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21. 2022

잘 보내주는 것도 내 몫

안녕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소중하게. 

얼마 남지 않은 연우와의 시간을 

눈물 대신 최대한 행복하게,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남편도 나도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연우의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자마자 

남편은 회사에 가족 돌봄휴가, 무급휴가를 내고

남은 두 달 가량을 함께 해왔다.

이제 보름 정도 남았을까.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두려웠지만

부모인 내가 

아이의 마지막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해내야 했다. 


나는 아이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연명치료가 중단을 결정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내 손으로 이런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팠지만 

이런 준비도 할 수 없이 

아픈 아이를 하루아침에 떠나보내야 했던 

엄마들의 사연을 많이 들어왔기에

지금 이 시간이 주어졌음에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4년 동안 아이를 잘 돌보려고 노력한 만큼,

이제는 아이를 잘 보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였다.


아이를 잘 돌보는 것만큼이나

아이를 잘 보내주는 것.


이 역시,

아픈 아이를 키우는 내가 기꺼이 해내야 할 내 몫이었다.

나는 먼저 연우가 떠날 때 입을 옷과 신발을 주문했다. 

연우의 마지막 날 입을 옷. 

내 손으로 준비하는 이 상황이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 연우가 가장 예뻐 보일 수 있는 옷을

고르는데 여념이 없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딸바보 엄마였다.

신발은 연우의 발이 불편하지 않도록 수제화로 주문했다.

걸을 일이 없어 한 번도 신어본 적 없는  

연우의 처음이자 마지막 신발. 

아직 신발 신는 법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엄마 없는 그곳에서 행여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끈이 없는 신발로, 

우리 연우와 잘 어울리는 예쁜 신발로 골랐다. 

마지막 순간에도 누워있을 연우를 위해 새 베개도 장만했다. 

아무리 베개를 빨아도 오래 쓴 흔적이 물들어 있어

새하얗게 깨끗한 베개에 눕혀 보내주고 싶었다. 

연우를 임신했을 때 산모교실에서 내가 만든 딸랑이, 

친정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아기 담요. 

생애 첫 생일파티 때 찍은 사진까지, 

깨끗한 봉투에 하나하나 담아 

연우의 마지막을 위해 마련한 상자 속에

조금이라도 구겨지거나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어린아이의 장례는 빈소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

영안실에서 아이의 시신을 안치하고 

사망선고 후 24시간이 지나면 

시신을 양도받아 화장터로 이동할 수 있었다. 

대략적인 절차에 대해 설명을 들었지만

아이의 장례는 처음이라서 

남편과 나는 어디서부터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연우의 연명치료 중단을 도와줄 의료팀에서는

아이의 유골함과 화장터 예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유골함을 어떻게 사지?

장례식장에서 사는 거 아닌가?


어리둥절해진 나는 '유골함' 세 글자를 검색해봤다.

생각보다 결과가 많이 나왔다. 

반려견 유골함부터, 자개무늬, 금으로 된 화려한 유골함까지.

유골함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세상이라니,

기가 찼다. 

그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연우의 유골함을 골랐다.

내 아이의 유골함인데, 그걸 또 가장 예쁜 걸로 고르겠다고

신중을 기하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닫고는 나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그래도 아이를 끝가지 잘 보내주는 것도 내 몫이라면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 

더없이 예쁘고 귀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뒤져본 끝에 

하얀 나비 모양이 올라간 유골함을 골라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나와 남편은 지금 서로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 잘 알았기에

울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울면 당신도 울 테니까. 

우리 연우처럼 예쁜 나비. 

남편도 나처럼 

연우의 마지막을 예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업체에 전화를 걸어 아이를 위한 작은 유골함이 필요하다 했다. 

자식의 유골함을 주문하는 엄마를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조금 망설이며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이 유골함을 주문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그녀의 위로에

마음 한쪽이 아렸다.


유골함에 넣을 이름과 날짜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친절한 안내를 받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이의 사망일을 내손으로 적으려니 

여태 꾹 눌러왔던 감정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이연우

2018년 11월 17일

2022년 5월 17일


'너무 짧다.'


글자로 적어놓고 보니, 

정말 너무 짧았다. 


'고작 4년인데, 태어난 지 이제 겨우 4년인데'


너무 아깝고 아까운 내 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내가 적어놓은 세 줄짜리 문자를 보고

울고 또 울었다.

울 시간도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장례 준비를 위한 쇼핑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빈소가 없으니 장례식장에서 빌려주는 상복도 없을 터. 

아이의 입관과 화장까지, 

남편과 내가 입을 옷을 마련해야 했다. 

너무 과한 상복도 아니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옷. 

남편과 나는 당황스러웠다. 

상복까지 우리 손으로 준비해야 하는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우리는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주문해

새벽 배송으로 받는 어이없는 경험을 했다. 


상복을 새벽 배송으로 주문하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모든 상황이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졌다.

화장터는 몇 시부터 예약이 가능한지, 

입관식을 하고 싶은데 

어린아이의 상을 맡는 상조회사가 따로 있는지,

어느 하나, 누구 하나 알려주지 않았고

그 유명한 검색 포털에 

'아이 장례' '아이 죽음'을 수없이 검색해봐도 

반려동물 장례식만 나올 뿐이었다. 


아이와 붙어만 있어도 아쉽고 모자란 시간에

준비할 건 왜 이렇게 많은지 

연우와의 이별을 하루 앞두고도 나는 다림질을 하고 있었다.

하얀 연우 얼굴과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 

분홍색 원피스. 

이 예쁜 옷을 입고 연우가 우리 곁을 떠난다니.

아이가 떠날 때 입을 옷을 내 손으로 준비하고 있구나,

맘이 좋지 않아 당장으로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이가 꾸깃한 옷을 입고 누워 마지막 인사를 나눌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참고 이역시 해내야 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문득 드는 생각에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원망스럽다가도,

아이를 잘 보내주기 위해 

'그래 어차피 연우를 위해 보내줘야 한다면,

내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준비할 수 있는게 나아'

라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위로했다.


'내 몫이니까, 여태껏 아이를 정성껏 돌봐온 그 마음으로

아이의 마지막 길까지 내가 잘 만들어주자. 

연우가 조금도 무섭지 않게, 

언제나처럼 예쁜 모습으로,

고통 없는 곳으로, 사랑으로 보내주자.'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이번에는 내가 입을 상복을 다리미판 위에 올렸다.

이전 22화 뜨거운 안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