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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Sep 10. 2024

잠수 1화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만나기 싫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왜 아빠는 내 말을 안 들어? 짜증나. 나 힘들게 하지 마.”     


핸드폰은 단호하게 끊겼다.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힘을 주어 꽉 쥐어도 핸드폰은 구겨지지 않았다. 마음만 구겨지고 구겨지다 못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한기는 핸드폰을 집어 던지려다가 이를 꽉 깨물고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 놓았다. 한기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듯 쥐어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냉장고로 가 와인 한 병을 빼 들었다. 작고 동그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와인을 땄다. 나올 때 챙겨온 와인잔에 와인을 가득 부었다. 한 모금 들이 마시고 다시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마트에서 사 온 과일 치즈와 육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 놨다. 봉지를 뜯었다.

마른 육포를 집어 먹으려다 과일 치즈를 잠시 내려다봤다. 희진이가 좋아하던 치즈다. 조금 떼서 입에 밀어 넣었다. 물컹물컹한 치즈 사이로 뭔가 씹혔다.

한기는 다시 와인 잔을 들었다. 길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 나서 방 안을 둘러 봤다. 10평이 안 되는 공간에 화장실, 방 하나, 부엌이 있다.

한기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음원 앱에 들어 갔다. 윤향기의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를 재생 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한기는 노래 가사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며 와인을 들이켰다. 두 눈은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추석이다. 한기는 목적지 없이 차를 몰다가 시골로 내려 갔다.

시골집에는 아무도 없다. 빈집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 매일 방에 들어가 불을 켜고, 방바닥을 뎁히고, 이불을 깔았다 개고 하는 흔적조차 없는 집안이다.

도시처럼 인테리어라는 것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그저 밋밋하고 표정 없는 회색빛 시멘트 벽으로 직사각형의 모양 틀만 갖춰 진 건물 같지 않은 1층 건물이다. 집 안의 모든 벽에는 꽃무늬 같은 게 촌스럽게 프린팅돼 있는 벽지를 사방에 쳐 발라 놓았다. 작은 방 두 개에 오래된 일자 싱크대가 놓인 작은 부엌 하나, 겨우 세 사람 들어가 서 있으면 꽉 차는 화장실이 하나 있다.

바로 앞에 살고 계신 작은 엄마가 그 집에 작은 슈퍼를 운영하고 계셨다. 작은 슈퍼라고 해 봤자 라면 다 여섯 종류, 담배, 비누, 치약, 칫솔, 과자 다 여섯 종류, 두루마리 휴지, 밀가루, 튀김가루, 부침가루, 설탕, 소금, 후추, 미원, 다시마, 약과, 아이스크림 몇 가지, 봉지 커피 두 세 종류, 종이컵, 일회용 접시, 이쑤시개, 식용유, 깨소금, 옛날식의 길고 하얗기만 한 편지 봉투, 카레 가루, 짜장 가루, 사탕이나 초콜릿 서너 종류, 키친타올, 등과 같은 소소한 것들만 팔 뿐이다. 그 소소한 것들이 간이 진열돼 위에서 겨우 유통기한만을 지키며 상주해 있다. 한 달에 그 작고 초라한 슈퍼의 매출은 10만원도 안 될 것이다.

대문 옆 화단 아래 숨겨 놓은 열쇠를 찾아 덜커덕거리는 은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래도 그 작은 슈퍼가 먼저 보인다. 손님도 별로 없고, 작은 엄마도 바로 앞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 가 있느라 불만 켜져 있지 아무도 없다. 하루에 서너 번만 집 앞 마실 나오듯이 들리시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슈퍼가 이 집에서 유일하게 매일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한기는 그 작은 슈퍼를 단 몇 걸음 만으로 다 걸어 들어가 낡은 나무문을 열어 젖혔다. 불이 꺼져 있는 작은 방 안을 잠시 쳐다보고 서 있었다. 발뒤꿈치부터 신발 안에서 해방시키고는 높은 문 턱을 올라 섰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신발이 작은 슈퍼의 볼품 없는 시멘트 바닥을 순간적으로 뒹구는가 싶었다.

한기는 그대로 방바닥에 누웠다. 사람이 살지 않는 방이라 온기가 전혀 없었다.

한기는 어둠으로 가두어 놓은 듯한 그 방의 무심함과 차가운 온기를 느끼며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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