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이는 태권도장을 정말 좋아했다.
하얗고 빳빳하게 다려진 도복도 멋있었지만,
도장에 가면 매트도 있고, 송판도 깨고,
형아들도 많고, 무엇보다 무술을 배우니까.
무술!
자기 힘이 세지고 있다는 생각이
그 어린 마음에 얼마나 벅찼을까.
태권도장을 하루 다녀오면
마치 게임처럼 레벨업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란 띠, 초록 띠, 파란 띠…
그리고 어느 날, 빨간 띠.
서준이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도장을 다녀오고,
집에만 오면 누나한테 품새 연습을 하고,
발차기를 날리다 누나를 울리고,
결국 아빠한테 혼나고,
기합 받고, 또 울고…
그런데도 다음 날 다시 태권도장.
서준이는 태권도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다.
빨간 띠를 따고 기세가 등등하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 다음은 ‘품띠’, 어린이용 검은띠다.
서준이는 자기가 무적인 줄 알았다.
작고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도복을 입고, 허리에 빨간 띠를 맨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줄 알았던 거다.
동네 애들은 서준이를 좀 무시했다.
작고 말랐고, 늘 장난을 심하게 치니
그냥 귀찮은 애쯤으로 봤을 것이다.
서준이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더 괴롭히고, 더 까불고, 더 날뛰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복을 입고 빨간 띠를 매자
그 순간만큼은 진짜 태권아가, 아니 태권소년이었다.
도장에서 수업을 마치고,
서준이는 그날도 도복을 입은 채 집으로 걸어왔다.
그런데 멀리서 동네 남자애들 세 명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고, 평소에 무서워하던 애들.
서준이는 태권도자 자세를 잡고
빨간 띠를 허리에 꽉 조인 채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애들이 자신을 보더니
자기를 휙 돌아 피해 갔다.
그 장면을 서준이는
진짜로 ‘기세로 이겼다’고 믿었다.
집에 오자마자 신나서 엄마를 찾았다.
“엄마! 엄마!! 내가 빨간 띠를 땄잖아~
근데 있잖아, 아까 동네 형아야들 세명 있잖아~
내 맨날 괴롭히고 놀리던 형아야들 있잖아,
내가 태권도복 입고 빨간 띠 메고 오니까
내 앞에 딱 와서 딱! 보디만
무서워가꼬~!
빙~ 돌아서 피해 갔다 아이가~
무서워서~ 삥~ 돌아갔다~ 어?”
서준이는 흥분해서 손짓발짓 다 쓰며 재연을 했다.
엄마는 웃음을 꾹 참으면서 물었다.
“진짜로? 서준이 무서워서 돌아갔다꼬?”
“응! 내가 봤다~ 진짜로~
형아야들이 원래 딱 이쪽으로 오다가,
내 도복 보자마자 눈 딱 마주치고,
딱!! 돌아갔다니까~”
엄마는 속으로 생각했다.
걔네들 그냥 놀이터 가기 싫어서 길 바꾼 걸 수도 있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일찍 집에 가는 걸 수도 있는데…
하지만 서준이의 그 자신만만한 얼굴,
그 빨간 띠에 담긴 말도 안 되는 자부심,
그게 너무 귀엽고 웃겼다.
그날 이후로 서준이는 스스로를 무적의 전사로 칭했다.
누나한테는
“이제 내 빨간 띠대이~ 까불지 마래이~”
하고 더 달라들었고,
당연히 또 아빠한테 혼나고 울고…
엄마 아빠는 그 작고 왜소한 아이가
태권도 하나 배웠다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줄 알고
“내 앞에선 아무도 못 덤빈다”
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 반, 걱정 반, 귀여움 한가득으로 바라봤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조그맣던 서준이의 그 허세와 자부심은
너무 귀엽고,
너무 짠하고,
너무 서준이 같았다.
태권도는…
서준이에게 있어,
작은 몸 대신
커다란 마음을 만들어준 무기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