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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r 26. 2023

내게 힘을 주는 곳

슬픔과 의지의 용광로




제주에 내려온 지  십 수년,

내게 힘을 주는 곳이 몇 군데가 있다.

그중에 한 곳이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이다.




제주 서쪽 해안은 물론 맑은 날에는 멀리 동쪽 해안까지도  훤히 보이는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항파두리는 북쪽으로부터 침입이 예상되는 몽고군의 상륙을 감시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흔히들 항파두리는 당시 최강대국인 몽고에도 굴하지 않은 삼별초의 저항 정신을 기리는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낮은 언덕의 토성이 가락지처럼 둘러싸고 있는 항파두리 안에는 고려 최정예 부대였던 삼별초의 저항의지와 더불어 어느 날 갑자기 그들에게 끌려 나와 농사일 대신 흙무덤을 쌓아야만 했던 제주 민초들의 슬픔이 함께 매장되어 있다. 이를테면 이곳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묻혀버린 거대한 무덤인 것이다.


한 때지만 수 만 킬로미터 떨어진 유럽에서 이곳 탐라까지 하나의 제국으로 묶였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유럽과 우리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라고만 느껴와서 더욱 그러한지도 모른다. 


그토록 영원할 것만 같았던 몽골 제국 또한 백 년도 안되어 또 다른 제국인 명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세상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엉킨 실타래처럼 슬픔과 의지가 한데 뒤섞인 용광로 같은 곳이어서일까?


노오란 탁자 위에 누군가 놓고 간 하얀 벚꽃과 빨간 동백꽃이 사라져 간 슬픔과 이루지 못한 의지를 뿌리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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