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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21. 2022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연우가 힘들지 않게.

연우가 무섭지 않게.


우리 부부는 연우를 보내주는 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했다. 

연우를 위해 어렵게 내린 결정인만큼

연우가 떠나는 그 순간 슬프거나 두렵지 않도록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나는 

연우의 이 죽음을 나의 이별로 만들지 않겠다,

다짐했다. 

내가 연우와 이별하는 것이 힘들어 

내 감정만 앞세우고 

울고 슬퍼하며 연우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연우 인생의 마무리니까. 

태어나던 날, 연우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아빠의 포옹도, 엄마의 다정한 인사도, 

가족들의 축하도 없었다. 

때문에 마지막만큼은 

우리 연우가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플라워 케이터링 업체를 알아봤다. 

프러포즈 세트라고 

꽃길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했다.

남편이 무급 휴직 중이 우리 형편에

조금 무리가 되는 금액이었지만, 

연우의 마지막 떠나는 길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꽃길 장식을 하기로 했다. 

연우가 인공호흡기를 뗄 때 누워있을 침대부터

현관까지,

오직 연우만을 위한 꽃길을 만들었다. 

귀여운 풍선을 침대 머리맡에 달아놓고, 

연우가 마지막 순간에 꼭 이리 예쁜 것들만 보고 떠나기를 바랐다. 


엄마 아빠에게 오던 날 제대로 축하받지 못했지만

떠나는 길은 예쁜 꽃길 사이로 행복하게 지나가기를.


의료진이 집으로 오기 전 미리 준비해둔 꽃길을 

행여 잘못 건드리기라도 할까 

남편과 나는 이날 하루 종일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집안을 걸어 다녔다. 

의료진이 미리 알려준 시간에 맞춰

연우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깊게 잘 수 있는 약을 먹였다.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시간에 맞춰

몇 시간 전에, 그리고 다시 몇 시간 전에 

어떻게 약을 투약해야 하는지 의료진에게 설명을 들었었다.

우린 메모해둔 종이를 읽고 또 읽으며 

조금의 실수도 없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지막 떠나는 길에 

연우가 깨끗하고 예쁜 모습으로 떠날 수 있게

아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만져보는 내 아이의 몸. 

손가락 사이사이, 작고 귀여운 귀, 앙증맞은 발까지. 

금방 부서질 것 같은 아이의 몸이 

지금 이 순간 너무 아깝고 너무 애틋해서, 

비누칠 한 곳을 또 하고 또 문지르고. 

다시 한번 만져보며 

이제는 이 몸을 더는 만져보지 못할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뽀얗고 예쁜 얼굴, 

머리를 빗겨주고 머리띠를 씌워주었다. 

미리 준비해둔 원피스를 입히며 

딸을 시집보내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떠나보내려고 꽃단장을 시키는 엄마라니.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죄스러웠지만 

우리는 약속했으니까. 


마지막까지 울지 않기로. 

잘 보내주기로. 

연우의 해방을 축하해주기로. 


연우가 막 단장을 마쳤을 때 간호사가 먼저 도착했고

잠시 후 담당교수도 차례대로 도착했다. 

연우를 꽃으로 장식해둔 침대 위에 눕혔다.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꽃향기가 

마치 우리 연우한테서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쁜 꽃들 사이에 누워있는 우리 연우.

정말 곱고 예뻤다. 

담당의사는 마지막으로 연우의 상태를 확인하고 

우리와 필요한 서류를 작성한 뒤에 

연우의 호흡기를 떼주었다. 


남편과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연우가 뱃속에 있을 때 늘 듣던 노래들을 틀어두고

연우의 손을 잡고 뺨에 키스를 해주며

사랑한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고백했다.

그리고 제발 우리 연우가 이제는 편해질 수 있기를 기도했다.

둥그런 꽃장식 사이에 누워있는 연우,

연우는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너무 예쁜 모습이었다.


이내 연우의 호흡이 끊어졌을 때,

나는 연우의 볼에 내 볼을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연우 귓가에 노래를 속삭였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듣지 못하는 아이는 진동으로 소리를 느낀다고 한다.

나는 연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연우의 손을 내 목에 갖다 대고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하지만 이 노래의 끝에 가서는 

늘 목이 메어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언젠가 엄마의 노래를 끝까지 들려줄게.

울지 않고 끝까지 불러볼게."

아이에게 약속했었다. 


그리고 연우가 떠나는 그 순간

나는 곡을 온전히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울지 않으려고 꾹 참으며 

마지막 한 글자까지 연우 귓가에 또박또박 불러줬다. 

내 마음을 담아.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언제나처럼 늘 사랑해 연우야. 이젠 안녕,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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