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나는 이제 셋이기 싫다. 나는 이제 둘(나와 아들)이고만 싶다.

by OH 작가


"난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열심히 산 죄 밖에 없어."


뚫린 입이라고 뻔뻔하고 고집스럽게 외치는 그 얼굴을 후려 갈겨 주고 싶었다.


"증거 다 정리 해서 넘겼고, 변호사 선임했어. 난 이혼할 거야. 그러니까 나가줘. 매일 집에 들어 와서 나랑 아들 괴롭히지 말고.


"괴롭히는 거 아냐."


그는 이 와중에도 친구들과 웃으며 라운딩을 다니고, 새 신발을 사 신고 들어 온다. 나는 현관에서 그 새 신발을 보고 발로 밟아 짓이겨 버리고 싶었다.

더구나 이 날은 미세먼지 최악인 날이었고, 나는 아들이 비염 알러지 때문에 집 안의 창문을 다 닫아 놓았다. 거실과 침실에 공기 청정기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 생일이라고 밤새 놀다 들어온 그는 거실 창문이랑 아들 방 창문을 활짝 열어 놨다.

비염끼가 심해 미세먼지 알레르기가 있는 아들은 그 다음 날 콧물과 재채기로 힘들어 했다. 결국 학교에도 결석 했다.


나는 달려가 평소 다니는 병원에 예약을 했고, 돈 벌러 가기로 한 아르바이트 일거리를 놓쳤다.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집에 들어와 소파에 편하게 누워 히죽거리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정면으로 그와 아들이 보이는 식탁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노트북에 연결된 이어폰을 양 귀에 꽂고 있었다.

그 이어폰으로는 그와 그녀의 모욕적이고 낯간지럽도록 더러운 통화 내용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가족인 나와 아들과 5분 이상 통화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잘들 논다.' 싶도록 역겹고 토가 나올 정도로 그녀와 깔깔 거리며 2시간 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내 차 블랙박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추석 연휴에 가족을 집에 놔두고 혼자 외출해 그녀와의 통화 내용을 듣고 나는 그와의 가정을 지켜갈 수 없단걸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내색하지 않고 한 달 동안 그의 귀책 사유 증거들을 꼼꼼히 정리해서 내 노트북 파일에 정리해 저장했다. 그리고 친정 아빠를 찾아가 10년 넘게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 말씀 드렸다. 최근에 발견된 일도 말씀 드렸다.


"헤어져라. 변호사비 빌려 줄게. 내 손자랑 네 엄마가 해 준 그 집은 무슨 일 있어도 지켜라."


친정 아빠는 두 주먹을 불끈 쥐셨다. 떨고 계셨다. 10년 넘게 참다가 털어 놓은 딸의 얘기를 듣고 애써 참고 계신 분노가 아빠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아들을 학교에 등교 시키고 빠르게 집 안 청소를 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펴 놓고 알바몬과 알바 천국을 들여다 봤다.

상간녀 위자료 소송부터 변호사에게 위임 했다는 얘기에 그는 생활비를 바로 끊어 버렸다. 가정 주부로, 경단녀로만 10년을 있던 나는 아들의 학원비와 생활을 위해 한 푼이라도 벌어 볼 생각을 해야 했다. 다시 작가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코로나가 세상을, 이 시대를 너무 빠르게 뒤집어 엎고 있었다.


"아들, 너무 미안한테 딱 2개월에서 3개월만 학원 다 쉬자. 엄마가 다시 보내 줄게, 너무 미안해."


아들은 내 얼굴을 쳐다 보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뽀얗게, 조금은 통통한 듯한 아들의 두 손을 꼭 쥐어 잡았다.


"엄마가 돈이 없어서 울아들 속상하지?"


아들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나에게 기댔다. 나는 아들을 살며시 안아 줬다.


"엄마가 돈 없어도 괜찮아. 난 무조건 엄마랑 살 거야. 난 엄마가 좋아."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형부 그러지 말고 같이 공 차고 좀 놀아 줘요."


아들의 친구 엄마이자 동네 동생이 퇴근하고 놀이터로 온 그를 보고 했던 말이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잠시 내려 놓는가 싶었다. 아들을 힐끔 쳐다 보긴 했다.

동네 지인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좀 놀아 주겠지 싶은 기대로 나는 그를 쳐다 봤다. 아들은 친구와 그 친구의 아빠와 공 놀이를 하고 있었다.


"잘 노네."


혹시나 했던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는 아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핸드폰만 쳐다 봤다.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다. 하긴 왠일로 아들에게 "방학때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라고 묻는데, 낯선 모습에 나랑 아들은 뻘쭘히 그를 쳐다 봤다. 아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라고 했다.


"레고랜드."


"그래, 가자."


그는 왠일로 바로 승낙을 하며, 나보고 표를 알아 보라고 했다. 본인이 가자해 놓고 결국 레고랜드 입장권 예매부터 뭐든 준비는 언제나처럼 내가 다 했다. 피곤하다는 그 때문에 오전에 푹 자게 하려고 오휴에 입장 하기로 했다.

오전 늦게 집에서 출발해 근처에서 점심 밥을 먹기 위해 식당부터 들어갔다. 셋이 앉아서 맛있게 점심 밥을 먹으며 대화들이 오가다 아들이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아빠가 데리고 왔으니, 아빠가 다 해 줘야지."


그런데 갑자기 그가 버럭 화를 냈다.


"네가 하자 하면 내가 일부러 시간 내서 뭐든 해 줘야해, 이새꺄? 됐어 집으로 가. 다 필요 없어."


아들의 표정이 굳었다. 살짝 겁 먹어 있었다. 나와 아들은 벌떡 일어나 나가는 그를 따라 차에 올랐다. 아들은 뒷 자석에서 나랑 나란히 앉아서 나에게 꼭 안겨 있었다. 나는 애 앞에서 싸우기 싫어서 아들을 꼭 안아 주고 등을 한 손으로 토닥여 주며 말없이 달래고 있었다. 아들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는 진짜로 집 쪽으로 차를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였다. 아들은 그런 아빠에게 평소 애착 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 나는 그게 항상 안타까운데, 이제는 안타까워 하고 싶지 않다.








"사랑이 어딨어. 결혼하고 애 키우며 살다 보면 그냥 정으로 사는 거지."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말은 사실인가 보다. 지금 40대들의 아이돌 그룹 중 하나였던 젝스키스의 예감이란 노래 가사가 결혼하고 신혼을 보내면 환상이란 걸 깨닫게 된다.


"향긋한 모닝 커피와 내 아침을 깨워 주는 상큼한 입맞춤 아직 달콤한 꿈에 흠뻑 취해서 조금만 더 그러겠지 / 하얀 앞치마 입고 내 아침을 준비하는 너의 모습"


결혼 생활은 정말이지 정으로 살고, 의리로 유지한다. 향긋한 모닝 커피 같은 건 드라마나 영화 속 신혼 생활에나 있다. 결혼하고 나서 그 환상이 깨지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함께 살 부딪기며 살고, 한 집에서 왔다갔다 가족이란 책임감 아래 그래도 지키고 살아 가고픈 기댐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이고 한 집에서 부딪기며 살아도 정이나 의리가 쌓아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나하나 쓰러지지 않는 블럭을 쌓아가며 무너지지 않게 지키고 싶어도 결국엔 중간 블럭이 삐뚤게 삐져 나가 무너져 버려 지킬 수 없는 것도 있다.


내가 그런 겪인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와 가족이란 이름 아래 셋이기 싫다. 아들과 둘이고만 싶다. 나와 아들의 껌딱지 같이 소중하게 쌓아가는 블럭에 그의 블럭을 섞기 싫다. 셋이기 보다 둘인게 앞으로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란 걸 가슴 깊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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