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었던 그 밤
남편과의 대화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니, 결혼식 전날 밤이 생각났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던 그 밤.
완벽하고 싶었던 덜렁이의 면모가 보인 그 밤.
남편과 앞으로의 생활에 예고편 같았던 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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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개월 정도 준비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모아놓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준비 기간을 길게 잡았다.
결혼식은 웨딩 박람회를 갔다가 플래너와 덜컥 계약을 했다.
플래너는 결혼식장을 잡아 놓고 오라고 했고, 그 박람회에서 결혼식장까지 덜컥 예약을 했다.
비용이 저렴한 비수기에 하고 싶었고, 이리저리 따지다가 3월 18일로 우리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졌다.
물론 예약을 할 뿐이었지만, 결혼식장에 답사를 갔을 때 마음에 덜어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지금도 여러 곳 알아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용적인 부분이 걸려서 소규모 웨딩을 하고 싶었는데, 결혼식장이 아닌 곳에서 하는 것이 그리 저렴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 집안 상황 상 너무 작게는 할 수 없었다.
그러면에서는 박람회를 이용하고 플래너와 계약한 것이 나는 괜찮다고 본다.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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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은 집 주변이 아닌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장소로 정해졌다.
지인들은 집 근처에 많지만, 지인 외에는 결혼식장이 더 가까울 수도 있었다.
우리는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신혼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왔다 신혼여행을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당일에는 새벽같이 움직여야 했다.
(해본 분들은 알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메이크업받는 장소 근처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계획을 한 것에 매우 뿌듯했다.
매우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전부터 신혼여행, 결혼식 짐을 싸놓고 수시로 점검했다.
결혼식 전날 몸과 가방만 챙겨 나가면 되었다.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무엇을 가져가면 되냐고 남편이 물었다.
우리는 미리 살림을 합쳤기에 그동안 내가 가방을 준비하는 것을 남편은 옆에서 보아왔다.
그런데 나에게 무엇을 가져가면 되냐고 묻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걸 왜 물어? 딱 보면 알 거 아냐."
나는 한껏 예민해져 이렇게 대답했다.
날카로운 나의 말투에 이날 남편도 화가 났다.
그냥 말해주면 되지 왜 그렇게 말을 하냐고.
이런 상황은 결혼초에 비일비재하게 있었다.
5년 차쯤 돼서야 나는 남편이 알아서 챙기길 바라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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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을 먹고 느긋이 쉬다가 일찍 잠들려고 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액자에 껴 놓으려고 했던 작은 사진들을 놓고 온 것을 그제야 알았다.
빠짐없이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속상했다.
그리고 또 함께 준비하지 않고, 어떤 것을 가져가야 할지 물은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남편은 본인이 가져오겠다며 왕복 두 시간 거리를 택시 타고 갔다.
메이크샵으로 남편 친구가 데리러 오기로 했고, 그 친구가 공항에도 데려다 주기로 해서
차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가져온 남편을 토닥이고 일찍 잠에 들었다.
피곤했는지 남편은 금방 잠이 들었다.
긴장했는지 나는 금방 잠이 들지 못했다.
뒤척이다가 문득 식장 앞에 놓을 큰 액자가 생각났다.
맙소사.... 그것도 놓고 온 것이다...
그걸 잊은 나를 원망하고, 집에 들렀을 때 챙기지 않은 남편도 조금 원망했다.
잠시 고민했다.
없이 진행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인 결혼식을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결국 잠든 남편 몰래 나와서 택시를 타고 왕복 두 시간 거리를 다녀왔다.
12시를 넘겨 숙소로 돌아왔다.
안도감,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미리 짐을 싸며 준비했는데, 나의 덜렁거림에 자책했다.
(그리고 남편 욕을 조금 했다.)
결국 거의 잠들지 못하고 새벽 5시에 숙소를 나섰다.
다행히 다크서클은 메이크업으로 아주 잘~ 커버해 주셨다.
우역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그날은 내가 공주님이 된 날이었다.
한번 더 하면 그땐 완벽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