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스물일곱째 날, O Cebreiro
일요일 아침에 문을 연 제과점 발견! 꽃들도 너무 예쁘고 빵 맛도 좋았다. 핀 가격도 싸서 1유로를 주고 하나 구입했다. 이제부턴 슬슬 기념품을 모아야 할 때.
역시 나는 산을 타는 게 좋다.
땀이 나는 것도 좋다. 이 상쾌함.
나는 이 상쾌함이 늘 좋았다.
한참을 땀 흘려 걷다 허리를 곧추 세웠을 때.
뭉쳐있는 어깨를 한 바퀴 돌리고
시계방향, 반시계 방향 목 스트레칭을 했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해지는 이 기분이 참 좋다. 15/07/18
가방을 미리 보내 놓은 게 오늘 여정에 큰 도움이 됐다. 고도 1330m로 꽤 높은 산임에도 어깨에 중압감이 없으니 평소보다 더 여유롭게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여섯 시간을 걸어 도착한 마을 오 세브레이로. 곳곳에 'Pulpo'라는 글씨와 함께 문어 그림이 그려진 레스토랑이 많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문어요리 뿔뽀! 마을 Melide가 문어 요리로 유명하다던데,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순례길이 끝나기 전에 한 번은 먹어봐야겠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는 마을 제일 안쪽에 위치해있었다. 공립 알베르게로 나란히.. 붙어있는 침대를 배정받았다. 너무 웃겨ㅋㅋㅋㅋ 이런 곳은 또 처음이다.
세탁실의 건조기가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이 날씨에 자연건조를 기대하기는 무리지.
우리가 도착할 때쯤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오 세브레이로의 하늘은 지금 우르르 쾅쾅 천둥을 뿜어내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을 갖고 배낭을 맡아준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따뜻한 수프와 스테이크, 디저트로는 메이플 시럽이 뿌려진 치즈를 시켰다.
으슬으슬 추워지는 몸을 감싸며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는데, 환기에 문제가 있는지 뿌연 연기가 주방을 뒤덮기도 했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정전도되고 아주 난리였다. 다이나믹했다.
식사를 마치고 지영이와 나는 식당 근처 마트로 갔다. 우의를 챙겨 오길 잘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을에 둘러쳐진 돌담을 짚고 계단을 내려가야 나오는 마트. 끼익-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 마트엔 담배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전등 두어 개와 냉장식품을 진열해둔 쇼케이스 그리고 티비 속 불빛만이 이곳을 밝히고 있었다. 가게 주인과 함께 축구 경기를 보던 중년의 남자들이 우리를 힐끗 보고는 다시 티비 속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분위기는 참 묘한데 진열된 상품들을 보면 여느 마트와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어두침침한 가게를 둘러보던 중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쏟아지는 빗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뚝뚝 떨어지는 빗물과 함께 우리와 같은 판초우의를 뒤집어쓴 세명의 순례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을 보고 우리 둘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여기 정말.. 해리포터 속 한 장면 같아! 호그스미드에 있는 가게들 중 한 곳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장악한 호그스미드. 당장이라도 디멘터를 마주칠 것 같단 말이지!
15.07.18 오세브레이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