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낀 팔짱을 팔로 부여 잡고 집으로 돌아 오는 밤 아홉시 때의 집 앞 번화가는 북적였다. 아들과 걸어 가는 토요일 밤의 일상은 소소하고 작은 웃음으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한 마리로는 부족한데..."
토요일이지만 아침 일찍 일어 났다.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으로 쿠팡이츠로 후라이드 치킨부터 주문했다.
아들의 학원에서 영화 상영 행사가 있고, 오후에는 아들 친구의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다. 더구나 나는 독서 지도사 필기 시험과 실기 시험이 있는 날이다.
시간 분배를 잘 해야 했다. 아들을 학원에 들여 보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들의 학원 아래에 있는 카페에서 시험을 치뤄야만 했다.
아들의 학원 아래에 있는 카페는 아들 학교의 학부모들이 단골로 많이 가는 카페다. 나도 많이 가 본 카페라 내 노트북에 그 카페의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저장돼 있다. 항상 아무 문제 없이 노트북을 들고가 아들을 기다리며 글을 쓰거나 드라마 영상을 보며 기다리던 곳이기도 했다.
나는 아들과 드라이브 스루로 너겟킹과 감자 튀김을 샀다. 평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침밥 대용으로 한 번에 때우기 간편한 햄버거도 단품으로 구입했다.
치킨 한 마리와 너겟킹, 감자 튀김을 아들의 학원 입구까지 들어다 줬다. 나는 바로 학원 아래에 있는 학부모들 단골 카페로 가 노트북을 켜고 독서지도사 필기 시험부터 로그인 시켰다. 그런데 온라인 시험장으로 들어가지지가 않았다. 나는 본사에 전화해 원격 지원을 받아 시간에 늦지 않게 입장 했다.
필기 시험은 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50문제 중 47번 문제까지 풀었을때 이미 시험이 끝나 버려 답안지를 제출로 저장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자꾸 저장이 되지 않고 재저장 오류가 났다.
나는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본사에서 확인을 했는데 내가 12번 문제까지만 푼 걸로 돼 있단다. 어이가 없었다. 일단 실기 시험부터 마무리하자 싶었는데 또 실기 시험장에 들어가지지가 않았다.
시험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아 지부장님과 통화를 했다. 본사도 지부장님도 자기네 온라인 시험 프로그램은 집에서 전용 인터넷 선으로 봐야만 한단다. 와이파이로 하면 끊어질 수 있단다.
지부장님은 이런 시험을 다들 집에서 전용 인터넷 선 연결해 보지 나처럼 카페서 치르는 사람은 처음이란다. 안전하지 않은 카페 와이파이로 시험을 보는 사람이 어딨냐고 하셨다. 일을 해결해 주려고 하는데 왜 자꾸 자신의 상황 얘기만 하냐며 이상한 사람이란 듯 "왜 그래요?, 왜 그래요? 왜 그래요?"를 여러번 나한테 강조하셨다. 시험볼 마음이 있는 거냐며 질책까지 하셨다.
나는 대형 통신사마다 5G를 내세우고, 핸드폰과 노트북으로 어디서든 업무를 보고 온라인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주말에 아들 행사까지 있어도 어떻게든 끝까지 해 보려 했던 사람에게 시험 볼 마음이 있는 거냐고 질책을 하는데 청개구리 같이 억화 심정이 올라왔다.
그러고보니 엄마 암 수술에, 이사에, 계속 되는 소송에(물론 지부장한텐 소송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안했다.), 강의는 그래도 성실히 다 들었다. 하지만 과제 네 가지 중 세 가지를 제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죄송하고 걱정돼 통화를 하는데 지부장은 집안에 큰 수술이 있었건 무슨 일이 있었건은 상관하지도 않았다. 독서 지도사 시험볼 수 있게 해 줬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냐는 말만 하셨다.
대부분은 그래도 큰 수술은 잘 끝났냐부터 묻는다. 사회 일이 아무리 냉정하고 서로를 비즈니스적으로 필요에 의해 엮인 관계라도 최소한은 그랬다. 그래서 더 미안한 게 사람일 거다.
그런데 이 지부장님은 아니었다. 미안해서 전화했는데 벙 쪄서 끊은 게 사실이다.
더구나 나는 아직 지부장의 정식 관리 선생도 아니고, 부하 직원도 아니다. 나도 분명 잘못 했을 수도 있지만 이 업체 뭐야 싶었다.
통화를 듣고 있던 카페 사장님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같은 학교 학부모들이랑 자주 갔던 카페고, 동네 장사이기도 해서 그런지 카페 사장님은 근교 학원 선생님들 음료 취향을 다 파악하고 계셨다. 엄마들이 카페 사장님한테 학원 선생님들 음료 취향을 물어 보고 사갈 정도 였다. 카페 와서 음료도 마시고 자신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졸업한 사장님이랑 사적인 얘기들도 하는 곳이다.
내 얘기를 들은 카페 사장님도 어이 없어 하셨다.
"아니, 카페에서 시험을 치르든 집에서 시험을 치르든 자기 마음 아니에요? 5G 시대에 핸드폰으로도 시험 보던데요. 집에서가 아니라 카페서 전용 인터넷 선도 아닌 와이파이로 시험 보는 사람이 어딨냐는 게 요즘 시대에 맞는 말이에요?"
나도 너무 짜증이 나고, 머릿 속에 현타가 와서 청개구리처럼 더 내 상황만 반복해서 다다다다 말했다. 이렇게 피곤하게 한바당 난리를 치르고 결국 본사의 도움으로 그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시험을 완료 했다. 열받아서 몇 개는 그냥 문제 보지도 않고 찍어 버렸다.
아침도 못 먹고 아들 일에, 내 시험까지 끝까지 노력하려고 좋아하지도 않는 햄버거를 사 놓고 반도 안 먹고 버렸다. 그래도 시험을 치른다고 두 시간 넘게 참고 있던 화장실도 겨우 갔다 왔다.
좋아하지도 않는 햄버거로 때우다 만, 5G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나는 80년대를 겪고 있는 기분으로 또 다시 아들의 행사에 토요일을 정신없이 보냈다. 행사가 다 끝나고 아들 친구들과 학부모들과 시원하지만 이상하게 싱거운 생맥주도 한 잔 비워 버렸다.
그리고 아들이 낀 팔짱을 부여 잡고 붐비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 왔다.
나는 오늘 5G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 성의없이 유일하게 노트북으로 카페에서 시험을 치르는, 단 몇 십 분 만에 "왜 그래요?"를 다섯 번 넘게 들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정말이지, 늦깍이 싱글맘의 하루가 고달프다. 그래도 아들만 보면 웃음이 나온다. 아들과 둘만 남은 내가 좋다. 나는 미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