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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Sep 10. 2024

잠수 4화

빛 있는 곳으로 가려고. 난 어둠이 지겹거든



한기는 다시 작은 슈퍼의 문턱을 올라 어둠으로 갇힌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등을 벽에 기대고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방 안에는 어둠뿐이다.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한기의 눈에 담기는 건 오직 어둠뿐이었다.                         

한주는 소파에 털썩, 온몸을 소파에 맡기며 쓰러지듯 앉았다. 손에 들려 있던 백은 그냥 거실 바닥에 툭 내려놨다. 피곤했다.





한주에게 심리 상담을 받는 고객을 만나러 점심시간에 호텔 카페에 갔다가 올케를 봤다. 맞은 편에는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상의에 변호사 뺏지를 단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변호사 뺏지 단 남자는 올케에게 서류를 보여 주며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한주는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일부러 올케와 변호사 뺏지단 젊은 변호사가 마주 앉은 자리 옆을 천천히 지나쳐 왔다. 그리고 넌지시 서류를 훔쳐 봤다. 이혼이란 단어와 상간녀란 단어를 빠르게 치할 수 있었다.

한기는 아직도 모르고 있겠지만, 한기의 결혼식에 갔었다. 물론 올케의 얼굴은 기억 나지만 올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기와 올케 사이에 아이가 있는지도 아직 모를 일이다.

다만 한주는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한기에게 경고 했었다.          


“내가 보기엔 너는 평생 이 쓰레기통에서 못 벗어나. 네가 언젠가 이 쓰레기통을 벗어난다 해도 너는 다시 이 쓰레기통에 스스로 던져질 거야.”     


한주는 웃음이 나왔다.      


“역시 그 새끼는 아버지를 닮았어. 징글맞고 정떨어지는 아버지를 닮았어.”     


그때 한주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한주는 한 손을 바닥 쪽으로 늘어뜨렸다. 거실 바닥에 툭 하고 내려놓은 백을 열어 그 안을 손으로 휘휘 저어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자가 엄마였다.     


“엄마. 내가 오늘 뭘 확인했는지 알아?”     


한주와 엄마와 연락하고 있었다. 먼저 집을 뛰쳐나오고 나서 그 뒤를 따라 나온 엄마와 10년을 같이 살았다. 

한기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쓰레기 같은 곳에 다시는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쓰레기 같은 곳은 한기가 다시 걸어들어갈 곳이었다. 한주와 엄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방이었다.

엄마와 한주는 그렇게 아버지와 한기를 버렸다. 꺼져 달란다고 꺼져줄 인간들이 아니기에 엄마와 한주가 꺼져준 것이다. 한주와 엄마만의, 한주와 엄마에게 어울리는 방을 찾아내기 위해 그 방 안에서 뛰쳐나온 거다.

그날은 한주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 발표가 뜬 날이었다. 한주는 엄마에게도 기회를 봐서 그 쓰레기 같은 집에서 빠져나오라고, 기다리고 있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먼저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었다. 시원한 밤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렇게 아버지와 한기의 공간으로부터 도망쳤었다.

엄마가 아버지와 한기 몰래 쥐여 준 대학 등록금을 품속에 꼭꼭 움켜쥔 채로 그렇게 자신만의 첫 방을 찾았었다.                         







정인은 얼음과 함께 컵에 담긴 맥주를 반 컵 들이마셨다. 속이 다 시원해졌다. 

투명하고 긴 유리컵에 얼음과 함께 맥주를 부어 놓고 하루에 반 잔씩만 마시고 자는 게 버릇이 됐다. 목을 타고 가슴까지 시원하게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 이상하게 통쾌했다.

유리컵에 얼음을 먼저 담고, 맥주를 가득 따라 놓은 다음 샤워를 한다. 샤워하는 동안 얼음과 함께 섞여 있는 맥주는 시원하게 온도를 변화시켜 놓는다. 온도가 변화된 유리컵의 맥주를 살살 흔든다. 그리고 물이 녹은 얼음물이 많이 섞이지 않은 위에 반 잔만 한 번에 들이마신다. 

지옥 같은 그 집에서 도망쳐 나오기 전에는 왜 이 맛을 모르고 살았는지 모른다. 그만큼 온전한 정인만의 공간이 일 센티도 없었다. 퍼렇게 멍들고 할퀴고 긁혀 가는 정인의 감정과 정서가 온통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기분이었다. 그 인간의 집안 곳곳이 쓰레기통 같기만 했다.     


“이혼하고 갈 데가 없대. 한두 달 그 식당에서 궂은일 하는 거 지켜보다 불쌍해서 데리고 들어 왔어.”     


정인은 그날의 새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인간이 그 여자를 집에 데리고 온 날의 새벽을 말이다

방이 두 개 뿐인 그 인간의 집 구조상, 그 여자는 정인과 그 인간과 한방에 누웠다. 정인은 그 둘로부터 등을 돌리고 누웠지만 그 여자는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운 그 인간의 팔을 꼭 끌어안고 잠들었다. 

그 둘이 깊게 잠든 개벽, 정인은 미리 챙겨 놓은 짐 가방을 소리 안 나게 챙겨 들고 그 방을 나왔었다.      

“어디 가요?”     

부엌에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그런 정인과 마주친 한기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한기는 손에 든 핸드폰 손전등만으로 그 집안의 어둠 한 부분을 속이고 있어다. 그 인간의 집안에는 빛이란 것이 단 한 점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빛 있는 곳으로 가려고. 난 어둠이 지겹거든.”     

한기는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 손전등을 들어 보였다.      


“빛 여깄잖아요.”     

정인은 한기의 무표정이 싫었다. 열 달을 배 아파 죽을 거 같은 고통 속에서 꺼낸 정인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점점 타인 같았다. 그 인간보다 더 징글맞도록 정떨어지는 무표정이었다. 

그 인간이 유일하게 건드리지 않는 게 한기였다. 이 집안에서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도 한기였다. 한주가 그 인간에게 따귀를 맞아도, 정인이 그 인간의 폭력에서 신음하며 온몸을 최대란 웅크린 채 버텨도 항상 무표정이었다. 이 집안의 제일 타인 같은 방관자였다. 정인은 그런 한기의 무표정이 그 인간의 폭력보다 더 치가 떨렸다. 정인의 배 속에서 꺼내어졌을 때 처음 느꼈던 그 온기가 배신처럼 느껴졌다.     


“그 빛 말고. 내가 빛이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빛.”     


한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정인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도 정인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인은 한기의 무표정을 감싸고 있는 그 어둠 속에서 등을 보이며 걸어 나왔다. 

정인이 간절히 찾는 빛을 위해 걸어 나온 새벽길은 시원했다. 어둠이 그렇게 시원할 수도 있는 건지 그날 처음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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