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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21. 2022

순간이 영원하기를 2

순간이 영원하기를

연우와의 이별 날짜가 정해지고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애가 탔다. 

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더는 볼 수 없다니, 

나는 아깝고 너무 아까워서 

매일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sns에 남겼다. 

애타는 심정도 몰라주고 

아이는 날이 갈수록 더 예뻐지고 있어 

남편과 나는 그런 아이 얼굴을 볼 때마다 


"너무 아깝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sns에서 연우 사진을 보고, 연우 이야기를 들은 많은 분들이

공감과 위로를 남겨주었다. 

그중에는 연우가 아주 아기일 때부터 옷을 주문해 입어온

sns 이웃이 있었는데 

어느 날 연우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분홍색 레이스의

드레스를 선물해주었다. 

나는 그동안 누워있는 연우가 불편해할 만한 옷들은 

절대 사거나 입히지 않았다. 

시원한 소재의 잠옷, 부드러운 옷감의 원피스, 

목에 있는 인공호흡기가 걸리지 않도록 

목에 단추가 달린 티셔츠,

억지로 팔을 들고 끼워 넣을 필요가 없는 블라우스.

그중 드레스는 연우가 입을 수 있는 옷의 조건에 

어느 하나 맞지 않았으므로 

나는 연우에게 드레스를 사줘 본 적이 없다. 

예고에 없던 택배상자를 받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을 때

정성스레 쓰인 손편지와 그 아래 분홍빛 드레스를 보고

나는 감사하고 기쁜 것과 동시에

한 번도 내가 연우에게 

이렇게 예쁜 드레스를 입혀줄 생각을 못했다는 사실에

너무 미안해져 할 말을 잃고 잠시 상자 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드레스 아래에는 분홍색 장미 꽃다발도 들어있었다.

정말 예뻤다. 

딱 연우 나이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공주 드레스. 

나는 왜 연우에게 이런 예쁜 드레스를 입혀줄 생각을 못했을까. 


미안함과 고마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지금은 울 시간도 없다. 

해가 막 넘어가기 직전인 오후 네시. 

우리 집은 이맘때 가장 햇살이 예쁘게 들어온다.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 남편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오빠! 얼른 가서 셔츠랑 재킷 입고 와요!

빨리~~ 나비넥타이도 하고!!"


이 시간에 갑자기 정장을 찾아 꺼내 입으라는 내 말에 

남편은 어리둥절했다. 


"정말로? 진짜 지금 입어?"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듯 두어 번 되묻더니 

자꾸 시간이 없다고 재촉하는 나의 등쌀에 못 이겨

입고 있던 반바지 위에 

결혼식 때 입었던 셔츠와 까만 재킷을 황급히 걸치고 나왔다. 

남편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도 바쁘게 움직였다. 

연우에게 드레스를 입히고, 머리를 묶어줬다. 

이제 뭘 해야 할까. 

나는 아빠와 딸, 남편과 연우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때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에서 봤던 

딸의 결혼식 장면이 떠올랐다. 

결혼식 말미에는 항상 아빠와 딸이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정말 멋진 문화라고 늘 생각해왔었다. 


그래 이거다!


휴대폰을 집어 들고 노래를 골라 틀었다. 


sometimes it's hard to be a woman 


드라마 ost로 더 유명해진 stand by your man,

이 노래가 남편과 우리 연우에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시키는 대로 옷은 입고 나왔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서서 멋쩍게 웃고 있는 남편에게

디렉션을 주기 시작했다. 


"연우한테 무릎 꿇고 앉아서 꽃다발을 주면서 

춤을 청하는 거야~"


어디서 주워본 듯한 장면들을 모두 끌어모아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이걸 정말 하라고?라는 표정으로 난감해하던 남편은

이내 침대에 누워있는 연우 옆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연우 손에 꽃다발을 쥐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반바지에 나비넥타이, 드레스를 입고 누워있는 아이. 

뭔가 조금 엉성하고 이상한 둘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는 음악을 계속 틀어두고, 

이번에는 연우를 안고 춤을 추라고 주문했다. 

남편은 이제야 내가 뭘 하려는지 알았다는 듯

조심스럽게 연우를 안아 들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너무 예뻐. 연우가 너무 예뻐. "


조금 전의 어색함과 민망함은 모두 사라지고 

남편의 두 눈에는 어떤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연우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사랑한다, 예쁘다. 

연신 고백하고 있었다. 

이 역시 우리에게 한 번뿐일 순간.

아무 표현 못하는 연우지만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는 꼭 그래 주길 바라며 둘을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 연우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우리 연우가 떠나지 않는다면, 

아빠와 딸이 이렇게 손잡고 춤추는 모습을 또 볼 수 있을 텐데.


이제 자기는 할 일을 다했다는 듯 하루를 넘어가는 햇살이 

우리 집 안으로 쏟아지고 

그 가운데 너무 사랑스러운 아빠와 딸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제발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이 순간이 이대로 멈춰버리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스탠~ 바이 유얼~~ 맨~~~


가사를 읊조리며 딸아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모습. 

내가 분만실에서 그토록 보고 싶던 모습. 

절대로 내 남편은 누려보지 못한 순간. 

잠시였던 그날 그 순간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꼈다.

연우야,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해주렴. 

너를 세상 가장 행복한 소녀로 만들어주고 싶었단다. 

사랑해, 너무 예쁜 우리 연우.

우리의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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