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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Sep 10. 2024

잠수 2화

너는 다시 이 쓰레기통에 스스로 던져질 거야


“ 여자가 어디서 감히 대들어? 미쳤어?”     


술에 취해 포악함의 가면을 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뭔가 벽에 거칠게 부딪히는가 싶더니 방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중학생인 한기는 밤만 되면 익숙한 그 소리에 한기는 이불을 덮고 누운 채로 핸드폰만 쳐다 봤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던져. 나라고 못 던질 줄 알아? 정말 지긋지긋해. 지긋지긋하다 못해 꼴 보기 싫어.”     


어머니가 울부짖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술만 마시면 괴팍해지는 아버지의 손버릇에 따귀를 맞는 어머니였다. 등이나 어깨가 떠밀려 벽에 부딪히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멍이 들면서도 묵묵히 참아 온 어머니였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울부짖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릇 깨지는 소리가 이어 들렸다. 어머니가 집어 던진 모양인 듯 했다.

한기는 왠지 불안해졌다. 이십 년 가까이 이 악물고 참아 온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지르는 소리는 뭔가를 통보하는 느낌이었다. 뭔가 결심을 알리는 울림 같았다.

이 와중에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집 앞에서 멈추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는 시골이었다. 거리 간격이 넓게 넓게 이 삼십 집 정도가 모여 있는 시골 동네였다. 장이 있고, 마트가 있는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두 번만 있는 시골 동네였다. 낮에도 밤에도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는 동네의 적막을 충분히 깨고도 남는다.

은색 현관문을 덜컥거리며 요란하게 열었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주였다. 저렇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 집안 사람은 한주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주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손에는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그거 뭐야?”     


한기는 누워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건너방에서는 거칠게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가? 술이나 가져와. 버릇없이 대들지 말고 술이나 따르라고.”     


어머니가 방을 나간 거였다. 아버지의 강압적이고 명령적인 목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이 시골 동네에서 저렇게 소리 지른다 한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무도 쫓아 오지 않는다.

그저 집안에서 TV를 보거나, 잠자리에 들면서 “아구, 한기 아버지 오늘도 시끄럽네.”라는 혼자 말로 덮을 뿐이다. 

어머니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버리는 거 같았다. 은색 현관문이 조용히 덜커덩거리며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한기의 귀속에 짧게 울려 퍼졌다. 이 밤에, 어둠밖에 없는 이 시골 거리 속에서 어디를 가려는 걸까? 앞에 살고 있는 작은 아버지네로 갈 어머니도 아니었다.

한주는 한기 옆에서 캐리어를 바닥에 열어 놓고 옷들을 구겨 넣고 있었다. 

한기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앉아서 아무 말 없이,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오직 자신만의 행동만을 집중하는 듯한 한주를 쳐다봤다.

한주는 집 안에 무슨 일이 있든 관심이 없었다. 한기 보다 3살 많은 한주는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을 스스로 따 시키기 시작했다. 투명 망토를 쓰고 가족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스스로 설정한 사람 같았다. 집안에서만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러면서도 은색 현관문만은 항상 크게 소리가 나도록 여닫았다.     


“뭐하냐?”     


한기는 오늘따라 어머니를 비롯해 집안을 감싸는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안 분위기가 평소에도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었다. 웃음보다 지치고 힘든, 서로와 서로에게 점점 무관심으로 찌든 표정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를 부수고, 긁고, 거칠게 할퀴어가며 상처만 쌓아가고 있었다.     


“뭐하냐고?”     


한기의 화가 난 목소리는 점점 아버지를 닮아 가려 하는 거 같았다. 한주와 평소에도 서로 나눌 말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속을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고, 서로의 속을 내보이지도 않았다. 말해봤자 서로 짜증 나도록 구질구질하기만 한 그 속에 대해 굳이 끄집어내는 걸 무언중에 거부했다. 그 가족들 속에서 항상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는 건 아버지 뿐이었다.

한주는 가득 찬 캐리어를 꾹꾹 눌러 잠궜다. 잠시 숨을 고르는지 캐리어 위에 걸쳐 앉아 한기를 똑바로 쳐다 봤다.     


“내가 보기엔 너는 평생 이 쓰레기통에서 못 벗어나. 네가 언젠가 이 쓰레기통을 벗어난다 해도 너는 다시 이 쓰레기통에 스스로 던져질 거야.”     


한기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왜 하나뿐인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잠시 멍했다. 그 말에 대해 명확한 의미를 되짚기 위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몇 분이 걸렸다.

사람의 머리를 이상하게 때려 버리는 말을 내뱉은 한주는 기다려 주지도 않았다. 캐리어를 번쩍 들어 올려 방을 나가 버렸다. 

은색 현관문이 큰 소리로 열었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캐리어의 바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집 밖으로 달아났다. 다시 오토바이 소리가 굉음을 내며 한기의 두 귀를 자극적으로 파고들더니 점점 멀어져 갔다.                         





한주는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 집에서 나가 버렸다. 그 후로 집에는 단 한 번도 걸음을 디딘 적이 없다. 

한기가 대학에 입학해 혼자 서울에 올라왔을 때 딱 두 번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한기가 찾아갔었고, 한 번은 우연히 마주쳤었다. 그 두 번의 만남과 마주침 속에서 본 한주의 모습이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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