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민 영어강사의 수업 일지 9
기대와는 다른 세상 속 다양한 매운맛들에 화들짝 놀랐다. 뭐든 다 경험이고 해 보면 내 재산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해 보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은 거리가 멀었고, 그 와중에 계속 우왕좌왕하다가 펀치를 몇 번 맞고 쓰러졌다.
강사 교육
영어강사 일을 그만두고 새롭게 시작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어강사들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가르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거였는데, 회사 생활을 하는 거라 생각하고 덥석 수락한 일은 전에 하던 일보다 레벨 업 된 일일 뿐이었다.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고되면 고되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일은 정말이지 시작한 순간부터 오래 하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번 반복되는 강사들과의 기싸움. '나도 영어강사인데 나를 가르치겠다고?' 하는 눈빛들을 이겨내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소규모 코칭 수업을 할 때는 강사 수가 적은 대로, 대강당에서 대규모의 강사들을 교육할 때는 인원이 너무 많아서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되고, 어쨌든 강사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소위 나의 말빨은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나의 초예민한 성격은 점점 더 예민해져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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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연예인을 제일 많이 본 시기. 디자이너 선생님이 전 영화배우이자, 연예인을 발굴하셨던 분이라 연예인들이 하루 평균 2-3명은 이곳을 찾아왔다. 화면보다 더더욱 멋진 분들도 많았고, 화면에서 보이는 모습이 전부 연기인 사람도 꽤 있었다. 연예인을 많이 봤던 거 빼고는 뭐 이렇다 할 즐거움(?)이 없는, 커리어적으로 전혀 배우거나 발전을 할 수 없었던 후회뿐인 시기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해전 선생님이 돌아가신 걸 뉴스로 봤지만 너무 잠깐 뿐이었던 인연이라 찾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결국은 못 갔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선생님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래요.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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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갑질이라는 단어를 맛보게 된 시절이었다. 갑을병정이라는 줄서기에서 병 또는 정으로서의 역할은 상상 이상이었다. 퇴근하다가도 다시 되돌아와야 했고, 외주를 준 디자이너가 잠수를 타면 입이 바싹바싹 마르다 못해 타들어갈 지경이었다. AR과 SR을 제작해야 하는 시기에는, 갑 님이 쏟아내는 데이터들을 받아 처리하다가 영혼이 탈출하기 일보직전인 데다, 영문판을 제작해야 할 때는 외국인 영문에디터에게 컨텐츠를 보내기 전 모든 번역은 (영어강사였다는 이유로) 내가 처리하다 보니, 워라밸은 고사하고 집에 들어갈 틈이 없어 거의 일주일간 회사에서 숙식을 했던 진정한 헬을 맛보았다. 그렇게 고생고생하고 남은 건 더더 저하된 두 눈의 시력과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두 명의 인연 뿐. 사람이 남았으면 된 거지 뭐 하고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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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뭔가 제대로 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거대 자본 없이는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은 노코멘트.
다른 길들을 경험해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배우기에 30대라는 나이는 너무 늦었던 것일까? 늦은 나이에 시작했던 일들이라 괜히 더 조급해서 그랬는지 쉽게 지치고 포기하고만 싶었다. 처절한 패배였다. 매워서 눈물 콧물 흘리며 먹다가 뱉어낼 줄 모르고 청양고추를 덥석 베어 문 꼴이었다.
새롭게 했던 일이 힘들 때마다 강의실이 생각났다. 길을 가다 마주친 버스에 전에 일했던 어학원의 광고가 보이면 마치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다른 일은 쉬울 줄 알았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수강생들이 전해준 편지며 카드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보고 하나하나 읽으며 자존심을 회복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역시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 뿐인 건가? 정말 나의 팔자는 계속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인가? 매운맛을 본 나는 예전보다 발전된 내가 맞는 것인가?
정답은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렇게 해 보다 말 걸 왜 굳이 고생해봤냐고 할 수도 있다. 다른 일을 하겠다면서 다시 돌아온 건 또 뭐냐고 할 수도 있다. 맞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집을 떠나봐야 집의 소중함을 알고 옆에 있던 사람이 없어지면 비로소 후회하는 게 인간이지 않나. 그냥 난 평범한 인간이었다.
다시 돌아 돌아온 곳. 여전히 힘든 건 똑같이 힘들고 퇴근이라는 것은 즐겁다. 철저히 혼자서 하는 일. 그럼에도 초예민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매일매일 하고 있다. 지금은 성인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다. 누구를 가르치는 시간이냐에 따라서 내 강의실의 색깔도 바뀐다. 아이들이 실수하면서 꺄르르 웃는 시간엔 나도 같이 웃어보고, 대학생들이 원하는 토익 점수를 받으면 그들의 앞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어떤 일을 해야 최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일하면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초예민한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해 본다. 잘할 수 있는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