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김보살의 몸 상태가 안 좋은 날이었다. 계속해서 잠이 쏟아진다며 침대에 누워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런 날. 그렇다 보니 문수문수님이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데, 열어드리지 못해 선생님께서 대신 문을 열어주셨다. 몸이 안 좋은데도 선생님께서 문수문수님이 김보살 몸에 앉을 수 있도록 해주신 건, 김보살이 좀 나아지도록 기운을 주게 하기 위함이셨다.
문수문수님은 오시자마자 “이 누나 오늘 몸이 왜 이래?”라고 하더니 눈을 감으셨다.
“위에서 피가 나네...?!”
문수문수님은 위가 있는 부근에 손을 대시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눈을 뜨며 문수문수님이 말했다. “됐다!” 위가 좀 나아지도록 기운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었다.
어느 정도 위가 괜찮아진 것을 확인한 문수문수님은 바로 간식을 찾으셨다. 문수문수님의 새로운 최애 간식은 ‘생크림 빵,’ 호빵처럼 생긴 생크림 빵을 반으로 가른 후, 잘린 빵 크기의 비율에 맞게 속에 있는 생크림 양을 잘 조율하시고는 드신다. (*어찌나 마음에 드셨었는지, 혹시라도 생크림 빵이 없어지지 않게 빵 봉지 뒤에 적혀있는 회사 이름 위에 손을 올리시곤 ‘잘돼라, 잘돼라.’라고 기운도 주셨다.) 오늘도 성공적인 분배 후 한입 드시더니 한 마디 툭 던지셨다.
“오늘 동자 하나가 도와달라고 찾아오겠네. 네가 모시는 신과 관련 있는 아이야. 이번 일을 잘 해결하면 그 신과 더 친해질 수 있어.”
어떤 도움을 드려야 하는 걸지, 김애동의 얼굴에 고민이 잠시 서렸다. 하지만 지금 오신 분은 문수문수님이시기에 바로 문수문수님께 집중하는 게 보였다. 그렇게, 문수문수님이 가시고 난 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동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렸다. 김보살은 눈을 감고 동자님들이 드나드시는 문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김보살의 입이 열렸다.
“동자님이 한 분 오셨는데…. 지금 힘이 없으셔서 그런지 문에서부터 기어 오고 계셔. 엄청 힘들어 보여...”
그 말에 김애동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시는 것부터 힘들어하신다면, 도와드리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애동은 동자님이 김보살의 몸에 실리길 기다렸다. 곧, 김보살의 몸이 축 처졌다.
“어디서 오셨어요?”
“매화 동산….”
겨우겨우 내뱉은 목소리에 김애동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매화 동산은 김애동이 모시는 보살님이 담당하시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매화 동산에 뱀이 나타나서 매화가 죽기 시작했어…. 우리가 매화를 지키려고 했는데 역부족이야. 지금 동자들이 많이 쓰러져있고 죽기도 했어…. 도와달라고 하기 위해서 나만 겨우 왔어. 계속해서 도와달라 말했는데, 못 들었어….”
“그래…. 내가 처리하마. 돌아가 있으련.”
어느새 김애동의 몸에 보살님이 내려와 계셨다. 보살님은 부채를 집어 들고 동자님을 향해 살살 부치기 시작했다. 보살님의 기운이 실린 바람을 맞자, 동자님께서 힘이 나셨는지 축 처져있던 김보살의 몸이 일으켜졌다. 동자님은 매화동산에 가 있겠다고 하시며 사라지셨다. 그 모습을 보신 보살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부채를 촥 펼치셨다. 하얀색 바탕에 매화가 그려져 있는 보살님의 부채가 눈에 들어왔다. 보살님은 부채를 편 채로 한 바퀴 돌기도 하시고, 부채를 수평으로 들고 위로 올렸다가 내리시기도 하며 춤을 추시기 시작했다.
“와... 쓰러져 계시던 동자님들이 일어나시고,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진짜 예쁘다.”
김보살이 어딘가 바라보면서 말했다. 보살님이 춤을 추시며 부채를 부칠 때마다 바람이 매화나무를 스치면, 바람이 닿은 곳에서부터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어느새 매화 동산에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매화 꽃잎이 날리며 장관을 만들고 있다며, 그 모습에 매료된 듯, 김보살은 한동안 매화 동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 됐다.”
보살님이 부채를 접고 앉으시며 그대로 김애동의 몸 안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매화동산의 동자님이 보답하기 위해 김보살의 몸에 찾아왔다.
“도와줘서 고마워.”“고마워.”“고마워.”
김애동이 ‘고마워’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마음이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인지, 처음에 왔던 동자님만 매화동산에 계시고 다른 모든 동자님들이 함께 감사 인사를 하러 왔다고 하셨다.
“그럼 저희가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매홍동자.”
“다른 동자님은요?”
“매홍동자 2, 매홍동자 3. 이렇게 부르면 돼.”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살님께서 지어주신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귀찮으셨던 것은 아니죠…?’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했었다)
“아~ 그럼 매홍동자님들이라고 부를게요.”
“응! 그런데 어떤 보답을 줘야 하지.”
“지금 그 아이(*김보살)가 많이 아프거든요. 위가 많이 아프다고 하는데, 혹시 아픈 걸 좀 가져가 주실 수 있으세요?”
“음…. 어디 보자….” 동자님은 김보살의 가슴 부근에 손을 올리곤 눈을 감았다.
“이 누나 몸이 너무 썩었는데…. 위뿐만 아니라 안 아픈 곳이 없어.”
“지금 위가 많이 아프다는데 위만이라도 가져가 주시면 안 될까요?”
“다행히 우리가 여러 명이라서 여러 부근 아픈 걸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아. 완전히 낫게는 할 수 없어. 그런데 지금 바로 나아지는 게 아니라 한 2시간 정도 걸릴 거야.”
“2시간이요?”
“응. 아주 좋은 거름이 될 것 같은데, 거름으로 만들려면 시간이 좀 걸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동자님들은 김보살의 몸을 한 번 살펴보고는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동자님들이 가시고 1시간 30분쯤 지나자 김보살이 아픈 게 사라졌다고 좋아했다) 이렇게 매화 동산 일이 마무리된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한 번 더 정리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매홍동자님들이 찾아오고 몇 주가 흐른 뒤였다. 김애동이 선생님께 말했다. 보살님이 매우 화나계신다고. 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김보살의 몸에 있던 선생님께서 김애동의 가슴 부근에 손을 대고 잠시 살펴보더니 말씀하셨다. 매화동산에 잔당들이 남아있다고. 그때는 우두머리를 잡지 않았었는데, 지금 또 다니 매화동산을 공격하고 있다고 했다. (*왜 그때 우두머리는 잡지 않으셨었는지 물으니, 우두머리는 길일을 잡아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셨다.)
매화동산 일이기에 보살님께서 또 무언가 하실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큰할머니께 힘을 써달라 말했다. 왜 보살님이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전 큰할머니께서 김애동의 몸에 실리셨다.
큰할머니께서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잠시 후, 큰할머니가 눈을 뜨시며 말했다.
“한 번 보시오. 잘 됐는지.” 큰할머니의 말에 선생님께서 눈을 감으셨다.
“음 잘 됐구먼.”
“그럼 난 가오.”
속전속결로 잔당처리를 끝내시고 돌아가시자 김애동이 쭈뼛쭈뼛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지금 보살님이 엄청 화나 계세요. 왜 자기를 부르지 않았냐고요. 여기의 주인은 난데 왜 큰할머니에게 부탁하셨냐고요. 계속 씩씩거리시는데….”
보살님께서 화나신 모습을 처음 본 김애동은 지금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운 듯했다. 어찌할 바 모르는 김애동을 보던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보살아. 잘 보아라.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잖니?”
다독이는 듯한 말투에, 김애동은(*아마도 보살님) 선생님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김애동이 본 것을 설명해 준 바에 따르면, 보살님께서는 분노가 가득 찬 상태로 매화 동산에서 전투를 시작했다고 했다. 큰할머니는 우두머리 외에 남아있던 구렁이들을 다 잡으셨고, 보살님이 홀로 남아있는 우두머리를 그야말로 도륙을 내셨다고. 춤을 추는 것 같으면서도 전투를 하는 모습. 처음 보는 보살님의 강렬한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구렁이 우두머리에게 분을 푸신 보살님은 화가 풀린 모습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
일이 마무리된 후, 김애동이 왜 큰할머니께 먼저 이야기를 드렸냐고 여쭤보니, 김애동이 보살님은 전투계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보살님도 이렇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갑자기 보살님께서 화가 나신 채로 싸우시면 김애동이 깜짝 놀랄까 봐 빌드업을 하셨던 것이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매화 동산은 평온 그 자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앞으로는 계속 평화로운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
최근 매홍동자님들이 찾아오시는 일이 있었다. 요즘 김애동이 물에 보살님의 기운을 담아 내장기관이 좋지 않은(?) 나와 김보살에게 마시게 하는데, 신님들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영양제 같은 효과를 보인다고 했다.
보살님께서 매홍동자님들에게 그 물을 마시러 한 번 방문하라고 일러두셨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았다. 그래서 김보살이 눈을 감고 ‘매홍동자님들~~’이라고 불렀는데 갑자기 동자님들이 탓탓탓탓 고개를 돌려 김보살을 쳐다봤다고.
“악... 너무 귀여워서 심장 폭행당했어.”라며 김보살은 옷을 움켜잡았다.
동자님들께서 오신 뒤, 보살님께서 말하셨다는데 왜 안 오셨냐고 여쭤보니 “못 들었어. 한 명도 들은 사람 없대.”라고 하셨고, 보살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걸 깜박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ㅋㅋ
김보살이 불렀을 때 동자님들이 쳐다보신 것은, 갑자기 매화 동산 하늘에 김보살 얼굴이 가득 차더니 자신들을 내려다봐서 깜짝 놀랐기 때문이라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