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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LOG Dec 05. 2021

[일기] 2020년 어느 날들의 시시콜콜한 끄적임 모음

싱가포르에서 혼자 지내던 2020년, 생각이 많은 날들의 어느 끄적임

2020년 4월 어느 아침
어느 비 오는 날, 싱가포르

새벽 6시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밤새 이렇게 앉아, 생각하다 보니 무디게도 밤은 지나갔다. 언제쯤 새벽빛을 내려 위로해주려나.

감정선을 따라 촘촘히 나를 둘러싸며 인지되었던 여러 말들은 귓속을 오르내렸다 흘러나왔다 다시 오르내린다. 해가 뜨면 오늘은 조금 멀리 발걸음은 가볍게, 마음은 비우고, 일탈을 해봐야겠다.


2020년 6월 19일

<이아립 - 패턴놀이>


드디어 3개월 만에 서킷브레이커가 풀렸다. 지난 3개월간 코로나로 인하여 격리하여 지낸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홀로 이곳 싱가포르에 와, 집에서 갇혀 지내며 마음 맞는 동료와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지만, 이제부터 노력하면 되니까.

서킷브레이커 기간 동안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노래는 이아립의 패턴놀이라는 노래이다. 가사가 격리되어 지낸 지난 3개월의 나를 보여주는 듯하여 더 애착이 간다. 오늘 일기는 이 노래의 가사로 대체한다.

혼잣말이 늘었고

그때마다 오해가 늘었고

하소연하는 시간이 늘었고

나를 피하는 친구가 늘었고


커피가 늘었고

몰래 쓰는 소설이 늘었고

붙이지 못한 편지가 늘었고

지키지 못한 약속이 늘었고


어쩌면 우리는 갈 곳을 잃었죠

어쩌면 우리는 갈 곳을 잃어버린 채

그냥 넘어가고 또

계속 넘어지고


실수가 늘었고

그때마다 변명이 늘었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늘었고

잠들지 못하는 밤이 늘었고


야식이 늘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고

영화를 보는 횟수가 늘었고

그때를 생각하는

그때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고

후회가 늘었고

어쩌면 우리는 갈 곳을 잃어버린 채

그냥 넘어가고 또

계속 넘어지고


어쩌면 우리는 갈 곳을 잃었죠

어쩌면 우리는 갈 곳을 잃어도 그걸 모르고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춤을 추고

하늘은 내게 장차 큰 사명을 주려나보다.

2020년 8월 9일
러닝 하다 마주한 마리나베이의 모습

<싱가포르에 온 지 159일 되는 밤>


사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생각이 많다며 멍해지는 밤이다.

우리는 많은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얽히며 스며들곤 한다. 누군가의 취향과 일상이 나의 삶을 삼켜버리기도 하며, 서로를 녹이며 결국 하나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형편없는 서로의 말로 다투는 날도 있을 거다

한 시간을 토라져 속상해하다가도 익숙한 말버릇과

간지러운 유머에 결국 피식 웃어버리다 화해를 하겠지.


그런 날도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재즈 음악을 집 안 가득 크게 틀어놓고 이름 모를 와인을 잔 가득 채워두곤

아무 글이나 끄적이고 싶은 밤- 서툰 솜씨로 손그림을 그리고 손편지를 가득 남겨, 주고받고 싶은 날-

방구석이 한가득 손그림과 사진으로 채워지면 얼마나 좋아


, 마지막으로 곱창전골과 김치불고기가 너무 그리운 밤이다.

싱가포르에   159일이 되는 , 생각나는 모든 을 기록하는 밤


오늘의 추천 노래는 다린 - 바닷가이다.


2020년 10월 5일

사랑하는 친구가 오늘 아침 7시반에 연락이 왔다. 무언가 힘듦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우리는 8시간을 꼬박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를 듣다보니 어느덧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도 아쉬워, 카카오톡 메세지를 종일 나누던 우리였다.

사랑하는 친구의 속상함을 가까이 옆에서 달래주지 못함이 더 슬픈 날이었다.


내가 타지에서 외롭고 힘들 때마다 새벽까지 전화로 안아주던 너이기에,

나도 너에게 오늘 하루만은 온전히 내어 함께 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10살 때 부터 지금까지 16년지기, 나의 사랑하는 친구야,

너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그 마음은, 내가 어느날 보았던 이곳의 하늘과 같아.

짙푸름의 달이 가진 아름다움이 사진만으로는 쉬이 담기지 않듯, 세상이 너의 진가를 알아주는 날이 올거야.

마음 놓고 행복하게 웃는 너를 응원해 !


16년을 옆에서 붙어있으며, 너에게 기억되고 싶은 내 모습은,

하루의 속상했던 일을 모두 씻어낼 수 있는 욕실 같은 사람,

어려운 일에도 해방감과 따뜻함을 온전히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네가 나에게 언제든 온전히 안정감을 주었던 집과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돌아보니 우리의 사계절은 참 아름다웠다.

그 어느 계절보다도 너와 함께한 사려깊은 봄을 좋아했다.

우리의 마로니에 등굣길엔 푸르른 자연과 벚꽃이 길 위를 수놓았다.

너라는 친구를 만났기에, 찡그린 시간 뒤에, 온전한 미소로 웃을 수 있었단 걸


2020년 10월 7일

그런 날이다

잠들기 전 수많은 글자들 속에 파묻혀 생각을 기록하다, 잠든지도 모른 채 잠이 들고 싶은 밤


어수룩한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가만히 스스로를 안아주고 싶은 밤, 내일은 조금 더 풍부한 감정들로 새로운 시간들을 마주할 수 있길 바라는 밤


권태로움과 무기력함을 무서워한다거나,

작은 것에 휘둘리지 않고 성급하지 않으며 모쪼록 아쉬움이 없는 밤이 되길 바라며,


나란 사람은 갓 삶은 두부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두부와 참 많이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한없이 여리고 때론 부서지는, 그러다 다시 뭉칠 수 있는


2020년 11월 4일

<싱가포르에서의 어느 밤>


동이 터온다, 건물 층계에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지닌 가장 연약하고도 지독한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별것도 아닌 일에 트집을 잡았던 여린 날의 나는 오늘도 오래 걷는다


2020년 11월 8일
나의 남자 친구에게 남긴 카톡

한국은 어느덧 겨울이구나

공항에 내리면 코 끝 가득 다가오는 추운 날씨의 그 겨울 내음이 그리웠는데, 기대했던 다음 주에는 가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그리운 이와 만나게 되는 시간이 곧 찾아올까?


따스한 햇살을 채가는 바람도

버스를 타는 낯선 이의 외투도

나지막이 쌓인 낙엽 속에도


계절을 지나는 높은 하늘에도 사랑하는 당신이 있어요

겨울 냄새가 나요 추억이 살아나요

2020년 11월 16일
출처 : 넷플릭스 영화

<침묵>


마음을 가지런히 다듬는 일

적당한 거리를 다치지 않는 선에서 이해하는 일

수많은 만약에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현실의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이들에게 지금의 현실을 사랑하도록 응원하는 일


손가락 하나 어떤 자음에서 모음으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무거운 몸을 구태여 이끈 채-

이만 침묵을 지키기로 한다.  때론 정전이 와서 모든 게 감쪽같이 멈출 때 비로소 중요한 걸 발견하게 되듯, 하고 싶은 모든 생각과 말을 억지로 막아버리는 멈춤의 미학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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