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장롱

by 하린

나는 외할머니가 좀 무서웠다.

어릴 땐 그랬다.

친할머니는 나를 예뻐했지만,

외갓집만 가면 외할머니는

왜 그렇게 서준이랑 나를 구박하셨는지.

어린 나는 몰랐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 엄마가 시집살이로 고생을 많이 하니,

외할머니는 딸이 안쓰러워

우리까지도 미웠던 것 같다고.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가 무서웠다.

조용히 있어도 혼나고,

뭘 해도 눈치 보이고.

그렇게 외갓집은 따뜻한 곳이 아니라

늘 긴장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아빠가 돌아가시고,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외할머니는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19살.

나는 학교를 마치고 취업을 했다.

엄마를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하고 싶었다.

내입에 풀칠하고, 집에 보태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간식도 사 드리고

가끔은 용돈도 드렸다.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뭐 해드리고 싶을 땐

“다은아, 우리 반반하자” 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군소리 안 하고 냈다.

엄마가 외가 식구들 앞에서

“다은이하고 내하고 반반했다”라고 말하면

기가 좀 살아 보였다.


외할머니도 그게 좋았던 것 같다.

손주들 중에서

그렇게 자라서

엄마랑 짝이 되어 뭘 해드리는 건

내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외할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정말 예뻐하셨다.

그전의 무서움은

점점 사라졌다.


내가 32살이 되던 해 봄.

휴가를 내어 대구집에 내려갔고,

때마침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머무르고 계셨다.

그즈음 할머니는 큰 이모네, 셋째 이모네, 막내이모네를 돌며

각 집에서 딸들과 한바탕씩 싸우고 오셨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도 엄마랑 조닥조닥하셨고

엄마와 이모들끼리

“할마시 죽을 때가 돼 가꼬 딸들한테 정을 뗄라고 용을 쓴다”

하시며 다들 외할머니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때 외할머니가

너무 작고 약해져 있는 게

마음이 아팠다.


밤마다 잠을 못 주무시고,

다리가 쑤신다 하시던 외할머니.


나는 손이 작은데

외할머니의 종아리를 잡았는데

한 손에 다 잡혔다.

그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냥 계속 주물러드렸다.

팔 아프다고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뭐 이거 좀 주무른다고 내가 죽나” 하면서

계속 주물러드렸다.

외할머니는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 밤,

우린 참 많은 얘기를 나눴다.


외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다은아. 니 시집가면…

할매가 농 한 개 해줄까?”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할매, 요즘 누가 농 쓰노.

다 아파트에 행거나 시스템 옷장 짜서 맞춰놓지.”


외할머니는 꺄르르 웃으시면서

“니는 꼭 농 써야 된다.

할매가 농 해주고 싶어서 칸다.” 하셨다.


그 말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날 밤 내게 “농 해준다”는 말은

그 어떤 보석보다 귀한 약속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자랑하고 싶었다.

외할머니가 나한테는 장롱을 해준다고 했다.

언젠가 내 신혼집엔, 외할머니가 사주는 장롱이 꼭 들어올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나는 너무 귀엽고 고마웠다.

그렇게 작고, 그렇게 약해진 할머니가

조그만 쌈짓돈을 모아서 내 시집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너무 따뜻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다른 손주들한테도 장롱을 해주겠다는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밤,

그 말은 나한테만 살짝 내려준 비밀 약속 같았다.


그게, 너무 좋았다.


그런데 그해 가을,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토요일 밤이었다.

나는 금요일에 전화를 드리려다

잠깐 일이 생겨

“내일 하지 뭐…” 하고 넘겼다.

그 ‘내일’은 오지 않았다.


서울에서 거창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

나는

외할머니 영정을 떠올리며

미친 사람처럼 울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영정을 보고 또 울고,

엄마와 이모들은

다섯 살, 일곱 살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외할머니 영정사진 앞에서 엉엉 아이처럼 울었다.


작은삼촌 큰 숙모, 고모들도 와서

눈물과 웃음을 섞어가며 위로를 나눴다.


서준이가 운전해 집에 돌아오는 차 안.

나는 또 울었다.

외할머니가 해주신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할매, 내 장롱 해준다고 했잖아…

장롱 해준다고 해놓고 왜 죽었노…”


2시간 내내

나는 그렇게

‘못 받은 장롱’이 아니라

‘받기로 했던 그 약속’만 계속 생각났다.


나는 지금도

그 장롱을 기다린다.

실물이 아니더라도,

외할머니가 주고 간 그 말, 그 마음이

아직도 내 마음 안에

장롱처럼 서 있다.

묵직하고, 나무 냄새나고,

정든 손길이 닿아 있는

장롱 하나.


그게

내가 외할머니에게 받은

세상에서 제일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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