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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관찰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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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루 Jan 19. 2024

스토크의 죽음


스토크는 사흘 만에 시들었다.


영양제를 탄 물까지 든든하게 넣어 주었것만.


하루이틀 반짝 힘을 내더니 금세 고개를 푹 숙이고는 꽃잎이 누렇게 변해 갔다.


싱그럽고 달큰한 꽃내음이 가득 찼던 방도 꼬리꼬리한 식물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 빨리 죽는다고?!"


퇴근하고 돌아온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쩌렁한 목소리는 하얀 방 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불과 며칠 전에 받은 스토크였다.


애지중지 집에 모셔와, 지친 몸을 움직여 포장지를 풀고 화병을 씻고 수돗물도 아닌 먹는 샘물에 영양제까지 섞어 담아뒀는데...


(먹는 샘물이 문제였을까?)


어쨌든 냄새의 출처를 없애기 위해 화병의 물을 전부 버리고 드라이플라워로 보관하기로 했다.


꽃을 버리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꽃이 메마르기까지 또다시 하루 가량이 흘렀다.


연보라인 듯 분홍인 듯 묘한 색을 지녔던 아름다운 꽃잎과 싱싱하고 빳빳하던 줄기와 잎.


어느새 누런 필터를 씌운 듯 나이 들어 버렸다.


폭삭, 아주 폭삭.


공기 중에 수분을 빼앗겨 줄기 전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졌다.


꽃망울들은 손끝만 스쳐도 우수수 떨어질 만큼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그 모습이 매우 짠했다.


꽃이 시든 게 왜 이리 허망할까?


이 꽃송이가 뭐라고 내게 이토록 커다란 상실감으로 다가올까?


세상의 수많은 스토크 중에 이 스토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

그의 정성

나의 눈물

우리의 기쁨

우리의 다짐

우리의 첫, 사랑


더군다나 스토크의 꽃말을 알고 있기에 쓸쓸함이 더 크게 밀려오는 것 같다.


'영원히 아름답다'는 스토크의 꽃말이다.


한편으로는 '어떠한 역경도 밝게 극복하는 강인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남자가 이상적인 이성을 만나면 '바람피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 모자 속에 이 꽃을 넣어 다녔다는 설도 있다.


아름다움, 강인함, 신의.


내가 중요시하던 가치관이 오롯이 담긴 꽃이 단 사흘 만에 죽어버리다니...


꽃은 시들었어도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좀 더 살아주었으면 했다.


하루이틀이라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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