도 있다지만 생활고를 겪고 있다. 

남의 편은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라운딩을 다니고, 새 신발을 사 신고 들어 온다. 생일이라고 밤새 놀다 들어와 미세먼지 나쁜 날, 비염으로 미세먼지에 알레르기 증상 같은 게 있는 아들 때문에 공기 청정기 풀로 돌리며 창문을 다 닫아 놨는데 거실 창문이랑 본인이 이불 까고 자는 아들 방 창문을 활짝 열어 놨다.

그 다음 날 아들은 콧물과 재채기 땜 힘들어 했고 학교에 결석 했다. 나는 달려가 평소 다니는 병원에 예약을 했고, 난 돈 벌러 나가기로 한 아르바이트 일거리를 놓쳤다.






배가 고팠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었다. 나는 주문하지도 못한 배달 앱에 들어가 음식 사진들을 애꿎게 쳐다 봤다. 

음식 사진들을 넘겨서 쳐다볼수록 한숨만 나왔다. 핸드폰을 내려 놓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냉장고 문을 열어 김치 통을 꺼냈다. 설 선물로 받아 둔 스팸도 한 통 꺼냈다. 100g 안 되게 남아 있던 삼겹살도 꺼냈다. 다진 마늘과 파와 함께 작은 냄비에 탈탈 털어 넣었다. 육수를 붓고 김치 찌개를 끓였다.


입맛은 없어도, 힘을 내 버티고 이겨내기 위해 김 하나를 반찬으로 두고 꾸역꾸역 밥 한 그릇을 비웠다. 그러고 나니 핸드폰에 담당 법무 법인에서 전송돼 온 톡 알림이 떴다. 이혼 소장 초본을 mail로 보냈으니 검토 후 법원에 제출해도 될지 답을 달라는 거였다.


나는 노트북 전원을 켜고 mail 창을 열었다. 법무 회사에서 보냈다는 이혼 소장 파일을 내려 받았다. 그리고 파일을 열어 빠르게 읽어 내려 갔다.


이혼 소장을 읽어 내려 가는데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렸다. 정말로 나는 일을 친 거다. 나는 진짜로 저 인간과 이혼을 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과 둘이고 싶은 거다. 이제는 셋이 싫은 거다. 정말로, 진심으로, 헤어지고 싶은 거다. 더 이상 저 인간이 나와 아들에 집에 들어와 주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거다.


나는 이대로 바로 법원에 접수해 달라고 답장을 서둘러 보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혼 소장에는 상대방이 나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 매달 지급해야 할 양육비가 책정돼 있었다. 또한 내가 꼼꼼하게 낸 증거들로 인한 상대방의 유책사유들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지금 사는 집이 나의 친정에서 결혼 전에 사 두었던 아파트로 재산 증식을 하고 원고인 내가 온전히 다 대출 받아 일군 특유 재산임도 명백하게 적혀 있었다. 그뿐만은 아니다. 결혼 당시 나는 부모님이 주신 소형 아파트에 소설 계약비 2천만 원까지 들고와 결혼 생활을 시작 했지만, 상대방은 일 원 한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재산 분할 요구 자체가 상식적으로 합당함이 전혀 없는 깡패 짓으로 밖에 안 보인다.


나는 눈물은 나지만, 가슴이 떨리고 손이 떨리지만, 신속하게 처리해 주고 있는 변호사님께 감사 했다. 그리고 바로 인지대 63,000원과 송달료 78,000원 해서 총 141,000원을 입금 했다.


오늘 소장이 작성 됐고, 나는 검토 후 망설임 없이 법원에 제출해 줄 것을 요구한 거다.






남의 편은 매일 저녁이면 집에 들어와 소파에 자리 잡고 눕는다. 나랑 어린 아들은 남의 편이 집에 들어 오는 순간 거실에서 쉬지를 못한다. 거실 소파에서 TV도 마음대로 못 본다. 

저녁이면 어린 아들과 패밀리 침대와 화장대가 있는,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는 방 안에서 칩거 하다시피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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