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시리즈 영상 공개 - 특별편 제주 먹어봔 https://youtu.be/Tk2-3jD-7iQ
* 올레 위에 올려둔 무청. 하지만 무청은 바람이 잘 나는 그늘진 곳에 말려야 했다. 첫 수확의 기쁨도 잠시 무청 말리기를 실패하여 아쉬웠지만 덕분에 3월 본격 겨울무 수확 때 엄청난 양의 무청을 잘 말려서 1년 치 식재료를 확보한다.
유명한 관광지에는 맛집이 많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랬고 여행은 자고로 식도락을 곁들여야 진정 재미가 있다고 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답게 맛집이 정말 많다. 게다가 신선한 제주산 재료를 쓰기에 더욱 맛있고 믿음직하다. 너무 비싸다는 흠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주에는 여전히 먹으러 놀러 오는 관광객이 많다. 카페도 참 많다. 제주의 분위기는 카페와 잘 어울린다. 커피와 차가 특별하게 맛있어서라기보다는 그 분위기에 취해 오는 경우가 많다. 인스타그램이나 카톡 프사용 사진 찍는 게 진짜 숨은 목적이다. 그렇게 제주도에 방문해서 긴 줄을 감내하면서까지 많이 먹고 즐기지만 진짜 제주의 별미는 사실 다른 곳에 있다. 이것은 오직 제주에 살아봐야지만 경험할 수 있는 거다.
제주 돌카롱은 한라산 중턱에 위치해서 접근이 쉽지 않지만 인기가 많다. 이런 테마가 있는 음식들이 제주 식도락 여행을 더욱 빛나게 한다. 맛도 일품이고 재미도 있다.
배우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일본의 영화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만든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맛있게 먹는 김태리 씨의 모습에도 즐겁지만 그전에 씨 뿌리고 수확하고 다듬고 요리하는 그 과정에 눈이 즐겁고 입안에 침이 감돈다. 제주도는 지천이 밭이다. 농업인구가 대다수다. 농협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농가소득이 전국 1위인 곳이 제주다. 그리고 바다밭은 또 얼마나 귀중한 식재료를 아낌없이 주는가. 전복, 뿔소라, 성게 등은 함부로 채취하면 안 되지만 거북손, 보말, 게는 마음껏 채취해도 된다. 제주판 우리 가족 리틀 포레스트를 이곳에서 마음껏 즐기게 됐다. 물론 내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수확의 즐거움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시작은 무였다. 무는 정말 흔한 식재료지만 특히 제주산 겨울무는 그 맛이 일품이다. 심지어 달기까지 하다. 흔한 식재료인 만큼 무로 만들 수 있는 요리도 정말 많다. 11월에 이사를 한 우리에게 일주일도 안되어 어마어마한 양의 무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장님이 요 앞 밭에 있는 무를 그냥 가져가면 된다고 하신다. 요 앞이 어딘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사장님이다. 아내와 함께 요 앞의 밭이 어딘지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밭 입구에 잔뜩 쌓인 무 더미를 발견한다. 근데 무가 작다. 알타리무인가?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우리는 이게 바로 알타리무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잔뜩 챙겨 온다. 이사 온 지도 얼마 안 됐고 이런 기회는 다신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과하게 욕심을 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을 챙겨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더 큰 무를 수확하기 위해 솎아낸 무들이라고 한다. 아직 덜 자란 무인 것이다.
첫 수확, 첫 시도 우리의 작은 무 깍두기. 정말 너무나도 맛있어서 밥과 이 깍두기만 있어도 삼시 세 끼가 해결됐다.
덜 자랐다고 해서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너무 작은 무들이라 손질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청은 따로 떼서 올레에 올려 말리고 후에 시래기로 만들어 먹으면 된다고 한다. 무는 일일이 씻고 잘라 깍두기를 담그기로 했다. 아내도 생전 처음 담가보는 김치다. 역시나 '만개의 레시피'앱이 아내에겐 필수다. 레시피에 나온 대로 무게를 정확히 측정해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깍두기를 담근다. 무의 빛깔도 고춧가루의 빛깔도 너무 예쁘다. 그렇게 난생처음 깍두기를 담가본다. 아직은 맛이 덜 베었지만 무가 쓰거나 맵지 않다. 이렇게 작은 덜 자란 무인데도? 기대 속에 깍두기를 푹 익히니 와! 식당에서나 볼 수 있던 바로 그 맛이었다. 우리 모두가 놀라웠다. 후에 손님이 오셔서 식사 때 대접해드렸더니 다들 어디서 산거냐고 물었다. 뿌듯했다.
무청은 시래기로 만들어야 하는데 첫 시도는 실패했다. 올레에 그냥 던져놓는 것은 어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데 사실 바람이 잘 들고 그늘진 곳에 말려야 한다고 한다. 그냥 직사광선 햇빛에 바람 안 통하게 말렸더니 조금 질기고 얼마 먹지 못할 양이 나왔다. 벌레도 꼬였다. 하지만 일부 먹을만한 것들은 잘 추려서 시래깃국을 만들어봤다.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시래깃국을 엄청 좋아하는데 너무 맛있었다. 시래기밥 또한 일품이었다. 제주 맛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참 잘 먹는다. 육지에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잘 먹지 않아 항상 고민이었다. 세끼를 정성 들여 차려줘도 잘 먹지 않는다. 그나마 작은 아이는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겠거니 하지만 큰 아이는 학교도 안 가는데 집에서 점심을 너무 깨작대고 먹어서 속상했다. 아내와 나는 제주에 올 때 모종의 목표를 세웠다, '애들을 잘 먹여 키우자!'
부모들이 우리 애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육아하며 깨닫는다. 제주에 와서 활동량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밥을 잘 먹어 기쁘다.
산 좋고 물 좋은 제주에서 마음껏 식도락을 즐기면 아이들도 잘 먹겠거니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에서 마음껏 뛰놀게 한다면 자연스레 잘 먹겠지 생각했고 무를 주워갈 때도 감자, 당근을 주워갈 때도 아이들을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줍도록 만들었다. 아이들은 식재료를 직접 줍는 재미와 요리하는 재미 덕분인지 정말 잘 먹어주었다. 특히 밭보다는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에서 보말과 게를 채집할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잡았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보말은 바다 고둥의 제주어인데 종류가 다양하다. 보통 수두리 보말과 매옹이, 고메기를 줍는다. 가끔 보말을 줍고 있으면 해녀분이 물질하시다가 오셔서 오분자기같은 것을 주실 때도 있다.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어장에 있는 전복, 성게, 뿔소라는 절대 채취하면 안 된다. 그런데 사장님이랑 같이 가면 가끔 그 자리에서 뿔소라를 돌로 깨서 하나씩 입에 넣어주신다. 이건 비밀이다.
보말과 매옹이. 간조일 때 더 큰 보말을 줍기 쉽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주워와도 다음날 가보면 또 잔뜩 있다. 아빠가 바위를 들면 가족들이 얼른 줍기를 반복한다.
어느 바다에서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보말은 너무 맛있는 재료다. 얼려놓고 오래 먹을 수도 있다. 조리하는 과정이 지난하지만 견딜 만큼 맛있다. 보말 빼는 작업 중인 아빠.
인심 후한 제주에서 만난 교회 식구들과 사장님이 주요 정보원이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구좌읍 00길 00로 일대' 문자를 수신하면 아내와 나는 서둘러 장비를 챙겨 바로 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번엔 당근이다. 수확을 마친 밭에 상품성이 없어 가져가지 않은 못난이 당근이 주요 타깃이다. 전국 농가 소득 1위답게 제주 농가는 참 풍성하다. 상품성이 없다고 버려졌는데 우리한테는 1년 치는 족히 될 양이 수확된다. 심지어 넘쳐나서 육지로 보내주는 수준이다. 작고 못생긴 당근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입에 넣고 씹으니 아! 이래서 제주 당근, 제주 당근 하는구나 싶다. 제주말은 좋겠다. 이런 당근 맨날 먹어서. 그대로 믹서기에 넣고 갈았더니 훌륭한 당근주스가 된다. 너무 달고 맛있다. 약간의 비린맛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사과를 같이 넣고 갈면 된다. 제주 당근 예찬론자가 된다.
못났다고 무시하지 마라. 이렇게 맛있는 당근도 또 없다. 지난날 열심히 농사를 짓고 우리에게 이런 소출을 남겨주신 제주 농부들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번엔 배추밭이다. 이번엔 인심 좋은 교인께서 아직 수확 전인 배추를 그냥 내주셨다. 배추를 처음 따 보는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 신났다. 밑동을 툭툭 쳐서 잘라낸 후 겉의 잎 부분은 모두 칼로 쳐낸다. 깨끗한 속 알맹이만 남긴다. 노랗게 변한 잎들 역시 칼로 툭툭 쳐낸다. 이거 정말 재밌다. 더 재밌는 것은 무얼 먹을지 상상하는 일이다. 일단 배춧국을 끓이고 배추쌈을 먹고 배추전을 만들어 먹으면 맛있겠다 생각한다. 아내는 열심히 '만개의 레시피'를 확인한다. 아이들은 자기 머리보다 더 큰 배추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즐거움인가 보다. 배추 수확은 아빠 몫이다. 배추 따기의 달인은 우리 목사님이셨다. 제주에 이주해오신지 꽤 되셨다고 하셨는데 역시나 부엌칼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경험자의 손길이 느껴진다.
배추를 무슨 인형처럼 꼭 껴안고 신난 큰 아이. 처음 수확하는 나는 배춧잎 하나하나가 너무 아까운데 상품으로 파는 배추는 이런 걸 다 툭툭 쳐낸 거란다.
수확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다시 문자가 온다. '도로 입구 달래 밭으로!' 차를 돌린다. 도로 입구에서 달래를 보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던 터라 문자를 받고는 신이 났다. 집사님과 권사님께서 친절하게 달래 캐는 법을 알려주신다. 순식간에 오늘 저녁 찬거리가 생겼다. 달래무침은 정말 좋아하는 메뉴다. 아이들도 달래를 처음 보는지 신기한 듯 열심히 캔다. 달래는 하나하나 캐기가 쉽지는 않았다. 정성 들여 캐야 한다. 그저 지천에 널린 식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길가에 쑥과 갓도 넘쳐난다. 잘 몰라서 못 먹을 뿐이다. 이처럼 재료가 너무 많다 보니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된다. 욕심내서 가져와도 보관을 잘 못해서 버리게 되면 너무나 아깝기 때문에 욕심내기보다는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수확한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광야를 헤매던 시절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고 했다. 우리도 욕심 없이 '일용할 양식'만 수확하는 법을 배워간다.
달래무침은 달착지근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밥도둑이다. 아이 손의 한 움큼 정도면 한 끼 식사량으로 충분하고 더 많이 캔 것들은 달래장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다.
푸짐하고 맛있는 한 끼가 탄생한다. 오일장에서 구매한 파김치, 오징어젓갈도 그 맛이 일품이고, 제주산 돼지고기 앞다리살로 만든 제육볶음도 기가 막히다.
3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무를 수확한다. 겨울에 육지에서 먹는 무는 거의 다 제주산이라고 한다.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주변이 온통 무밭이라 수확한 이후에 남는 건 마을 사람들 차지다. 무밭에 가보니 무가 여전히 그대로 땅속에 남아있었다. 무를 뽑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파리를 잡고 뽑으면 무가 쑥 하고 딸려 나온다. 힘을 전혀 들이지 않아도 쉽게 쉽게 뽑힌다. 무를 뽑는 재미는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마치 유튜브에 나오는 오래된 피지 짜는 영상을 보는 쾌감과 비슷하다고 할까. 관광코스로 개발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밭 가장자리에 주로 남겨져있는데 일단 다 뽑고 본다. 어차피 며칠 후면 다 갈아엎을 거니 마음껏 다 가져가라고 한다. 못생긴 무가 나올 때도 잘생긴 무가 나올 때도 있다. 그중 먹기 좋게 한 덩어리로 되어 있는 것 위주로 고른다. 양이 너무 많아 굳이 작은 것을 고를 필요는 없고 크기도 알맞은 것으로만 고른다. 순식간에 한 차 가득 무를 뽑았다. 육지에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너도나도 무를 보내달라고 한다. 다시 또 무를 뽑으러 간다.
이런 무를 그냥 가져가라니. 제주도에 그냥 살고 싶게 만든다. 이사 올 때 심어져 있던 게 4개월 사이 이렇게나 자란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육지로 선물로 보내기 위해 흙을 털지 않은 채 그대로 신문지로 포장한다. 무청은 다 잘라내 말려서 우리가 먹는다. 친구가 제주도에 산다는 게 이런 기분일 것이다.
무청만 요구하시는 분들께는 이렇게 잘 말려서 무청을 보내드린다. 제주 농부들의 넉넉한 인심에 나도 좋고 육지 지인들도 좋으니 사람들이 그렇게 제주를 사랑하나 보다.
감자밭이 있는지는 몰랐다. 사장님이 감자 주어가라고 연락이 왔는데 길을 못 찾아 헤맸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차 한 대가 밭 옆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봤다. 이미 감자를 주으러 오신 분이 계셨다. 서둘러 아내를 데리러 가서 작업용 장화와 목장갑을 챙겼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께서 좋은 감자 줍는 법을 알려주셨다. 역시나 상품성이 없다고 생각된 감자들을 두고 간 것인데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식재료였다. 감자를 줍는데 아주머니께서 문어 잡는 게 정말 재밌다고 새벽에 고무옷을 입고 가서 문어를 잡아보라고 권유해주셨다. 하루에도 몇 마리씩 건지시는데 엄청 큰 문어라고 했다. 구미가 당긴다. 언젠간 도전해봐야지라고 생각한다. 감자는 알이 작지만 그 양이 꽤나 많아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통감자구이를 만들어 먹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만개의 레시피'에서 감자전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다. 제주 감자가 맛이 꽤나 좋다. 어릴 적 엄마가 감자를 삶아 마가린을 발라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밭일을 수고롭게 끝내고 바로 감자 요리를 먹는다.
맛있는 통감자구이에 마가린 대신 버터를 발라 먹었다.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지짐이는 덤이었다. 풍족한 한 끼가 완성된다.
4월부터 5월까지는 제주도 구석구석이 들썩인다. 고사리철이기 때문이다. 이 시즌에 일부러 고사리를 캐러 여행 오시는 어르신들도 꽤 있다. 들어보니 한 달 동안 고사리를 캐서 판 돈으로 숙박비를 마련하신다고 한다. 창조경제가 따로 없다. 차를 타고 중산간로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플래카드로 고사리 따다가 길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문구가 보인다.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보인다.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사리를 따다가 길을 잃는다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길을 잃지? 왜 길을 잃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사리를 작정하고 따기로 마음먹고 여러 경험자들의 조언을 들은 후 드디어 길을 나섰다. 연습 삼아 집 주변의 고사리밭으로 향했다. 양치식물이 잘 자라는 환경이 있을만한 곳으로 직행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엄청난 양의 고사리가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게다가 고사리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고사리는 정말 아기 손을 닮았다. 묘하게 귀엽기까지 하다. 그리고 톡톡 따낼 때 그 ASRM은 엄청난 중독이었다. 고사리를 한 번도 못 따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따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고사리를 따다 길을 잃는 이유는 땅만 쳐다보며 고사리 찾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첫 도전에서 꽤나 짭짤한 수입을 얻었다. 제주 햇고사리 무침이 맛있다고 해서 아내가 '만개의 레시피'를 통해서 조리를 시도했다. 고사리 독소를 제거하고 삶는 과정을 실수해 아내가 만족할만한 요리가 나오진 않았다. 햇고사리 무침은 기존에 알던 고사리처럼 갈색이 아니라 초록빛이었는데 오묘한 맛이었다. 식감이 정말 좋았다. 익숙지 않은 맛이었지만 맛있게 먹었다. 이후 감격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고사리를 따러 다니기 시작했다. 이번엔 장소를 바꿨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거대한 풍력발전소가 보이는 길을 지나고 있을 때 왠지 저 아래에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무렵 아이들이 "아빠 저게 뭐예요? 저거 구경하고 싶어요."라고 했고 그 길로 차를 돌려 풍력발전소 아래까지 산길을 뚫고 나아갔다. 차문을 여는 순간 발아래 지천으로 널린 고사리를 발견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참 좋아하신다고 했다. 아이들 입으로 내게 고사리밭을 안내해주신 거다!
첫 고사리 작업에서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이후 고사리 따기는 '육아휴직자'의 '과업'이 됐다. 산으로 들로 따러 다니면 호연지기도 길러지고 아이들에겐 소풍이기도 하다.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준다는 나만의 고사리밭을 찾아냈다. 거의 매일같이 그곳으로 출근했다. 고사리를 따고 간식을 먹고 쓰레기를 줍고 집에 와서 고사리를 씻고 삶은 후 말리는 일상이 반복됐다. 단조로울 것 같은 그 일상에서 농부의 삶을 엿보았다. 땀 흘리며 허리 굽혀 수고한 만큼 소출이 생겼으며, 집에 와서 씻고 삶는 과정은 한껏 기대감을 높였다. 무엇보다 백미는 바로 햇살 좋은 날 고사리를 말리는 작업이다. 2층 베란다에 넓게 돗자리를 펴두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돌로 괴어놓는다. 삶은 고사리를 널찍하게 펴서 말리고 하루쯤 지나면 엄청나게 컸던 제주 고사리가 온데간데없고 말라비틀어지고 쪼그라진 볼품없이 타다 남은 성냥개비처럼 생긴 것들이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이게 진짜다. 행여나 부서질까 조심스럽게 집어 봉투에 담아둔다.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1년 내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농협 하나로마트 가격 기준으로 하루에 우리가 수확한 양 정도면 5만 원 돈 한다. 엄청난 양이다. 그러니 한 달 동안 고사리만 따서 팔고 숙박비를 벌어간다는 얘기가 거짓이 아닌 거다.
하나하나 정성스레 펼쳐서 잘 마르도록 한다. 바람이 강해서 종종 다 날아가버리는 일도 발생하지만 우리 집 2층 베란다는 고사리 말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잘 마른 고사리는 타버린 성냥개비 같기도 하고 안개꽃 같기도 하다. 볼품없어 보이는 얇은 저것을 봉투 안에 넣어두니 금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
한동안 고사리 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그 사이에 부업으로 산딸기를 따고 산딸기잼을 만드는 재미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 풍요로웠다. 모든 것이 넘치지 않을 만큼 넉넉했다. 고사리를 따다 보니 오름에 오를 때도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갈 때도 고사리만 눈에 아른거렸다. 오름을 오를 땐 길옆에 난 고사리를 딸까 말까 고민도 많이 됐다. 하지만 욕심은 내려놓기로 했다. 고사리 따기는 행위 그 자체도 크게 즐거웠다. 그래서일까 가끔 나만의 고사리밭에서 만난 경쟁자분들이 한 움큼 딴 고사리를 그냥 우리에게 주는 경우도 있었다.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자연이 준 선물은 우리 모두의 것인데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준다는 말에 나 역시 혹했었기에.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누구든지 고사리 많이 나는 곳을 물으면 서슴없이 답해준다. 내년에도 그곳에 고사리는 무성할 것이다. 고사리의 생명력은 고대부터 이어져와서 놀랍기 그지없다. 내가 다 따버린 거 같은데 일주일 뒤에 같은 장소에 가면 또 엄청나게 올라와있다. 그렇게 강하니 고대부터 지금까지 생존한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아끈다랑쉬오름 전경. 오름 정상에선 고사리를 따고 있는 어르신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나 싱싱하고 오동통한 고사리가 잔뜩 있어서 뜯을까 말까 고민하게 했던 아끈다랑쉬오름.
우리 엄마에겐 레퍼토리가 있다. 요약하자면 내가 어릴 적 입이 짧아 정말 안 먹었고 그래서 맨날 숟가락을 들고 다니며 먹여야 했고 그런데 갑자기 중학생 때 밥 더 주라고 해서 놀랐고 지금의 키로 자라게 돼서 뿌듯하다는 거다. 아마 이 세상 엄마들은 모두 자식들이 잘 먹어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군 생활을 14년 한 나는 안 먹으면 굶기고 배고플 때 밥을 주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들은 삼시 세끼 먹여야 마음이 편하다. 아내도 그렇기에 육지에 있을 때 나름 5대 영양소를 고려하여 잘 챙겨줬음에도 아이들이 잘 안 먹어서 속상해했다. 제주도에 온 이래 아이들이 잘 먹는다. 쑥쑥 크는 게 눈에 보인다. 아마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하고 맛 좋은 식재료와 '만개의 레시피' 덕분에 향상된 아내의 요리실력에 더해서 활동적으로 지낼 수 있는 환경이 한몫했으리라.
아파트에서 주로 살던 우리들에게 쉴 새 없이 나오는 말은 "뛰지 않았으면 좋겠어."였다. 마음껏 뛰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뛰놀지 못하게 하는 게 미안하지만 그게 아파트의 삶이었다. 제주에 와서는 마음껏 뛰놀아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게 참 좋다. 식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일은 거기에 더해 자신이 직접 먹을 재료를 구한다는데 또 의미가 있다. 집에 와서 조리된 음식을 보며 "오늘 너희들이 캐온 것들로 만든 거야."라고 하면 호기심에라도 먹어보는 게 아이들의 심리다. 그렇게 잘 먹는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제주에 잘 왔다고 생각한다. 또 내일은 어딜 가서 먹을걸 구할까라고 생각한다. 수렵채집의 고대 인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이게 더 좋다. 하루에 3~4시간만 채집하면 그날 먹을 '일용할 양식'이 충분히 구해지니까. 다만, 낚시 기술이 부족해 뭘 잘 못 낚는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생선 맛을 못 보여줘서 미안할 따름이다. 대신 오일장 가서 생선을 떨이로 잔뜩 사 온다. 봉지가 찢어질 정도로 잔뜩 챙겨주고 그냥 만원 한 장만 달라는 게 제주 인심이다.
마음껏 뛰놀아야 배가 고프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은 시대를 관통하는 금언(金言)이다. 마음껏 뛰놀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제주에서 아이들도 쑥쑥 자란다.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육지에 있을 때 고민 중 하나가 애들을 뭐를 먹여야 하나였다고 한다. 또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서 돌밥돌밥을 하느라 엄마들의 고생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육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먹이는 문제'가 제주도 와서 일정 부분 해소됐다. 그날 구한 먹을거리로 그날 반찬을 만들면 되니까. 아내도 큰 부담을 덜어서인지 즐겁게 요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리고 그렇게 즐겁게 만든 요리는 더 맛있다. 정성이 더 듬뿍 들어가 있다. 아이들이 쑥쑥 크는 만큼 아빠는 배가 나온다. 나름대로 관리했던 몸인데 이제는 온데간데없다. 하지만 행복하고 좋다. 맛있는 거 잔뜩 먹어서 더 좋다. 인심 좋은 사장님은 내가 낚시를 잘 못하는 걸 알고는 가끔 엄청난 물고기들을 잡아와 자랑하고는 다 내어준다. 어랭이, 자리, 우럭 등 온갖 잡어들을 잘도 낚으신다. 그렇게 잡아온 물고기를 손질해서 주시면 우리는 또 감사한 마음에 소금 쳐서 프라이팬에 구워 날름 먹는다. 그 맛이 또 일품이다.
잔뜩 낚아 올린 물고기를 약 올리며 자랑한다. 하지만 또 그걸 다 손질해서 먹으라고 선뜻 주시니 밉지는 않다. 제주 인심은 츤데레 같다고나 할까.
제주도에는 맛집이 참 많다. 말만 하면 누구나 알만한 '오는 정 김밥'이나 '김만복 김밥'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백종원 씨 덕분에 유명해진 '연돈 돈가스'같은 곳도 있다. 기본 1시간씩은 기다려야 겨우 먹는다는 '우진 해장국'도 있다. '명진전복', '이춘옥 고등어 쌈밥', '곰막 식당' 같은 곳은 그 푸짐하고 신선한 재료로 또 유명하다. 또 육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제주도민들만의 숨은 맛집도 많다. 지역별로 다양하기 때문에 그 지역에 살아봐야지만 알 수 있는 식당들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만의 전통 음식도 꽤 있다. 제주도는 주로 양념으로 된장을 쓴다. 물회에도 된장이 들어간다. 그래서 육지의 맛과 사뭇 다르면서도 정겹다. 우연히 TV에서 최불암 씨의 '한국인의 밥상 ; 제주 편'을 보았는데 방금 낚아 올린, 방금 물질해서 가져온, 방금 밭에서 캐온 재료들을 그대로 조리하는 모습들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어 보였다. 진정한 제주도의 맛은 아마도 '한국인의 밥상'에 나오는 그런 맛이 아닐까 싶다. 살아봐야지만 먹을 수 있다. 1년 365일이 식도락의 섬이다.
앞으로 제주도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준다면 굳이 여름에, 겨울에 와서 바닷가나 눈 쌓인 한라산 구경을 고집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다. 봄철에 와서 유채꽃이나 튤립만 보거나 초여름에 수국만 즐기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보다 맛있는 제주를 탐해보라고 하고 싶다. 3월은 아직 쌀쌀하지만 농민들은 한참 바쁘다. 온갖 작물들이 땅에서 솟구쳐 나온다. 4~5월의 제주에서 고사리를 뜯어보라고 하고 싶다. 바다 근처에 펜션을 잡고 저녁 무렵마다 나와 보말을 따다가 삶고 손질해 미역국에도 넣고 된장국에도 넣어서 먹어보라고 하고 싶다. 유명한 맛집도 좋지만 내가 직접 구한 식재료를 다듬어 만든 정성이 담긴 음식 한 그릇을 먹어보라고. 『리틀 포레스트』가 따로 없다고. 아기자기하고 달콤한 제주의 카페도 좋지만 손톱 밑에 흙이 잔뜩 껴서 몇 번이고 비누로 씻어내야 하지만 그렇게 얻어진 식재료의 아기자기함은 또 다른 기쁨이라고. 은퇴하면 제주에 집을 짓고 살기로 했다. 낚시 기술을 조금 더 연마해서 사시사철 제주 바다내음 가득한 생선도 먹여주겠다고 다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용할 양식'으로 충분하다. '일용할 양식'을 채집하고 남은 시간은 모두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야겠다.
상추를 수확하고 감자를 캔 기념으로 골뱅이 무침을 해 먹는다. 골뱅이는 정말 비싼 식재료지만 우리가 수확한 야들야들한 상추와 잘 어울려 사치를 부려본다.
Tip. 제주 농가소득은 전국 1위다. 농협은 농가소득 5,000만 시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이중 제주도는 거의 근접한 4,8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수확하는 작물은 시장의 수요와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일정 부분은 폐기 처리한다. 과잉 생산돼 폐기 처리한 농산물은 말 그대로 버려지는데 주변 주민들은 마음껏 가져가도 무관하다고 한다. 단, 가져온 수확물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는 안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로 도심지에 거주하는 제주도민들도 잘 모르는 시골 제주도민들만의 특권이 있다. 계절별로 지역 특산품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감귤, 천혜향 같은 것은 제주 전역에서 나지만 남원 쪽이 특히 유명하다. 구좌읍은 당근으로 유명하고 표선은 최고의 무 생산지다. 배추, 감자 등은 지역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쑥도 정말 많이 나는데 심지어 앞마당의 잡초가 쑥인 수준이다. 어촌계 바다 농장에서 뿔소라, 성게, 전복 등을 함부로 채취하면 안 되지만 함덕해수욕장 같은 특정 지역은 1kg까지는 채취가 가능하다. 관광객이 몰릴 시점보다 조금 일찍 가야지만 채취가 가능하다. 본격적으로 입도객이 많을 때는 이미 해녀분들이 다 채취한 뒤라 보기 어렵다. 보말, 매옹이, 게 등은 아무 때나 가도 쉽게 채집할 수 있다. 게는 가급적 바닥이 딱딱하고 돌이 많은 곳이 좋은데 틈새가 많으면 게가 잘 숨어 잡기 어렵고 편편한 바닥 위에 돌이 많은 곳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게를 잡기 위해 얕은 물가를 돌아다니다 운이 좋으면 베도라치, 문어, 벵에돔 등도 잡을 수 있다. 게는 통째로 튀겨서 먹으면 새우깡 비슷한 맛이 난다. 술안주로 최고다. 거북손 채취를 위해서는 스크래퍼 같은 도구가 있으면 조금 더 수월하다. 고사리는 제주 전역의 중산간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양치식물 특성상 그늘지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있다. 풍력발전소가 많은 성산읍, 구좌읍 중산간 지역에서는 도처에서 두루 발견된다. 길을 가다 차가 아무렇게나 길가에 세워져 있다면 십중팔구 고사리 채취하러 온 차니 그 부근으로 간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전원주택에서 산다면 한그루에 5~10만 원 꼴 하는 귤나무, 레몬나무, 하귤나무 등을 심어놓으면 여름이 오기 전에 수확할 수 있는데 과실을 그냥 따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청을 담그면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