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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영 May 24. 2022

아주 사소한 한여름의 맛

가지나물


거실 에어컨을 켜도 부엌은 뜨뜻하고 습한 말복. 냉장고를 열어본 강성옥씨는 밥하기 싫다면서 치킨과 삼계탕 중에 한 가지를 배달시켜 먹자고 제안했다. 우리 집 최고존엄 강썬의 선택은 치킨, 잽싸게 내가 주문했다. 그런데 우리 식구는 치킨 시켰다고 해서 한끼 식사를 건너뛰지는 않는다. 강썬이 먹을 메인요리를 안 할 뿐, 강성옥씨는 뭐라도 만든다.


 치킨이 오는 데 걸리는 시간 20분. 강성옥씨는 다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시가에서 가져온, S자로 자유롭게 자란 오이를 채 썰었다. 시원하고 시큼한 오이 냉채 맛을 아니까 침이 고였다. 그는 나한테 먹어보라며 따로 투명하고 작은 그릇에 덜어서 얼음 몇 개를 띄웠다. 강성옥씨는 조리 과정을 지켜보려고 하면 나를 쫓아내지만 얻어먹으려고 기웃대는 건 또 허락한다.

 

 화요일인데, 강성옥씨는 주말처럼 거실 테이블에 저녁밥을 차렸다. 강썬은 쾌재를 부르며 텔레비전을 켜고‘무한도전’을 검색했다. 아, 진짜! 나는 일과를 마친 게 아니었다. 서점에 글쓰기 수업하러 가야 하는데, 이미 몇 번을 돌려본 무한도전은 왜 재밌고 난리일까. 아내의 내적 갈등을 포착한 강성옥씨는 천하 태평한 처방을 내렸다.


 “오늘만 자율학습 하라고들 해. 한 번쯤은 괜찮지.”


 이웃 도시에서 2시간 일찍 퇴근해서 오는 사람도 있다. 일 끝나고 바로 오느라 글쓰기 수업하는 날마다 저녁밥을 거르는 사람도 있다. 글을 쓰고부터 사는 게 너무너무 재밌다는 사람들에게 각자 알아서 하라는 말을 절대 꺼낼 수 없다. 예능 프로그램에 흔들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수업 시간보다 20분 일찍 서점에 도착했다.


 출근하고 애들 키우고 살림하고 틈틈이 글 쓰는 삶은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똑같은 글은 하나도 없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품게 되는 수업. 서점 문 닫는 시간에 딱 끝내서 아쉬워할 틈 없이 모두 서둘러 가방을 챙겨 나왔다. 먼저 간 줄 알았던 텃밭싫어 님이 서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해놓은 자신의 자동차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텃밭싫어 님은 몇 년 전에 호수가 아름다운 군산 청암산 아랫동네로 이사 갔다. 상수원 보호구역이었던 산은 방풍림과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애기똥풀꽃이 흔하고 수수꽃다리와 아카시 향도 진하고 대숲의 나무들이 서걱이는 소리는 시원하다. 자연 그대로의 산과 호수를 앞마당처럼 끼고 살 줄 알았는데 웬걸! 텃밭싫어 님네 식구 셋이서 청암산에 간 건 딱 한 번뿐이라고 했다.


 텃밭싫어 님의 남편은 퇴근 후와 주말에는 텃밭 가꾸기에 몰두했다. 날이 저물면 불을 켜놓고 자식 대하듯이 온갖 작물의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 가꿔서 수확했다. 부부는 같은 회사에 다니고 직급도 같고 노동 강도도 비슷한데, 텃밭싫어 님만 중3 딸아이 저녁 먹이고 학원까지 차로 실어나르고 아이의 정서를 살폈다.


“농업 혁명은 창세기 이래,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다.” <사피엔스>의 이 문장에 완전 동의한다는 텃밭싫어 님이, 남편의 텃밭을 사기죄로 고소하고 싶다고 강조한 사람이 엄청 큰 참외와 가지를 건네줬다. 맛없으면 말하라고, 맛있는 거 나올 때까지 계속 갖다 준다는 텃밭싫어 님은 남편의 텃밭과 법정 다툼하는 걸 포기한 것 같았다.

 나는 여름 땡볕을 받고 자란 가지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여섯 살 때 생으로 먹는 가지와 나물로 먹는 가지 맛을 확실히 알았다. 그때는 냄새에 민감했다. 장마철에는 사방에서 헛간 냄새가 난다고 헛구역질을 했다. 가마솥 열면 풍기는 밥 냄새 때문에도 정말 힘들었다. 하루에 세 번씩, 부엌에서 안방으로 밥상이 들어올 때마다 울었다.


 “으이그, 저 미운 년. 밥 주지 마라이!”


 노기가 잔뜩 서려 있는 증조할머니가 말했다. 엄마는 힘센 왼쪽 팔로 나를 감싸 안아서 밥을 먹이려고 달랬다. 쪽진머리를 한 증조할머니는 증손주 넷 중에서 나한테만 정을 안 줬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몰랐지만, 나는 미움에는 더 큰 미움으로 맞설 줄 알았다. 늘 그러던 것처럼 할머니를 째려봤고 할머니는 내 밥그릇을 빼앗았다. 설거지하고, 막둥이 아들 기저귀 삶아서 널고, 방 닦는 걸레도 아기 기저귀처럼 방망이를 탕탕 두드려서 새하얗게 빨아야 하는 엄마도 밥을 못 먹었다.


 막둥이를 업고 집안일을 차례로 마친 엄마는 증조할머니한테 아기를 맡기고 텃밭으로 갔다. 토방에 혼자 앉아 있던 나는 엄마를 따라갔다. 배고팠다. 표면이 오돌톨톨한 오이가 싫어서 나는 맨들맨들해 보이는 가지를 땄다. 열매꼭지 부분의 가시에 찔렸어도 꾹 참고 베어먹었다. 희멀건한 과육은 떫은맛이 나면서 조금 달았다. 그러니까 더 ‘진짜 밥’이 먹고 싶었다. 나는 훌쩍이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다시는 안 울라니까 밥 줘.”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성큼성큼 집으로 갔다. 증조할머니는 솔가지를 쟁여놓은 부엌문 앞에서 여전히 노기 띤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범인을 검거하겠다는 듯이 버티고 서 있었다. 서른 살도 안 됐던 엄마는 절대권력에 저항하지 못했다. 어린 딸을 냇가로 데려가서 눈물 흘려 꼬질꼬질해진 얼굴을 씻겨줄 뿐이었다.


 그날 점심부터 나는 밥상 앞에서 울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가 밥 뜸 들일 때 가마솥 뚜껑을 열어도 밥 냄새를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맡았다. 엄마는 밥 위에 가지를 올리고 솥뚜껑을 닫았다. 얼마쯤 후에 꺼내서 손으로 길게 찢었다. 고춧가루와 마늘과 참기름에 무친 가지나물은 맛있었다. 물컹물컹하다고, 입에 넣어주면 뱉어내던 버릇도 거짓말처럼 고쳐졌다.


 그러나 증조할머니 곁으로는 절대 안 갔다. 할머니도 여전히 나한테만 매몰찼다. 왼손으로 젓가락질 한다고 내 손등을 때렸다. 어느 날 할머니는 광주에 혼자 다녀오다가 쓰러져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냉장고가 없던 때라서 친척들은 깡통에 든 황도 복숭아를 사 왔다. 증조할머니 때문에 생긴 음식이니까 나는 입에 대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은 좋다. 가지를 보면 솟구치던 서러움도 완전히 증발했다. 증조할머니를 만난다면 곁에 앉아보고 싶다. 집단 학살당한 큰아들의 시신을 찾아내서 먼 산에 묻은 증조할머니, 또 몇 년 후에 사고사로 막내아들을 잃은 증조할머니의 한을 내가 글로 기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할머니 덕분에 울지 않고 밥 먹는 사람이 됐다고, 한여름에 먹는 가지나물을 좋아한다며 내 취향을 알려드리고 싶다.


 강성옥씨는 아내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르는 채로 가지 요리를 한다. 텃밭싫어 님이 준 가지를 썰어서 가지볶음을 하고, 찜기에 쪄서 옛날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뜨겁다면서도 손으로 길게 찢어서(칼로 썰면 맛없게 느껴짐. 아직도 조금은 까다로운 편) 무쳐준다. 푹 익히지 않아서 더 맛있다. 씹을 때 말캉말캉하지 않고 살캉살캉한 가지나물이 좋다.


 119안전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밤에는 데이트하느라 늦게 들어온 제규는 손 씻고 꼭 냉장고를 열어본다. 태양이 내리쬐고 풍향이 바뀌는 노지에서 마음껏 커버린 가지를 꺼낸다. “엄마, 가지 요리 해줄까요?”


 제규의 가지 요리는 이국적이다. 가지를 반으로 잘라서 만지면 약간 ‘수세미 스펀지’ 같은 속을 파낸다.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놓고 쓰는 토마토소스에다가 가지 속을 버무린다. 토마토를 따로 썰어서 재료들과 같이 볶는다. 그다음에 속이 텅 빈 가지에 채워 넣고 그 위에 얇게 썬 생 모차렐라 치즈를 올려서 오븐에 굽는다. 한 마디로 굉장히 맛있고 굉장히 살찌는 음식이다. 나는 현명하게 대처했다.


 “제규야, 피곤하니까 얼른 쉬어.”


 며칠 동안 가지 요리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강썬은 가지볶음의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가지나물은 식감이 싫다며 안 먹었다. 강성옥씨는 바쁘니까 밥만 차리고 나갔다. 여름은 또 지나갈 거고, 짱짱하고 실하게 자란 가지도 거의 끝물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도 꿋꿋하고 맛있게 가지나물을 싹 먹어치웠다.


#남편의레시피

#사계절출판사

#가지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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