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진 Aug 21. 2019

혼자였던 까미노, 안온한 작은 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열아홉째 날, Villadangos del Páramo



7시 30분, 혼자 출발!

    여섯 시 정각, 눈은 떠졌는데 오늘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 갈까 말까 수십 번을 고민하다가 몸을 일으켜 지영이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지영아 너 오늘 출발 안 할 거지?"

".. 응.."


일단 준비는 마쳤는데.. 여전히 고민이다. 갈까, 말까. 잠에 취해있는 지영이에게 출발한다는 인사만 세 번을 했다.


그래, 오늘은 레온을 떠나야지. 나는 감기 기운이 있는 지영이의 머리맡에 감기약 하나를 남겨두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오늘 우린 처음으로 완전히 다른 마을에서 묵게 됐다. 산토도밍고 때처럼 다시 만날 것 같진 않았다.


Adiós León~!


동상의 발 한 번 스윽~ 만져주고


KM 300 돌파!


산 마르코스 광장의 순례자 상


나 이거 반지의 제왕에서 봤어!


Basílica de la Virgen del Camino. 성모 발현의 전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Iglesia de Santa Engracia. 독특한 모양의 종탑이 특징인 성당


한옥의 기와 같다.



한적한 마을을 지나 120번 도로를 따라 쭉 걸었다.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 Villadangos del Páramo 바로 전 마을까지 왔는데 갈림길이 나왔다. 표지판을 뚫어지게 봐도 어디로 가라는 건지 헷갈렸는데, 한참을 같이 서 있던 순례자 가족이 이리로 오라고 손짓해줘서 그들을 따라갔다.


아몬드 꽃처럼 생겼다.


오후 한 시, 도착한 알베르게의 색감이 너무 예쁘다. 20여 년 전 다녀간 수련회장에 다시 찾아온 것처럼 처음 와본 이곳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나는 4인이 한 공간인 방을 배정받았는데 빨래를 널고 오니 캘리포니아에서 온 캐런이 옆 침대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캐런과는 까리온 저녁식사 때 얼굴을 익힌 적 있다.


Albergue Municipal de Villadangos del Páramo. 숙박 7€.


잔디밭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혼자 걸었던 오늘의 순간들을 되짚어보면서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좋은 날씨에 좋은 경치까지. 숙소에만 있기엔 아까운 날이었다.


어릴 때 끼고 살았던 만화책 '그리스 로마 신화'에 그려진 구름 같다. 당장이라도 저 구름 뒤에서 헤라가 나타날 것 같아!


실제로 보면 구름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는데 사진으로 담으니까 그 느낌이 살지 않네..



오늘 저녁은 지영이가 챙겨준 특전식량과 레온에서 산 짜파게티를 먹었다. 레온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지영이는 내일 아스토르가로 갈 거라고 했다. 당연히 버스를 타는 줄 알았는데, 걸어서 간단다. 아니 4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15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니 캐런이 휴게실 책상에서 무언갈 적고 있었다. 동키 서비스를 신청하는 중이라고 한다.

동키 서비스는 원하는 지역으로 짐을 옮겨주는 운송 서비스다. 동키라고 진짜 당나귀가 배달하는 건 아니고 배달 차에 짐을 실어 옮기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당나귀와 함께 걷고 있는 순례자를 본 적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당나귀와 함께 피레네 산맥을 넘는 여행 패키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덧 취침 시간이 되어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갔다. 한창 칫솔질을 할 때 앳돼 보이는 친구가 들어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던 폴란드 가족 중 한 명이다.


"너 한국인이구나! 그럼 BTS 알겠네? 내 친구 중에 BTS 팬이 있어~"

"한국이 스타크래프트 잘하잖아. 너도 스타크래프트 관심 있어?"

"얼마 전에 한국이 축구 이겼잖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유창한 영어로 빠르게 말하는 이 아이의 질문에 입안 가득 치약거품을 문 채 대답을 했다. 나는 사실 이 친구와의 대화에 조금 진이 빠졌다. 적당히 대답하고 적당히 질문했는데 이내 지쳐버렸지.. 더 대화하고 싶기는 한데 무슨 얘길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대화에 틈이 생겼을 때 양치를 마쳐야 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지었는데 다시 돌아와 내 이름을 묻는 마이클이 귀여웠다. 다음에 또 만나게 되면 좀 더 다가가 봐야지!




07.07.18 비야당고스델파라모에서

이전 14화 순례길에 가져갈 10가지 다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