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민 영어강사의 수업일지 10
예전엔 다 큰 어른들(?)만 가르쳤다면 지금은 오색빛깔 무지개다. 수업 시작 전이나 쉬는 시간에만 커피 한 모금씩 하면서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가볍게 나눴던 과거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 이야기가 터져 나올지 모르는 흥미진진한 순간을 맞이하는 중이다.
난 초예민한데다 여러 사람에게 다 신경을 못 쓰는 사람이라 한 타임에 소규모로 많아야 4명 정도만 가르치고 있는데 아무리 소규모 인원들과 함께한다 하더라도 하나하나 관리해주는 밀착 수업은 대규모 인원을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에너지 소모가 많다.
그중 내 에너지를 가장 많이 흡수해 가는 사람은 초등학생이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순삭이다. 수업 시간이 짧다 보니 한꺼번에 많은 양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핵심 학습목표를 배워보고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글로 써보고 발표까지 하는데, 중간중간 쏟아지는 질문들까지 답해주다보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나 싶다. 아무래도 난 이 수업시간이 힘들긴 해도 즐거운가보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가버렸지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도대체 갑자기 이 이야기는 왜 하는 거지?" 싶은 내용에서부터 학교에서 기분 나쁘고 서러웠던 이야기까지 어서 나한테 풀어내지 못해 안달이다. 수업 중간에 이런 이야기를 다 받아줄 수 없으니 수업이 끝나고 하게 하면 애들은 어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잘했을 때 awesome sticker를 받는 것 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를 더 기다리는 것 같다.
약속된 수업 시간은 1시간 30분이지만 나는 매번 아이들에게 2시간이라는 시간을 할애한다.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같은 학급 아이들과 모두 다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리 지어 삼삼오오 또는 둘 정도만 친하게 지내거나 혼자 다니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만큼 이야기할 상대가 부족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다.
"선생님 진지드셨어요?" (난 '진지'라는 단어를 들을 만큼 어르신은 아니다. 40대 초중반이다)
"아니, 아직 못 먹었어. 왜? 선생님 맛있는 거 사주려고?"
"초딩이 무슨 돈이 있어요. 저 돈 당연히 없어서 못사드려요." (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초딩이라는 단어로도 이야기하는 네가 귀엽다)
"???"
아이들은 이런 식의 맥락 없는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질문은 기본이며 소재도 다양하다 못해 넘쳐난다. 같은 반 아이 이야기, 엄마 이야기, 운동장에서 주운 머리핀 이야기, 내 강의실에 새로 걸린 액자 이야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 등 다 적을 수도 없는 때로는 이해불가의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진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떨 땐 빵 터지기도 하고, 엄마의 흉을 볼 때면 엄마 입장을 이해시켜 주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듣고만 있을 때도 있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간에 아이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꽤 만족스러운 모습이다.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으니 오늘 배운 표현을 이용해서 대화해 보고 가도록 한다. 이야기 보따리 풀다가 배운 걸 다 잊었을 줄 알았는데 웬걸? 배웠던 표현을 멋지게 사용해서 문장을 말하니 기특하다.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은 생각보다 과제를 잘 해오지 않는다. 하지만 뭐라 할 필요는 없다.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못했던 이유들은 차고 넘친다. 알고 있으니 됐다 싶을 때도 많다.그렇지만 해야한다는 걸 알고만 있다고해서 제대로 복습이 되는 것은 아니며 실력이 저절로 느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바쁜 와중에 틈을 내고 그 틈새 시간을 계획적으로 세워서 귀를 열고 입을 움직여 머리에 넣어보도록 잔소리(?)는 할 수 밖에 없다.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은 환경이니 어쩔 수 없다. 머릿속에 떠올려보고 말해 보고 써 보는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끔 독설을 날려놓고 혹여 그 독설에 상처받았을까 수업이 끝난 후 상처부위를 찾아보고 투명 후시딘을 발라준다.
어른이어도 학생은 학생이다. 칭찬을 하면 기뻐하고 그 기쁨이 동기부여가 된다. 되도록이면 칭찬을 많이 해 주고 싶지만 피곤한 기색으로 앉아 기운 없이 수업을 받으면 뭐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가르쳐온 학생이면 마치 선생님과 학생의 느낌으로 대화한다기보단 이모와 조카의 느낌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피곤해도 공부하기로 한 이상 약속한 공부량은 채워야지. 단어가 저절로 외워지지 않는다니까? 한 번 배우고 그걸로 끝? 그렇다면 나중에 또 공부해야 돼!"
"........"
"뇌가 말이야, 사람이 어떤 단어를 한 번 보더니 계속 생각하고 사용해서 말을 하고 자꾸 떠올리면 '아....이 사람은 이 단어가 자주 필요하구나' 라고 생각하고 장기기억으로 만든다니까!"
"네, 여러 번 얘기 하셨잖아요. 알긴 해요."
"입도 마찬가지야. 입 안에 있는 근육에 기억세포들이 있어. 어떤 소리를 자꾸 내면 그 소리가 기억이 돼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매번 생소하고 할 때마다 어색해서 힘들어."
"네,네..."
"그럼 다시 해 보자."
난 차라리 아웅다웅하는 게 좋다. 뭘 말해도 반응이 없는 건 정말 죽을 맛이다. 몇 해 전 고1 때 만나 3년간 가르쳤던 제자가 떠오른다. 그 제자는 어떤 면에서 참 즐거움(?)을 주는 학생이었다. 수학은 전교1등이지만 영어는 그와 비교도 안 되는 실력. 뒤늦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와 만났다. 험난한 시기를 거치고 거치면서 아웅다웅 케미가 절정을 이루었다. 기본적인 문법과 단어들을 몰라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섭섭해하고, 그러다 꾸준함이 쌓이고 쌓여 어느 정도의 실력에 올라섰다. 그러면서 본인이 해석이 잘 되지 않거나 문제를 틀리면, 내가 뭐라 얘기할 새도 없이 자신에게 "나 진짜 왜 이러냐. 바보 아냐?" 이러면서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틀린 문제에 대해 욕심을 냈다.
이런 아웅다웅 내 제자는 결국 원하는 학교 여러 곳에 합격을 해서 최상의 학교를 골라서 진학했다. 만약 주어진 문제가 있다면 맞고 틀릴 수 있는 상황에서 틀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선생님의 시선과 목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했던 부분이 틀렸으며 왜 틀렸는가에 몰입하는 성격이 그 제자를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난 아웅다웅하면서 실력을 쌓아가는 학생이 좋다. 듣기만 하고 이해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도 묻고 따지고 말해보고 수정해나가면서 자신의 실력으로 만드는 학생들을 많이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