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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28. 2019

잘츠부르크 카드는 최고!!-1

운터 베르크 산 케이블 카- 잘츠부르크 동물원- 헬브룬 궁전- 맥주박물관

 11살 일기

헬브룬 궁전의 트릭분수가 재밌었다. 어떻게 그런 상상을 했을까?


   

9살 일기

가까이에서 사자를 봤다. 무섭고 멋있었다.




드디어 아껴두었던 잘츠부르크 카드를 개시하는 날이었다. 지난 여행 때 잘츠부르크 24시간 카드를 사서는 몇 군데 들르지 못해 아쉬웠던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계획을 세워 최대한 알뜰하게 카드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48시간을 쓸 수 있는 카드였으므로, 오늘 먼 거리의 큰 관광지를 둘러본 후, 내일은 시내에 위치한 박물관과 자잘한 장소들을 다니는 것으로 계획했다.


오늘의 일정은 운터 베르크 산 케이블 카- 잘츠부르크 동물원- 헬브룬 궁전- 스티켈 맥주 박물관의 순서로 시 외곽의 관광지를 돈 다음 마지막으로 잘츠부르크 시내로 돌아와 호엔잘츠부르크 요새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하루에 너무 많은 일정을 잡은 것 같아 다소 불안했지만, 일단 다녀볼 수 있는 만큼 다녀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운터 베르크 산으로 향하는 25번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소로 향했다. 운터 베르그는 1800미터로 우리나라의 한라산에 조금 못 미치는 높이의 산이었다.  영화의 시작과 영화 후반부에 트랩 대령 가족들이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 등장하는 산으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는 인연이 깊다. 


잘츠부르크 시내의 버스는 모두 전기로 운행하는 버스였다. 우리가 탔던 버스는 그중에서도 특이하게 열차처럼 두 량의 객실이 이어진 버스였다. 두 번째 칸의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좌석과 좌석 사이에 꽂아 놓고 간 먹다 남은 주스 컵이 보였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컵 안에 있는 내용물이 찰랑 거리는 것이 무척이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금방이라도 플라스틱 컵 안의 지저분한 내용물이 넘쳐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컵 안에 넣었다. 휴지뭉치가 이물질이 섞인 지저분한 주스를 빨아들이자 액체의 흔들림이 멈쳤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선진국인 오스트리아에서조차 쓰레기 무단투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마찬가지구나' 


어쩌면 원주민이 아닌 이 도시를 방문한 누군가의 소행일지도 몰랐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왠지 잘 정비된 이 도시의 누군가가 저지른 것이기를 바랬다. 일종에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모범생에게서 약점을 찾아내고 싶은 기분이랄까?


구글 지도를 열어 버스 노선을 검색한 후 실시간으로 버스정류장의 이름을 확인했다. 목적지까지 바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탈 때는 별 쓰임이 없었지만 정류소가 많은 시내버스에서는 구글 지도가 매우 유용했다. 만약, 이번 여행에서 구글 지도를 사용할 수 없었다면 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엄두도 못 냈을 일이었다. 지하철은 몰라도 버스의 경우, 구글 지도가 없었다면 관광은 커녕 내릴 곳에 신경을 쓰느라 버스 타는 내내 사람들에게 묻기 바빴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낯선이들에게 물어가는 그 과정이 참된 여행일지도


낯선 현지인 대신 익숙한 스마트폰이 안내해 주는 지금의 여행은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아닐지도 몰랐다. 낯선 곳에서조차 우리의 궁금함에 대답을 해주는 디지털 기기는 타인에게 정보를 얻는 것이 필수였던 생소한 여행지에서조차 소통의 기회를 빼앗아 가고 있었다. 스마트 폰은 많은 이들을 새롭게 여행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었지만 정작 여행의 체험 자체를 일상과 다름없게 만들고 있었다. 일상에서 사용하던 익숙한 스마트폰에 의지하여 우리는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체험의 기회를 스스로 제약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는 공존하는 법이었다.


흐린 날씨 덕분에 운터 베르크 정상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뻥 뚫린 상쾌한 전망은커녕 컴컴한 하늘 위로는 눈발마저 휘날리고 있었다. 운터 베르크의 눈 덮힌 정상은 4월임에도 여전히 춥고 어두웠다. 아쉬움을 달랜 채, 함께 올라왔던 대만인 커플의 사진을 찍어주고는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스위스 쉴트호른을 오를 때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고생했던 케이블카의 기억이 떠올랐다. 행여라도 다른 관람객들이 오기 전에 서둘러 내려가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케이블카 맞은편으로 올라오고 있는 케이블카에는 이미 여행객들이 가득 차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운터 베르크 마을

"거봐, 아빠 말이 맞지? 일찍 오길 잘했잖아."


아침잠을 더 자고 싶었던 아이들을 아침 댓바람부터 끌고 나왔던 게 미안했던 나는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이들 역시 잠이 덜깼는지 아무 대꾸조차 없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이미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올라타려고 하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정류소 벤치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지나자 한 여자분이 우리 옆을 지나치고는 힘차게 버스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좌석에 앉고선 운전대를 잡았다. 젊은 여자 버스 기사는 이 유럽에서도 처음 보는 것이어서 신기했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보여주며 인사를 하자 그녀 역시 밝은 미소로 인사를 받아줬다. 


다음 행선지는 잘츠부르크 동물원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혁우는 무척이나 신이 나서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잘츠부르크 동물원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치고는 매우 큰 규모였다. 인공의 시설을 설치하기보다는 가능한 자연 상태 그대로의 환경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쓴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물의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해서 한국에서 못 봤던 홍학이나 재규어, 코뿔소 같은 동물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동물원에 가서 몇 차례나 보려고 했다가 실패했던 사자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아이들이 더욱 기뻐했다. 워낙에 넓은 동물원이었기에 우리는 적당히 한 바퀴를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고는 다음 행선지로 나섰다.

거북이 노릇도 힘들어요~

트릭 분수로 유명한 헬브룬 궁전으로 향했다. 17세기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였던 마르쿠스 지티 쿠스가 자신의 여름 별궁으로 지은 장소로 장난스러운 장치가 되어있는 트릭 분수가 있는 '물의 정원'과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트랩 대령이 키스를 했던 유리 정자가 유명한 곳이었다.


매표소에서 잘츠부르크 카드를 보여주니 투어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라고 이야기한다. 헬브룬 궁전의 트릭 분수가 있는 '물의 낙원'은 지정된 시간에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투어를 해야만 했다. 출입구 앞 벤치에 앉아 입장을 기다리는데 점심을 먹지 못한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며 징징댔다. 하는 수 없이 10유로를 쥐어주며 요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사 오라고 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손에 들고 온 물건들은 아이스크림과 모차르트 쿠겔 초콜릿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배가 고팠던 것일까?


가이드는 흥겨운 목소리의 쉬운 영어로 재미있게 안내를 해주었다. 덕분에 투어 내내 즐거운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랄 만큼의 대단한 전시물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헬브룬 궁전을 만든 마르쿠스 지티쿠스 대주교의 재치와 익살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장소였다.

   

 갑자기 물이 솟아 올라 식사 중인 손님들을 놀라게 했다는 물의 정원

다음 장소는 스티겔 맥주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이 있는 버스 정류소에 내렸다. 구글 지도가 돌아가는 길로 가르쳐 준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하이킹을 하게 되었다. 조금 지치기는 했지만 한적한 유럽의 농촌 마을을 걷는 기분을 산티아고 순례길 이후로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한적했던 스티겔 박물관 가는 길

스티겔 박물관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오랜 맥주 제조의 전통을 보여주는 전시물과 깔끔한 시설들도 좋았지만 송아지 고기로 만든 돈가스 슈니첼과 기념 맥주가 맛있어서 더욱 좋았다. 전시관을 나갈 때에는 기념품으로 빨간 빛깔의 예쁜 컵도 받을 수 있었다. 카드 하나로 무료입장은 물론 기념품까지 받게 되니, 무슨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잘츠부르크 시내로 돌아왔다.

 

스티겔 박물관의 기념 맥주와 슈니첼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호엔잘츠부르크 요새로 향했다. 요새로 가는 길은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과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었다. 푸니쿨라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잘츠부르크 카드가 있었으므로 당연히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어요."

"예, 저희는 한국에서 왔어요. 저도 캘리포니아에 가봤는데 예쁘더라고요. 특히, 샌프란시스코가 좋았어요."

"오, 반가워요. 나 샌프란시스코에 살아요."


푸니쿨라에 같이 앉은 할머니가 나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미국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쾌한 이미지의 여성분이었다. 다행히 내가 가보았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분이었던 까닭에 이것저것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넓게 펼쳐진 잘츠 강을 방어막으로 잘츠부르크 시내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우뚝 솟아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하지만 이 철옹성조차도 훗날 나폴레옹의 군대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전한다. 전쟁 영웅 나폴레옹이 이끌었던 프랑스 군대의 강함이 먼 이국의 여행자에게도 새삼스럽게 전해왔다. 요새의 내부는 전통 인형을 모아놓은 인형 박물관과 죄수들을 고문했던 고문기구들을 전시한 장소가  인상적이었다.

    

호엔 잘츠부르크 요새에서 본 잘츠부르크 시내의 전경

계산을 해보니 오늘 방문한 관광지 입장료만으로도 이미 잘츠부르크 카드의 구입비용 64유로를 거뜬히 넘겼다. 여행 비용을 절약한 기념으로 어제 방문했던 식당 '김 168'에서 초밥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식당에 도착해보니 어제와는 달리 대기하는 줄이 너무 길었다. 대기 없이 먹었던 어제가 운이 좋았던 거였다.


하는 수 없이 마트에서 파는 냉장 초밥을 샀다. 저녁노을이 지는 잘츠 강변에 앉아 아이들과 소풍을 온 가족마냥 오손도손 나눠 먹었다. 하지만, 몹시 배가 고팠음에도 초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다섯 피스에 10유로나 하는 걸 세 개나 샀는데.  잘츠부르크 카드로 아낀 금액은 모두 초밥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모든 일에는 항상 빛과 어둠이 공존했다.     
        
우리 모차르트 쿠겔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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