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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21. 2022

하기 힘든 말

연우야 생일 축하해!


나는 이 말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우리 부부 둘 다 연우의 생일을 축하하지 못했다. 


2018. 11월 17일.

우리 연우가 태어난 날. 

그리고 우리 연우가 의식 없이 누워있기 시작한 날.


우리에게 연우의 생일은

마치 연우가 아프기 시작한 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도 나도, 

연우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픈 걸 축하한다는 말처럼 느껴져

연우의 100일에도, 200일에도, 

한 살 생일 때도, 그리고 마지막 생일에도.

축하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일이다. 

그래도 연우가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아프게 나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휩싸여, 

아이의 소중한 날을 제대로 축하해주지도 못했다. 

100일은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꾸며주어 사진으로 남겼고,

200일은 상차림은 해놓고 

정작 축하한다는 말은 해주지 못했다.

옷을 몇 번 갈아입고 사진까지 찍느라 고생한 탓일까,

며칠 후 연우는 고열로 입원했다.

그 이후로 남편과 나는 우리가 거창하게 뭘 하면

혹시 연우가 아프진 않을까 겁이나 

다가온 300일은 아주 소박하게 보냈다.

연우의 두 살, 세 살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연우는 먹지도 못하는 케이크를 사두고 

촛불을 불고 우리 부부 둘이 먹는 것이 

연우에게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 살 생일을 앞두고서야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

100일 때 차려주지 못했던 삼색나물과 떡을 준비하고

풍선을 불어 연우의 생일을 축하했다.  

콧줄로 유동식만 먹을 수 있는 연우에게

미역국을 끓여 국물만 넣어주기도 했다. 

아직 골절도 연명치료 중단 얘기도 나오지 않은 

훨씬 전이었건만 이때 나는 뭐에 쓰였는지 

이번만큼은 연우에게 꼭 생일파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는 정말로 이것이 

연우의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파티가 될 줄은 몰랐다. 

네 살의 생일이 연우의 마지막 생일이 될 줄,

그때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연우를 한껏 축하해주는 마음으로,

연우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지난 시간들을 좀 다르게 보내지 않았을까,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지난날들이 너무 후회스럽다.


시간을 돌려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가장 하기 힘들었던 말,

너무 늦어버려서 이제는 할 수 없는 그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아주 여러 번, 아주 큰 소리로.

 

"연우야 생일 축하해!

사랑하는 연우야, 널 만나서 정말 기뻐.

태어나줘서 고맙다. 내 딸 이연우."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맞은 연우의 100일
퇴원하고 집에서 꾸며준 200일
스튜디오 가서 가족사진을 찍고 소박하게 보낸 300일
두 살, 세 살 생일 모두 조용히 보내고 네 살이 되어서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본 생일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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