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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외국어

by 올레비엔

제2 외국어

강아지는 2달 정도 되면 체감상 유치원생정도 되는 느낌이 되는데, 이때부터 기본적인 배변, 앉아, 기다려 같은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첫 강아지를 키우는 주인은 이때 공부가 시작된다. 덮어놓고 아무리 앉으라고 외쳐봐도 앉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강아지가 알아듣기 쉬운 방법을 주인이 공부해야 한다. 앉는 훈련 정도는 대충 간식을 들고 '앉아'를 외치면 강아지가 눈치로 대충 앉아주기는 하지만,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 하면 훈련이 훨씬 쉬워진다.

유치원쯤 된 강아지에게 한국말을 눈치껏 배워오라고 할 수도 없으니 주인이 적극적으로 강아지 말을 배우는 수밖에 없는데, 이때를 놓치면 소통은 물 건너가면서 괜히 멀쩡한 강아지를 멍청하다고, 사고 친 다고 타박하게 되기 십상이다.


밤톨만 한 강아지가 하루가 다르게 손도 주고, 기다려도 하는 게 예뻐서 열심히 공부했다. 내 인생에서 외국어를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강아지 검색을 해보면 강아지 지능 순위가 나와 있는데, 지능의 기준이 훈련을 3-5번 안에 익히면 가장 똑똑한 부류, 5~20번 안에 익히면 다음으로 똑똑한 부류 이렇게 분류하기도 한다. 내가 키워본 강아지는 골든리트리버와 요크셔테리어였는데, 이 지능순위에서 제시한 만큼 훈련을 반복하면, 훈련을 익히고는 했다. 골든 리트리버는 정말로 3~5번만 반복해도 다음부터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전제는 주인이 강아지말을 능숙하게 잘 해낸다는 전제에 한해서 그렇다. 사실 앉아, 엎드려, 기다려 정도는 주인이 못 알아듣게 알려줘도 대충 눈치로 잘 알아듣는다. 그런데 산책훈련이라던지, 죽은척하는 빵이나 돌아 같은 복잡한 동작들은 주인이 공부를 안 하고서는 가르치기가 매우 힘들다. 그때쯤 나와 이 똘망똘망한 2달 된 강아지는 해 뜨자마자 매일 마주 앉아서 한 가지씩 새로운 동작을 익혀나갔고, 밤이 되면 나는 인터넷을 뒤지면서 내일 배울 동작을 가르치는 법을 공부해서 다음날 해가 뜨기만 기다렸다.

이제 막 동이 터서 날이 밝아지기도 전에 우리는 새로운 동작을 익히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내가 제2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 날 다른 강아지들의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성격이 어떤지 대충 이해가 됐다. 강아지들은 가까이 있을 때는 눈빛이나 동작을 보고 의사소통을 하지만, 서로 볼 수 없는 밤이 되면 큰소리로 짖거나 하울링 하면서 잠들 때까지 떠든다. 우리 마을 안쪽 집 개와 마루는 잠들기 전 초저녁에 항상 수다를 떨다 잠들곤 했다.


강아지말만 배운 줄 알았는데,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새들과 다른 곤충들이 그들끼리 대화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동트기 직전에 새들은 각자 집에서 일어나 이웃을 살피면서 밤새 있었던 일들과 오늘 할 일을 시끄럽게 서로 이야기했고, 개구리나 풀벌레들도 사람들이 없는 사이 자기들끼리 긴히 할 말을 나눴다. 인적이 드문 시골에 사는 나는 온갖 생명들이 말로 대화한다는 사실 쯤은 이해하게 됐다. 언어는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었고, 동물들도 풀벌레들도 인간이라는 위협적인 존재만 없다면, 엄청 수다스럽다.


어차피 영어나 중국어를 공부해도 겨우 말이 통하면 다행이고, 반은 눈치로 알아채야 하는 것처럼 동물의 언어도 그 정도만 공부해도 훨씬 알아채기 좋아진다. 역시 언어는 외국인이랑 같이 살아야 쉽게 는다. 아기 강아지를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기강아지에게 동물들의 말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코로나 기간에 터키의 시골에 락다운으로 두 달 정도 갇혀있었는데, 내가 있던 곳은 간헐적 락다운을 시행했다. 주말과 연휴를 붙여서 4일 동안 아무도 집 밖에 못 나오게 하고, 월요일이 되면 다시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있게 해 줬다. 락다운 하는 날은 새들이 뉴스라도 보는 것인지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 하루종이 새벽녘처럼 새들이 날아다니면서 지져궈서 온거리가 시끄러웠다. 사람만 없으면 새들은 원래 하루종일 떠드는 수다쟁이였다.

“알아듣는데는
노력이 필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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