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문을 20여 년 넘게 풀지 못했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할 사람은 어느새 부엌에 가 있으니까. 강성옥씨가 지금보다 더 젊고 활력 있던 때는 아점 먹고 바로 간식을 만들었다. 처자식을 짐승처럼 사육했지만 장남은 반에서 가장 작은 땅꼬마였다(고1 때부터 자기 손으로 밥 해먹고 성장함).
강성옥씨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없다.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은 주말대로 회의가 잡혀있거나 모임을 한다. 다행이라면 우리 사는 도시는 작아서 30분이면 집까지 왕복할 수 있다는 것. 짬이 날 때마다 집에 들르는 강성옥씨는 셋 중에 하나를 한다. 소파에 눕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프라이팬을 꺼낸다.
지난 일요일 오후의 간식은 소떡소떡. 가끔 강연갈 때 나는 휴게소에서 밥 안 먹는다. 차 안에서 노래 두세 곡 들으며 소떡소떡을 천천히 먹는다. 언젠가 경기도 광주 퇴촌 책방에 갈 때는 너무 멀어서 강성옥씨가 운전기사 해줬다. 갈 때는 차 밀려서 휴게소에 못 들렀다. 올 때도 포기했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강성옥씨가 소떡소떡 사 와서 진짜 완전 좋다고 난리쳤다.
우리 식구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무조건 사 먹는 간식 중에 하나도 소떡소떡. 이 국민간식이 나오기 전에는 군산에서 영광 법성포 갈 때 선운사 나들목으로 빠졌다. 지금은 무조건 선운사 지나쳐서 고창 고인돌 휴게소로 간다. 살아생전 우리 수산리 아버지처럼 멋있으셨던 고모할아버지 장례식장에 갔다 올 때도 지현과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떡소떡을 먹었더랬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고 보는 순간, 꺄아! 만능감탄사를 터트려주는 소떡소떡. 우리 집 식탁에서 특유의 기름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나는 구경만 하고 다시 방으로 왔다. 1시간 30분 전에 아침 겸 점심을 과식해서 몸이 무거운 상태였다. 크느라고 오후 2시까지 내리 잔 강썬은 조금 삐쳐 있었다. 강성옥씨가 ‘나간 놈 몫은 있어도 자는 놈 몫은 없다’며 비정하게 밥상을 치우고 나가서 그랬다.
“이거 뭐게?”
강성옥씨는 다 알고 있는 미끼를 던졌다.
“소떡소떡이잖아.”
강썬과 나는 거실과 안방에서 각각 대답했다.
“소떡소떡 말고 이거?”
이거라니? 딴 게 또 있나 싶어서 강썬과 나는 식탁으로 갔다. 소떡소떡에 발라먹는 양념이었다. 그리고 양념솔. 제규가 처음으로 요리를 시작했을 때 지현이 사준 거였다. 나무 손잡이로 된 고급 솔이라서 제규가 무척 아꼈다.
하필 강썬 유치원 방학 숙제는 떡꼬치 만들기. 제규가 만드는 걸 구경만 하던 강썬은 자기도 해야 한다며 마지막에 양념을 바르고 싶어 했다. 떡꼬치에 발라야 하는 양념을 솔의 나무 손잡이에 잔뜩 묻혀놨다. 요리 도구를 아끼던 강제규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사람처럼 싱크대 앞에서 펄펄 뛰었다. 그때 일 따위 생각 안 나는 강썬은 양념 발라진 소떡소떡에 양념솔을 갖다 댔다.
소떡소떡은 ‘소떡’을 먹어야 한다. 꼬치에서 떡이나 소시지를 한 깨씩만 빼먹으면 허전하다. ‘소떡’을 동시에 먹기 위해서는 꼬치를 옆으로 돌려서 갈비를 뜯듯이 먹어야 한다. 조심해도 허겁지겁 먹은 것처럼 입가에 양념이 묻는다. 강성옥씨는 닦으라는 뜻으로 나한테는 턱짓을 하고 강썬 볼에 묻은 거는 자기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서 ‘할머니처럼’ 자기 입으로 가져간다. ㅋㅋㅋㅋㅋ
간식이니까 강썬과 나는 돌아다니면서 먹는다. 강썬은 한 입 먹고 소파로 가서 유튜브를 보고, 나는 한 입 먹고 방으로 들어와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고만 먹을 거라고 해놓고선 한 10분쯤 뒤에 다시 식탁으로 가서 소떡소떡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강성옥씨가 만든 거는 ‘떡소떡소떡’. 짝이 안 맞았다. 내 자랑 같지만,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