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문고로 배지영 작가 사인본 주문이 들어오곤 한다. 불시에 닥칠 일을 대비해서 나는 택배 상자를 버리지 않고 베란다 창고에 서너 개 모아둔다.
결제한 책을 서점에서 가져와 사인할 때 긴장한다. 세상에는 마음을 흔들고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을 품게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어떻게 내 책을 주문하시는 걸까. 진짜 진짜 고마운 마음을 담는다. 그렇다고 따로 엽서나 편지를 쓴 적은 없다.
이번만은 달랐다. 택배 상자가 덜 깨끗한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끝을 안 정하고 쓰는 타입이라서 일단 썼다. 우리 엄마는 여름방학에 해수욕장 데려가서도 바닷물이 차다고 하지 않고 “수온이 낮다이.”라고 말했는데. ‘대학죠’까지 나온 그 딸은 ‘봉다리’라고 쓰다니요.
-
친애하는 현주님♥
어릴 때 시골 우리 동네 어른들은 당신들이 아는 고급 단어를 멋스럽게 쓰셨어요.
“거시기. 돈 좀 융통해 줄 수 있는가? 막둥이 수학여행비가 없네이.”
“여식을 타지로 보낼랑게 수심이 깊네이.”
현주님.
책이 더러워질까 봐 ‘비닐 봉다리’를 쓰고 말았어요. 다음에는 저도 고급 단어를 쓸게요.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