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을 신었다는 건 나갈 채비가 다됐다는 뜻- 숲길에서 만나곤 하는 고양이들을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오늘은 따라나설 각오가 된 모양이었다. 작달막한 것이 나라를 구할 듯 비장한 눈빛으로 서 있는 것이 귀여워 지체 없이 동행하였다.
이번엔 고양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몹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고양이의 목격은 장담할 수 없다고 알려주어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고양이 이야기를 해댔다. 제대로 이해 못 한 건지, 아님 못 봐도 어쩔 수 없지만 지금만큼은 들뜬 느낌을 만끽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원래 뭐든 계획 잡고 준비할 때가 제일 설레는 법이니 더 이상 찬물을 끼얹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아이는 포동포동 동그란 볼 사이에 솟은 연한 입술로 새끼 고양이랑 같이 뒹굴며 놀고 싶은 바람, 고양이가 늦잠 자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등을 연신 오물오물 이야기했다. 그 모습 또한 귀여워 성실하게 추임새를 넣고, 답변도 하며 경청하였다.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엔 다른 주제를 꺼냈다. 어제 있었던 형아와의 마찰이나 지난번 먹었던 간식에 대한 품평, 방학숙제의 지루함 등등.. 이역시도 진지하게 들었지만 성의 있는 반응을 하려니 아침 풍경을 조금씩 놓쳐가고 있는 것에 아쉬움이 쌓이긴 하였다.
아이가 게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대목에 들어섰을 즈음 나는 약간 넋이 나간 듯했다.
공유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에 해박한 부모도 있다지만 난 그 정도 열의를 가진 유형이 아니다. 가족일지라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취향을 존중해 주어야 하며, 고유의 영역에 머무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마인크래프트를 정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니 오른쪽으로 들어온 아이의 말이 온전히 왼쪽 귀로 방출되고 있었다. 머리로는 아이의 수다로부터 벗어난 고요한 상태를 갈망하기 시작했고, 눈으로는 아이의 옆모습과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을 번갈아 훑고 있었고, 입으로는 의무적이고 성의 없는 추임새를 무미건조하게 뱉어내고 있었다.
고양이라도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이 모든 상황이 컷오프 될 텐데 첫 번째 당도한 노란 고양이네는 보이지도 않는다. 고양이가 없다는 사실에 초조해진 아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탄식하기 시작했다. '숲 속이니 조용히 해야 한다. 고양이가 시끄러워 안 나오면 어쩌니'하며 주의를 주었다.
두 번째 포인트에 있는 검정고양이마저 보이지 않자 아이가 또 시끌벅적해졌다. 나는 그간의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그만! 하며 역정을 내버리고 말았다.
고양이를 못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사전에 설명한 점, 주의를 주었음에도 숲에서의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꾸중을 한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산책 방식을 방해받았고, 이젠 지쳤다는 불만 때문에 기어이 화가 올라오고 말았다는 사실을...
버럭질 직후 몇 초간 둘 다 얼었다가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 고양이 안 볼래.
나도 머쓱해져서 '그래.' 하며 시무룩하게 걷는 아이 뒤를 따랐다.
실망감에 휩싸인 아이에게 언성을 높인 것이 너무나 후회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이는 등 뒤로 나의 사과를 들었음에도 말없이 집 방향으로 걷기만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공원을 통과하던 중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아이의 손목을 잡고 연못가의 정자로 뛰어들어갔다.
처음에 멈칫한 것을 보면 손을 잡히고 싶진 않았으나 쏟아지는 빗 속에서 별도리가 없었기에 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왔던듯하다.
운동을 하던 근처의 사람들도 정자 아래로 들어왔다. 어린아이가 아침 일찍 어인 일이냐는 어르신의 자상한 질문에도 묵묵부답이다. 아직은 혼자 있을 시간임을 느끼고 가만히 연못만을 바라보았다.
촤르르 연못으로뛰어드는 빗방울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비녀 같은 빗방울들이 연꽃 사이로 동심원을 그리고 사라지면 둥둥 뜬 연꽃 받침대는 파동에 맞추어 춤을 추듯 천천히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광경은 마인크래프트에 영혼을 빼앗긴 도시 어린이에게도 통하는 모양이었다. 나지막이 아~ 하는 감탄사를 머금는다. 이때를 놓칠세라 '예쁘지? 너랑 같이 이걸 보니 엄마가 기분이 좋네.' 나지막하게 말을 꺼내 보았다. 그랬더니 아이가 나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또박또박, 차분하게 화해의 제스처를 거절하였다.
-나 지금 빗소리 듣고 싶거든? 나중에 얘기하자.
빗속에서 구해주었기에 원망스러운 감정은 조금 털었지만 아직 웃으며 말하기엔 이른 단계였을 것이다. 남아있는 속상함이 튀어나와 퉁명스럽게 무안을 줬을 법도 한데 아이는 편안한 눈빛으로 냉정하지 않게, 도리어 부드러운 말투로 엄마의 일방향을 정지시켰다. 에너지 낭비 없이도 내공이 느껴지는 세련된 거절 방식.. 아.. 나도 이렇게 할 걸. 버럭 하여 미안한 마음 위에 부끄러운 마음까지 더해졌다.
마음이 진정된 뒤 아이에게 물었다.
- 그렇게 예쁘게 말하는 건 어떻게 아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대꾸한다.
-지난주에 생명존중 캠페인 같이 공부했잖아~
아이가 온라인 학습을 모두 끝내고 나면 그 날 배웠던 내용의 핵심을 같이 되짚어보곤 하는데, 우리가 얼굴을 바라보며 기억해냈던 수칙은 다음과 같았다.
생명존중 교육의 5가지 수칙
1. 나는 소중해요
2. 모두가 소중해요
3. 마음을 표현해요
4.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요
5. 도움을 요청해요.
그때 아이는 가슴으로 새겼고, 나는 머리로만 입력시킨 뒤 망각했다 생각하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고양이들을 못 봤을 때는 왜 '마음을 표현하고,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은거냐'라고 물었더니 '그렇게 했지만 엄마가 못 들은 거라고, 내 말을 듣지 않는 거 같아 더 큰 소리로 알렸지만 엄마는 화를 내었다'고 덤덤히 말했다.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당장 땅 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코마 상태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나의 뇌를 겨우 추스르고 아이에게 고백했다.
미안하다고, 제대로 듣지않아 미안하고, 화를 내서 미안하고, 무지해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초등학교 졸업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 배운 걸 잊은 거 같다고. 기억 세포도 시들어서 지난주 배운 것도 까먹는다고. 네가 내 선생님이 되어서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걸 다시 가르쳐 달라고.
아이는 본인은 학교에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니라고 했다.
영화에서 보면 사부님이나 캡틴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출근 안 하고도 가르친다고 하니 곰곰이 생각한 후 캡틴으로 불리는 것이 조금 더 낫겠다고 했다.
나는 숙고 끝에 제자로 받아들여준 것에 감사를 표한 뒤, 캡틴과 궤를 같이 하고자 그 옆에 공손히 서서 굵고 세찬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