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wol Feb 23. 2024

재기재기 걸으멍 오르멍*

06. 운동




이름부터 잘 걸을 것만 같은 ‘만복(심은경 분)’은 선천적 멀미 증후군으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 그래서 왕복 4시간 거리를 오로지 본인의 다리를 이용해 집과 학교를 오간다. 그러다 우연히 ‘경보’라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걷기왕>이 있다. ‘만복’처럼 선천적 멀미 증후군도 재능도 없지만, 단순히 걷기가 좋아 매일 ‘만보’를 걷고 있다


의외로 하루 만보를 걷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90분 동안 5-6km 정도는 걸어야 만보를 채울 수 있다. 매일 집을 나서 순간부터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순간까지 무수히 걸었다고 생각하지만, 만보를 측정해 주는 앱은 한참 모자란 숫자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럴 때면 나만의 만보 채우기 미션에 돌입한다 


걷기 편한 복장으로 환복을 하고,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고 챕터 4 <산책> 편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나만의 코스에 발을 들인다. 머릿속 환기가 필요한 산책과는 다르게 만보 걷기는 머릿속 생각보다 몸에 집중하게 된다. 시선은전방을 주시하며 몸을 곧게 세우고 있는지, 팔은 자연스럽게 앞뒤로 흔들고 있는지, 발은 뒤꿈치부터 발바닥, 발가락 순으로 무리가 없이 움직이고 있는지. 그렇게 몸에 집중해서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삐질 새어 나오고 살짝 부는 바람에 시원함과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인만큼 귀차니즘으로 금방 그만둘 수도 있는 것도 걷기 운동이다. 나도 가끔(아니, 꽤 자주)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미루고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챌린지 앱의 도움을 받아 운동화 끈을 다시 고쳐 묶고 집을 나선다


사용하고 있는 금융권 앱에서는 일일 걸음 수에 따라 포인트로 보상하고 그렇게 받은 포인트로는 다양한 상품권으로 교환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외 챌린지 앱을 이용하면 어떤 코스로 어떻게 얼마나 걷고 있는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면서 따로 또 같이 걸을 수도 있다. 물론 이 앱도 적절한 보상이 따른다


인터벌 러닝 머신을 뛰거나 땀으로 흠뻑 젖을 수 있는 조금은 과격한 운동을 하지 않고 단순히 걷기만으로도 운동의 효과가 있다? 물론이다. 일단, 몸이 가벼워지고 숙면을 하기 좋으며 맑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걷는 시간을 늘리면 칼로리 소모에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탓이라고 쓰고 그냥 흥청망청 부어라 마셔라 한 탓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체중은 인생 최고점을 찍고 말았다. 내 몸에서 입만 행복했던 그 순간을 조금 내려놓고 그 외의 부분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다른 방식으로 속도와 시간을 조금씩 늘려간다


평소의 만보로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쉬는 날을 활용해 힘차게 오름**을 오른다. 제주에는 무려 368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성산일출봉도 오름 중 하나로, 이미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곳과 접근이 어렵고 불가한 곳도 오름의 형태와 위치가 꽤 다양하고 많다


오름은 나들이의 목적으로 찾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집 근처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고 수많은 계단과 꽤 가파른 경사도가 초입부터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오름은 나의 부족한 운동량을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이다. 초입부터 중간까지는 자가용을 이용해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나는 초입부터 뚜벅뚜벅 걷는다. 주차장에 도착할 때쯤 이미 기진맥진해 있는 나를 발견하지만, 눈앞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끝없이 이어진 계단이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계단을 모두 오르고 나면 챌린지 앱의 물질적 보상과는 또 다른 보상이 주어진다. 영험한 한라산의 능선이 바로 눈앞에 있고 그 반대편은 넓디넓은 태평양 바다와 함께 우뚝 솟은 범섬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다시 돌아가는 길에 두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후들후들 떨리지만, 오운완의 뿌듯함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영화 <걷기왕>의 ‘만복아 노력에 끝이 없단다.”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노력'도 끝이 없지만 그것만큼 ‘내려가는 계단도 끝이 없다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만큼 다시 그 아래로 내려가기가 더 어렵고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 재기재기 걸으멍 오르멍 : ‘빨리빨리 걷고 오르며'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

** 오름 : ‘산'이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 










이전 12화 매일 운동 톺아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