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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21. 2022

순간이 영원하기를 1

순간이 영원하기를

간병은 참 어려웠다.

간병은 참 외로운 일이었다. 


아이를 위한 의료처치들을 배워야 했고, 

위기의 순간에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을 찾아

지체없이 해내야 했다. 

내 손끝에 내 아이의 목숨이 달렸다는 걸 느끼며

이대로 아이를 잃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손이 떨리고, 땀이 흐르고 머릿속이 멍해져도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을 해내야 한다. 

24시간 간병은 체력적으로도 꽤 부담이 되는 일이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교대를 하고 

하루 서너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 

다시 밤새 아이 옆에 앉아 석션을 하고, 수유를 한다. 

새벽 6시, 정해진 약시간에 맞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사기에 물약을, 

이유식 통에는 따뜻한 물에 녹인 가루약들을 가지고

아이 옆에 앉아 스탠드 불을 켜면

오늘인지, 어제인지, 밤인지, 아침인지, 

하루의 구분도, 시간의 구분도 없는 

연장선 위에 올라타있는 기분이었다. 


밤잠을 못자고, 외출을 못하고, 

모든 신경을 아이 스케줄에만 맞추니 

외모에는 신경을 못쓰고,

하루아침에 행복했던 예비엄마에서 간병인이 되고는

약없이는 단 몇시간의 잠도 잘 수 없는 

심각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괜히 내 눈치 보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너무 눈치 없이 굴면 속상하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내 삶을 다 모르고 하는 소리같고,

적당히 괜찮다고 해야 하는데, 

괜찮지 않아서 괜찮다고 말하기 싫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 복잡하니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당연히 어려워졌다. 

나만 어두운 그늘 속을 혼자 걷고 있는 기분.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이 길을 막연히 가고 있는 기분. 


간병은 나를 참 외롭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왜 몰랐을까. 

시간이 지나고 연우가 내 곁에 없으면 

그 시간이 가장 그리워질 거라는 걸. 

누군가의 말처럼 그늘 속만 걷다보니

햇살이 있는 것도, 나뭇잎이 푸른 것도 보지 못하였다. 

그 어두운 날들에도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찰나들이 있었음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는 연우의 손을 잡는 걸 아주 좋아했다. 

공황장애가 심해져 혼자 집에 가만히 있다가도 

알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오면 숨이 쉬기 어려워질 때

연우의 손 안에 내 검지 손가락을 넣고

작은 네개의 손가락을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린다. 

이때만큼은 왠지


"괜찮아요 엄마, 괜찮아요."


라고 연우가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져 

그 순간 모든 두려움도 불안도 금세 잊곤 했다. 

연우에겐 정해진 시간에 맞춰 줘야할 약도, 

환자식도 있었고, 

가래나 침이 흐르기 전에 석션도 해야했다. 

날짜에 맞춰 콧줄을 바꿔주거나 

기도 연결관을 갈아주기도,

욕창이 생기지 않게 제때 제때 기저귀도 갈아줘야했다. 

하지만 연우의 손을 잡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나는 모든 시간도, 해야할 일도 다 잊어버리고

그냥 이대로, 영영 이대로 머물고 싶었다. 

보드랍고 살짝 쫀득하고, 앙증맞은 연우의 손. 

그 손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싶었다. 

아이의 이 손이 너무 좋아서 

아이가 떠날 때 내 손가락 하나를 잘라서 

아이 손 안에 넣어주면 안될까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 사랑스러운 손을 잡고 

조잘대는 아이를 벅찬 눈으로 바라보며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놀이터에 가기도.

연우의 손을 잡은 나는 상상 속에서 

언제나 아이와 함께 행복한 순간 속을 거닐고 있었다.

그 작고 귀여운 손을 꼭 잡고서.

나는 연우의 어깨에 기대어 눕는 것도 좋아했다. 

아주 작고 여린 아이의 어깨. 

부서지기라도 할 것 같아서 차마 내 머리를 올리진 못하고,

어깨 옆에 슬그머니 내 머리를 밀어넣으며

연우 어깨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든다. 

연우 로션 냄새, 게워낸 환자식의 쿰쿰한 냄새, 

옷에서 나는 아기 세제 냄새. 

그 모든 것들은 늘 내 가슴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뭔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온전히 평온하고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 

한번만 이 아기를 마주 안아봤으면, 

연우가 내 품에 쏘옥하고 들어와 안겨봤으면.

나는 그런 상상들을 하다 이내 코끝이 찡해서 

훌쩍거리다가도 

다시 내 머리맡에 있는 

연우의 오똑한 코를 바라볼 때면

어쩜 이렇게 예쁠까 싶어

울적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이 순간이 그냥 영원했으면 좋겠다. 


매분마다 석션이 필요한 연우가 나에게 

이런 공상을 허락해주는 건 겨우 5분 남짓이다. 

금세 가래가 끓고 침이 흘러 불편해하는 

아이 옆에서 벌떡 일어나 

나는 얼른 석션을 위해 다시 간병인의 자리로 간다. 

그래도 그 잠시가 너무 달콤해서 

마치 중독된 것처럼,

틈만나면 나는 연우의 손을 잡고, 

연우의 옆으로 가서 눕고, 


"사랑해 연우야"

"우리 연우는 어쩜 이렇게 예쁠까"

"연우도 엄마를 사랑해?

엄마는 연우는 무지 사랑하는데."


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 순간이 영원했더라면. 

지금도 우리가 손을 잡고 나란히 누워있더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연우가 내 곁에 없는 지금, 

나는 매일 반복되던, 

나라는 존재는 전혀없고 간병인만 있던 그 삻이

너무 그립다. 


뽀얗고 보드라운 연우의 볼살도

맨날 똑같은 노래만 나오던 연우의 모빌 장난감도, 

깊은 잠에 빠진 연우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넌 지금 어디쯤 있니

라고 수없이 물업보던 그 날들도. 

너와 함께했던 수없이 많은 밤이, 

적막하고 외로웠던 우리의 낮이 

나는 너무 그립다. 

너와 나의 순간들이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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