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다음에 또 갈 것이다.

by 하린

우리 집엔 일기를 읽는 문화가 있었다.

내가 쓴 일기, 서준이가 쓴 일기,

그걸 엄마랑 아빠가 나란히 앉아서 소리 내어 읽었다.

읽으면서 웃고, 놀리고, 낄낄대고,

그게 참 자주 있던 일이었다.


서준이는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썼다.

“아빠, 엄마하고 누나야하고 우방랜드에 놀러 갔다.

아빠랑 탬버린을 탔다. 다음에 또 갈 것이다.”

그 문장은 마치 마침표가 아니라 선언 같았다.

“또 갈 것이다. “ ”또 먹을 것이다. “ ”또 읽을 것이다. “

서준이 일기의 끝은 항상 끝은 그렇게 예언처럼 마무리됐다.


반면 나는 그날을 길게 써냈다.

“아빠, 엄마, 서준이랑 우방랜드에 놀러 갔다.

놀이공원에 도착했는데 외삼촌이랑 외숙모, 유건이 오빠야, 수아가 먼저 와서 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같이 놀았다.

물배도 타고, 회전목마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범퍼카도 탔다.

저녁이 되니까 수아랑 외삼촌, 외숙모는 집에 갔다.

유건이 오빠야는 놀이기구 더 타고 싶다 캐서

우리랑 좀 더 놀았다.

아빠랑 탬버린을 탔는데

내가 떨어질까 봐 아빠가 나를 꼭 끌어안다가

아빠랑 같이 떨어졌다.

그리고 외갓집에 가서 옥상에서 고기를 꾸워 먹었다.

진짜 꿀맛이었다.

아빠, 열심히 돈 벌어서 우방랜드에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는 내 일기를 다 읽고는

“아이고~ 우리 다은이는 일기도 참 잘 쓴다.” 하면서 웃었고,

곧바로 서준이 일기를 꺼내

“다음에 또 갈 것이다~”를 따라 하면서

아빠랑 둘이 눈 맞추고 낄낄댔다.


서준이는 “왜 누나야는 안 놀리고 내만 놀리는데!!” 하며 성질을 부리다가,

아빠가 조용히 무섭게 눈을 뜨고 바라보는 걸 보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 모습까지도 포함해서,

그게 우리 집의 따뜻한 저녁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기들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었다.

엄마 아빠가 우리 글을 읽으며 웃고,

그 웃음 사이에 우리가 자랐다.


누군가는 짧고 단순하게,

누군가는 길고 서사적으로,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남기던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때 그 문장을 기억한다.

“다음에 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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