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부지곰 Oct 30. 2024

 쌤의 전썰(2)

- 1편에서 이어집니다.


  처음 발령을 받고, 그렇게 꿈꾸던 교단에 섰지만, 현실은 악몽이었다. 수십 명의 생명체가 나의 생명을 위협했다. 싸우는 아이들을 말리고 있으면, 이쪽에서는 우유를 쏟고 저쪽에서는 유리창을 깼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무엇보다 시끄러웠다. 저마다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내 얘기는 듣지 않았다. 소란을 뚫기 위해 나는 더 큰 소리를 질러야 했다. 처음이라 열정이 앞섰고, 요령은 부족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그해 꾀꼬리 같이 고운 목소리를 잃었다. 그 대신 인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덕분에 아직도 그 길을 가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웨버는 직업 의무의 수행은 신의 소명에 의한 것이라는 ‘직업천계설’을 주장했다. 교사는 대표적인 천직적 직업으로 여겨진다. 내가 교사가 된 것이 신의 뜻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이 일이 재미있다. 같은 학년을 맡아도 같은 학생은 없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우주가 공존하는 교실은 창의적이고 다채롭다.


  나의 MBTI는 ENFJ이다. 이것은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유형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잘 이해하며, 타인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추천하는 직업의 상단에 교사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교사가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 한강이 쓴 운명에 관한 시 <서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     


  운명이 찾아와 그동안 마음에 들었냐고 물으면, 나는 양팔 벌려 반기며 넙죽 절하지는 않겠지만, 차갑게 등 돌리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낯설어하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너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지는 않았어. 윷놀이할 때처럼 나는 그저 윷을 던지고, 나오는 끗수대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만 생각했어. 아무리 열심히 던져도 내가 바라는 숫자가 꼭 나오지는 않더라. 그래도 윷가락을 원망하지는 않았어. 너도, 그리고 너를 품어온 어린 시절의 '나'도 그동안 애썼어. 덕분에 자랄 수 있었어. 내 외모도, 수능 점수도, 아버지 건강도 안 괜찮았지만,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뭐가 나와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야. 나도 윷이나 모가 자주 나오면 좋겠어. 앞으로 잘 부탁해.”

이전 21화 쌤의 전썰(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