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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가을 Aug 31. 2022

나에게 주는 사치, 그이름은 자유

초예민 영어강사의 수업일지 11


나는 요즘 배우 윤여정님이 말했던 것과 비슷한 사치를 부리고 산다. 그건 바로 선택의 자유.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닌, 내가 마음이 동하는 일만,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는 사치를 부리고 있다. 심하게 아픈 날은 쉴 수 있는 자유,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1주일 정도 여행을 갈 수 있는 자유, 무례한 수강생은 그만 가르칠 자유로 사치스러운 삶을 살아보고 있다.


사실 경제적 위치를 생각해 보면 이런 사치를 부릴 상황이 전혀 아니다. 어쩌다보니 차도 없고 집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녀도 없는 당황스러운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일해 온 나에게 스스로 이 정도의 대우는 해주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복지(?)인 셈이다.


안정되지 않음에서 오는 불안함과 주변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머릿 속이 복잡할 때도 많다. 그래도 난 이비인후과 선생님의 경고와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오랫동안 목을 혹사시켰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이제는 나를 좀 돌봐주면서 힘들땐 쉬어가면서 일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강사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장시간 서서 고래고래 큰 소리로 일을 해 온 강사들은 성대 쪽의 문제, 요통, 위염들이 발생한다.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하거나, 급하게 밥을 몰아먹고 일을 하든 아님 늦은 시간에 끝나고 폭식을 하면서 건강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모든 직업마다 고달픈 면이 있고 직업병도 있겠지만 매 시간 '일 대 다수'로 전투를 치루는 일에 몸을 잘 돌보기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멘탈이 약하거나 관절이 약하신 분, 또 위장이 약하신 분은 이 일을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신적 건강은 많이 되찾았다. 초예민함에서 기인한 스스로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남에 대한 과민한 생각들은 조금씩 줄여나갔고, 40대에 이르러 '불혹'에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에게도 남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걸로도 많은 정신적 여유를 찾은 느낌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서 일하면 외롭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예전같으면 이런 질문에 "맞아요. 혼자 일하다 보니 힘들기도 한데 어떨 땐 편하기도 해요." 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혼자라기 보단 수강생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끌어가는 건 나 혼자이지만 그들의 실력을 하나하나 쌓아올려가는 것은 나혼자만의 힘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일 낮에 잠깐 제자를 만나기로 했다. 군대 가기 전에 보고 그 후에 보는 거라 한 5개월 만 인 것 같다. 현재 통역병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는데 휴가를 나와서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3학년까지 가르치면서 성장기를 쭉 지켜본 입장에선 정말 조카나 다름 없는 제자이다. 그동안 또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가 된다.


현재 나의 인간관계망의 상당비율은 수강생들, 제자들, 학부모님들이 차지하고 있다. 일로써 만났지만 일을 넘어 오랫동안 마음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한다. 가끔씩 전화와 SNS, 카톡 메세지로 연락을 하고 근황을 전달해 주는 세계 곳곳에 있는 보고픈 나의 옛 수강생들에게도 항상 고맙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힘들다하면서 또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서 일해왔지만 결국 사람이라는 열매가 맺혀서 보람이라는 것을 맛볼 수 있음에 다행이다.


일에 있어 온전한 만족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 매 시간 찾아오는 소소한 즐거움과 기특함을 즐기며 일해보자. 자, 내일도 수업을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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