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남편과 함께 찜닭*을 시켜먹었다. 뚜껑을 열었는데 치즈가 얹혀진 간장 소스 찜닭이 똻! 당면을 당기니 따라오는 모짜렐라 치즈가 똻!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정신을 놓고 먹기 시작한 게.
*찜닭은 나트륨 함량이 높은, 짠 음식입니다. 주문 시 싱겁게 조리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내 생각에는 사람마다 모두 시력이 다른 것처럼 미력도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 같다. ‘미력’은 내가 만든 단어인데 맛을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 유명한 배우는 자신은 입맛이 정말 없다며 ‘하루에 알약 한 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유명한 예능인은 ‘고기와 밀가루를 멀리하면 오래 살 수 있지만 그렇다면 딱히 오래 살 이유가 없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이 두 사람의 미력이 같을까?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고 느끼는 정도가 분명 다를 거라고 나는 믿는다. 시력, 청력처럼 타고난 미력도 다른 거지.
나도 미식가 수준은 아니지만 미력이 꽤 높을 거라 추측한다. 그렇지 않다면 음식 앞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세상 행복이란 행복은 다 가진 표정이 나올 수가 없지.
20대 때만 해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었다. 남들처럼 배부를 때까지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30대 중반부터는 그럴 수가 없다. 배부를 때까지 먹으면 소화되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윗배에 심한 통증이 생긴다. 양쪽 커다란 신장 사이에 끼인 위가 음식물을 소화시키려고 꿈틀대면 뱃속에 자리가 부족해서 물혹이 가득한 신장이 아파하는 것 같다. 그래서 '소식해야지, 소식해야지' 하면서도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아무 생각없이 입 안으로 쏙쏙 넣다보니 과식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 달 전에 분명히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조금 과식 했고,-여기서 과식은 20대 시절의 과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20대가 T.O.P라면 지금은 물 탄 아메리카노다- 그날 밤 통증 때문에 괴로워 잠을 못 자서 이제는 뭘 먹든 한 끼니에 국그릇 1그릇 이상의 양은 먹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동안 그걸 지켰는데 안 아프니까 까먹는다. 과식 안 하고 꼬박꼬박 먹다 보니까 아팠던 날을 까먹고 찜닭 앞에 앞접시 하나만 들고 앉아서 좋다고 찜닭 한 조각, 당면 한 줄, 치즈 한 덩이, 입에 순풍순풍 집어넣었다.
그리고 밤,
12시에 잠이 든 나는 2시에 깼다. 식도로 넘어오는 위산이 느껴졌다. 양쪽 신장에 눌린 위가 위산을 식도 쪽으로 뱉어내는 거였다.-남편은 이게 과장된 설명이라 했지만 나는 이 상상이 딱 마음에 든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고 좌식 의자에 앉았다. 그 상태로 잠에 들려고 노력했다. 배가 묵직하고, 아프고, 등이 아프고 결렸다. 잠에 설핏 들어서 꿈을 꿨다. 거울에 비친 내 머리가 하얗게 새어 있었다.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다가 새벽 6시쯤, 이제는 가서 자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온수매트를 켜고 잠시나마 눈을 붙였다. 6시 30분에 일어나는 게 목표였는데 7시 30분에 일어났다. 그래도 일어난 게 어디야, 장하다!
이런 일을 한번 겪고 나면 다시 몇 주 정도는 ‘적당히 먹기’를 잘 실천한다. 아픔이 크면 클수록 실천기간이 더 늘어난다. 안 아픈 날이 쌓이다보면 어제처럼 까먹는 날도 온다. 언젠가는 절대 까먹지 않는 날도 오겠지.
서럽다. 나보다 두 배는 더 먹은 남편은 배부르다, 배부르다 해도 잘만 자는데. 서럽다, 서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